최종편집 2024-04-16 17:57 (화)
학생이 직접 설화 쓰고 유물 제작에 발굴까지
학생이 직접 설화 쓰고 유물 제작에 발굴까지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7.14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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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제주매일 공동기획]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8> 경기 시흥 장곡중학교 재미있는 수업의 비밀

흥미로운 교과통합수업 절반에 달해

교사들간 협의 의지·시간만 있다면

중학 과정서도 수업혁신 어렵지 않아

지난해엔 전국 1만교 중 15교에 주는

‘교육과정 최우수 학교’ 선정 기쁨도

 

장곡중 1학년 3반 학생들의 국어수업 시간 모습.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역사 교과를 배우며 처음 만나는 단원이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글쎄, 역사는 정말 무엇일까. 이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을 아이들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 장곡중 역사과 교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과 손을 잡고 역사와 관련한 활동을 과목별로 진행하는, 이른 바 교과통합 프로젝트 ‘흙 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다.

# 고고학 프로젝트 ‘흙 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

우선, 이 수업을 제안한 역사과 교사가 역사수업 시간에 앞으로 진행할 수업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국어시간에 학생들은 ‘창작설화’를 쓴다. 설화의 형식에 맞춰 쓰되 반드시 이야기 속에는 유물이 땅에 묻히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이렇게 국어시간에 창작한 설화를 바탕으로 한문시간에는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장소, 유물에 적을 한자 글귀를 배우고, 미술시간에는 점토로 자신의 설화속에 등장하는 유물을 제작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제작한 유물에 한문시간에 배운 문장을 새긴 후 학교 운동장 어딘가에 묻는다. 그 후 학생들은 유물을 묻은 곳을 설화 속 장소의 배경인 것처럼 상상해 고지도를 그린다. 그리고 10월, 학생들은 유물을 발굴하고 발굴된 유물을 축제 때 전시한다.

고고학 프로젝트 '흙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를 아십니까 설계도.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학생들은 고고학을 비롯한 여러 역사 관련 개념을 몸으로 기억하게 된다. 아울러 역사가 한 사람의 영웅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는 시각까지 덤으로 얻는다. 스스로 상상하고 만드는 수업이 아이들의 자발성과 협동심을 길러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 무궁무진 통합수업

또 다른 통합수업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장곡중 1학년 학생들은 식물을 모티브로 한 ‘아낌없이 주고받는 너와 나’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국어 시간에는 화단을 관찰한 후 느낌을 시로 표현했고, 영어시간에는 영어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며 다양한 영어 표현을 익혔다. 과학시간에는 식물의 광합성을 배웠고, 미술시간에는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나만의 글씨체를 만든 뒤 학급농장의 팻말로 사용했다. 도덕시간에는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기 위한 나만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기도 했다.

지구의 환경오염을 주제로 한 또 다른 교과융합수업 역시 과학, 수학, 영어, 국어를 비롯해 음악, 기술, 체육까지 총 8개 과목에서 협업이 이뤄졌다. 과학시간에 지구의 복사평형과 온실 효과, 지구 온난화의 원인과 결과를 살피며 기본 지식을 쌓고, 수학 시간에 국가별 이산화탄소 발생량 표를 해석하고, 국어시간에는 영상 언어의 특성을 살려 관련 주제에 맞는 스토리 보드를 만드는 식이다.

# 크거나 작거나, 유익하기만 하다면

앞서 설명한 고고학 프로젝트 ‘흙 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는 융합수업 연구자들이 감탄하는 프로젝트로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곡중이 혁신학교 가운데 특히, 뛰어난 교육과정으로 주목받는 곳이라고 해서 모든 교과통합 수업을 폭넓고 다차원적인 규모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재 장곡중에서 이뤄지는 ‘중국문화체험’ 수업의 경우, 중국어 시간에 중국 문화에 대해 배운 후 가정 실습시간에 만두를 만들어 먹는 2개 과목으로 단촐하게 꾸려진다. 이 단순한 도식의 수업만으로도 아이들은 중국 문화를 내 손에 가깝게 느끼는 계기를 얻는다.

지난해 고고학 프로젝트 '흙 속에 담긴 낯선 기억을 찾아서' 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자신이 묻었던 유물을 직접 발굴하며 고고학의 개념을 배우고 있다. <장곡중 제공>

학생들이 해당 단원의 핵심 내용을 그들의 일상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수업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 놀라운 숫자 ‘50%’

통합수업은, 교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는 교사들이 서로 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단원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 한 쪽이 제안하고 다른 한 쪽이 수락하는 일상 언어의 방식을 통해 시작된다. 중학교 교육 과정의 경우, 한 명의 교사가 전체 과목을 도맡는 초등학교와 달라 타 교과목의 사정을 서로가 잘 모르기 때문에 교사간 동료애와 협업, 소통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곡중 교사들은 각자 자신이 맡는 교과목의 교과서 마인드맵을 만든 뒤 서로 돌려보며 교과서의 단원 구성이나 학습내용이 겹치는 부분을 찾아 주제를 정하고, 다시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며 교과별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 지 세부 동선을 확정하고 있다.

장곡중은 혁신학교로 지정된 2010년 이후, 매 학기 시작 한 두 달 전부터 학년별로 협의회를 열고 수업을 준비, 매년 통합수업의 비중을 점차 늘려왔다. 현재는 크고 작은 융합수업이 전체 수업의 50% 이상에 달한다.

장곡중의 이러한 재미있는 수업 구성은 단순한 입소문을 넘어 한국교육개발연구원 등 전문집단의 연구 과제가 됐다. 급기야 진보 교육감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혁신학교’에 알게 모르게 ‘각’을 세우고 있는(?) 교육부조차 지난해 장곡중을 교육과정 최우수 학교로 선정하기에 이른다. 전국 1만개의 초중고 중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거쳐 오직 15개 학교에만 주어지는 영예다.

장곡중학교 교사들은 교과서를 토대로 통합교과 방식으로 재해석한 '배움지'로 수업을 진행한다.

특히 장곡중은 교과서가 아닌 활동지를 보며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활동지는 교사들이 해당 단원에서 꼭 배워야 할 핵심 주제를 바탕으로 외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교과서를 재구성한 수업 진행지다. 교사들은 기계적인 교과서 내용의 전달자로 머물기보다, 적극적으로 수업을 재해석하고 학생들의 이해가 쉽도록 변용,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쪽을 선택했다. 실제 지난 3일 장곡중을 방문했을 때에도 대부분의 교실에서 학생들은 교과서가 아닌 활동지를 보며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장곡중은 과정중심의 평가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학습자 중심의 교과통합 수업에 더욱 힘을 실었다. 통합적 사고력 신장을 위해 지필평가시 서술형 논술형 평가비율을 늘리고, 매 활동에서 학생들의 감정과 의지에 관한 정의적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수업내용을 학생 수업일기 형태로 평가한다. 수행평가 비중도 전 교과에 대해 50% 이상으로 확대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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