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천은 생태하천인가. 그렇다면 시민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인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왜냐, 기획을 통해 점검했듯이 산지천을 밤낮으로 점령하고 있는 건 노숙자와 성매매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하천이라는 것도 껍데기일 뿐이다.
산지천은 현재 ‘확장중’이다. 확장중이라는 건 ‘공사중’이라는 표현의 다른 말이다. 가만 놔둬도 될 것을 뜯고 있다. 하천 바닥도 그렇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던 산짓물 빨래터도 사라졌다. 제주돌로 만들었던 빨래터는 현재 ‘완전 인공’이다.
솔직히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탐라문화광장을 만들고, 거기에 들어서는 분수대. 그 분수대에서 솟아날 분수쇼를 잘 보여주기 위해 산지천 위에 데크를 만들다가 언론의 지적을 받고 다시 뜯었다. 만들고 뜯고 하는 작업은 누구의 돈이던가. 모두 시민의 세금이다. 하지만 행정은 보란 듯 일을 저지른다. 그렇게 시민의 돈은 일부 업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건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가 없기 때문이다. 탐라문화광장을 거창하게 만들고, 산지천을 뜯어 고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걸로 아는 모양이다.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산지천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으려면 찾아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얘기했듯이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고, 주택가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매매도 없애야 한다.
산지천 광장에 있던 분수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게다. 솔직히 얘기하면 기자의 애들도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하지만 기억속의 분수대는 없다. 대신 탐라문화광장에 분수대를 만들 모양이다.
산치전은 예전엔 어린이들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청소년들이 즐겨찾는 곳이었다. 이 곳에 ‘청소년 문화존’이 조성돼 있었다. 청소년들이 찾아와서 자신들의 끼를 발산했다. 하지만 사라졌다. 그 자리를 노숙자들이 점령했다. 기자가 한 행사에 참가했을 때 노숙자들이 훼방을 놓으면서 행사가 이상하게 꼬인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산치전 광장을 찾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동시에 분수대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노숙자들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도록 만든 정책이 잘못됐다. 여기서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게 있다. 탐라문화광장을 만들면서 수십년된 나무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유는 노숙자들 때문이란다. 탐라문화광장을 만들면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곳이 될 것 같다는 공무원의 우려였다.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해결은 하지 않고 하드웨어만 만들면 뭘하나. 그래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산지천을 다시 청소년의 공간으로 되돌렸으면 한다. 청소년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만들자.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간 큰 노숙자들이라도 청소년들이 즐기는데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 아닌가. 청소년들이 즐기는데 성매매가 활개를 펼 수도 없을 것 아닌가. <<끝>>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