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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똥 누는 일도, 똥 받는 일도 스트레스
예전엔 똥 누는 일도, 똥 받는 일도 스트레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6.09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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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5> 박정철의 「똥 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
 

오늘은 똥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똥 이야기라고 손사래치거나 손으로 코를 막거나 하진 마세요. 똥은 동물에게, 아니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우리 몸에 붙어다니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채변봉투’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채변봉투’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40대 이상이야 “아!” 하며 옛날을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그 나잇대 이하의 사람들은 갸우뚱할 겁니다. ‘채변’은 기생충 감염 검사나 병리 검사를 하기 위해 똥을 받는 일을 말하는데, 예전 ‘채변’은 학생들의 몫이었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채변’은 그다지 즐거운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스트레스였죠. 똥을 받아가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검사 결과가 나오면 더 한 벌이 따랐으니까요.

박정철의 <똥 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은 ‘채변’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박정철의 동화는 똥을 받아가지 못한 기덕이의 행동이 예전 우리들의 과거를 보는 듯 오버랩되니 말이죠.

어찌된 일인지 예전엔 기생충을 달고 살았습니다. ‘기생충 박멸’이 사회에서 커다란 이슈의 하나였죠. 사실 우리가 어렸을 적엔 ‘똥물’이 채소의 영양분이었습니다. 똥물을 채소에 뿌리는 그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렇게 똥물을 뿌린 채소는 우리 밥상에 올랐어요. 때문에 기생충이 우리들 몸속에, 말 그대로 ‘기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았나 생각듭니다.

‘채변봉투’는 노란 겉봉투에, 속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어 있습니다. 똥은 비닐봉지에 담은 뒤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불로 지져 봉한 뒤 노란 봉투에 담습니다. 당시엔 대부분이 푸세식(?) 화장실이었기에 신문지에 볼 일을 본 뒤 성냥개비나 나뭇가지 등으로 똥을 뜨곤 했습니다. 계속 똥 얘기를 하는 게 그다지 즐겁지는 않지만 예전 우리들의 일상이니 어쩔 수 없죠.

더욱이 ‘채변봉투’는 도시락이 들어가는 가방에 함께 담아서 가곤 했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21세기잖아요. 만일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나눠주고 그걸 가져오라고 한다면 난리가 아닐 겁니다. 온라인이 뜨거워지고, 교육계가 발칵 뒤집어질테죠. 그래도 예전엔 그걸 당연히 여겼답니다. <똥 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의 기덕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기덕이는 집에서 볼 일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학교에서 일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똥 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은 너무 실감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어요. 어쩜 그리도 예전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렸는지, 박정철 자신이 어릴 때 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듯합니다.

앞서 채변 검사 결과가 나오면 더 한 벌이 따른다고 했죠?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한차례 그 벌을 받은 기억이 있답니다. 그 벌은 다름아닌 기생충 약을 먹는 일입니다. 채변 결과가 나오면 선생님은 이름을 하나 둘 호출합니다. 모두 앞으로 불려가죠. 선생님은 불려온 애들에게 알약을 나눠줍니다. 그냥 나눠주고 들어가라고 하지 않아요. 반드시 모든 애들이 보는 앞에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죠. 간혹 기생충이 없는 애들도 알약을 먹는 경우가 있답니다. 어떤 경우냐고요? 바로 <똥 봉투 들고 학교 가는 날>의 주인공인 기덕이와 같은 애들이 있어요.

채변 결과 기생충약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채변봉투에 똥을 담아오지 못한 애들은 그날 학교에서 일처리를 해야 합니다. 기덕이는 다른 애의 똥을 빌려 봉투에 담습니다. 그게 사단이 될 줄이야. 똥을 빌려준 애는 기생충이 나오지 않았는데, 운이 없게도 남의 똥을 빌린 기덕이는 기생충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됐지 뭐예요. 예전 어떤 애들은 개똥을 채변봉투에 담아가기도 했답니다. 그런 애들도 여지없이 기생충 약을 먹는 꼴이 됩니다.

시계를 30년전으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애들에게 푸세식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신문지로 뒤를 닦게 하면 제대로 할 건가요?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좋은 쪽으로 변한 셈이지요. 지금도 푸세식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채변봉투에 똥을 담아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기덕이야 그 시대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옛 명칭)를 다닌 애들이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우리 애들은 아마 엄두를 내지 못할 겁니다. 그 때문에 타임머신이 생기더라도 우리 애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절대 과거로 가지 않을 겁니다. 추억은 추억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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