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3:40 (금)
음악이 흐르는 도시 바르샤바
음악이 흐르는 도시 바르샤바
  • 조미영
  • 승인 2015.05.1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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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여행자 조미영] <15>
구시가 중앙광장의 인어상은 바르샤바의 수호신이다.

황혼의 사랑을 다룬 영화들이 화재다. 얼마 전 상영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이어 ‘장수상회’가 다시 스크린을 달군다. 젊은이들의 특권과도 같아 보였던 사랑이었는데, 우리 삶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오는 듯하다.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 시대를 뜨겁게 달군 로맨스가 있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만남이다. 파리의 사교계에 새롭게 등장한 젊은 음악가 쇼팽. 그러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다름 아닌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였다. 이미 작가로 명성을 날리며 거침없는 행보를 하던 조르드 상드와의 사랑으로 세간의 화재가 된다. 그리고 둘은 오랜 밀월을 떠난다. 하지만 쇼팽의 마음 한 켠에는 늘 그리운 조국이 있었다.

쇼팽은 1810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 이후 1830년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가 러시아의 폴란드 침공으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다. 이후 파리에 머물며 뛰어난 작품 활동을 통해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얻으나 병약한 몸으로 인해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했던 쇼팽! 그의 조국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나보자!

구시가 초입의 잠코비 광장은 만남의 장소이자 소통의 공간이다.

베를린에서 바르샤바까지 기차로 8시간의 여정이다. 어느덧 야간열차로의 이동에 익숙해진 탓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비교적 편하게 바르샤바에 입성했다. 숙소는 다소 이색적인 강위의 선박을 개조해 만든 보트텔로 결정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간 곳은 바르샤바 도심의 구시가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산산이 파괴되어 버린 거리를 벽돌 하나하나까지 완벽히 복원하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곳이다.

구시가 입구의 잠코비 광장에 들어서자 바르샤바의 가장 오래된 기념비인 지그문트 3세 동상이 높이 솟아 있다. 그 뒤로 붉은 색의 벽돌 건물이 웅장하다. 14세기부터 왕궁으로 쓰이다가 이후 대통령 관저에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신을 거듭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역시 나찌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지금에 이른다.

잠코비 광장을 지나 다시 중앙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어동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 건물들이 지어져 있고 그 곳에는 각종 카페와 식당 기념품점들이 들어서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차와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광장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딱히 할 것도 볼 것도 없지만 여기서 잠시 머물러야 할 것만 같다. 나도 카페에 앉아 망중한을 즐겨본다. 의례히 그렇듯 광장의 중앙에선 비둘기들이 먹이를 쪼고 있고 아이들은 물놀이에 정신이 없다. 그 주위를 관광객 실은 마차들이 돌고 있다.

구시가 광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차
 

휴식을 마치고 말발굽 모형의 성벽 바르바칸을 돌아 나왔다. 신세계거리로 향하는 도중 바르샤바 대학이 보인다. 1816년 설립이후 최고의 수재들이 이 학교를 거쳐 갔다고 한다. 쇼팽도 여기서 음악을 공부했다. 학교 맞은편으로 성 십자가 교회가 있다. 쇼팽의 심장이 묻힌 곳으로 유명하다. 비록 육신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심장은 이렇게 교회 기둥에 모셔져 있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빌라누프 궁전과 와지엔키 공원을 가기 위해 시 외곽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먼저 빌라누프 궁전으로 향했다. 소비에스키 3세가 왕비를 위해 지은 여름궁전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베르사이유를 모방해 지었다고 한다. 다행히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시대별 다양한 건축양식을 원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지런히 와지엔키 공원으로 갔다. 매주 일요일 12시에 쇼팽콘서트가 있기 때문이다. 서두른 덕분에 다소 일찍 공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앞자리는 선점을 당한 뒤다. 한가운데 호수를 끼고 쇼팽 동상이 크게 조성되어 있고 무대는 그 옆에 자리해 있다. 조금 옆으로 비켜 앉긴 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런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관객의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시작되자 모두들 숨을 죽이고 음악을 감상한다. 뙤약볕아래였지만 자리를 벗어나는 이는 거의 없다. 리듬을 타며 음악을 듣는 이들과 공원을 가득 채운 빨간 장미 그리고 경쾌한 선율의 피아노 소리가 조화롭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사스키 공원으로 향했다. 마침 피우수츠키광장의 무명용사 묘역에 근위병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다. 다소 과장된 발걸음과 손짓을 하는 병사들이 불꽃을 지키기 위해 오고간다. 그리고 관광객들은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이 공원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국립 현충원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도심의 공원 같다. 광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나무 밑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있다.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들이다. 이윽고 공터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스피커와 마이크가 설치되고 빨간 드레스의 여인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손을 붙잡고 춤을 춘다. 그 곁에 서 있던 나도 보조를 맞춰야 할 듯 했지만 세상에 태어나 스텝을 밟아본 적이 없던 터라 어색해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니 바르샤바의 공원 어디서건 음악과 함께 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대한 음악가 쇼팽의 고향답다. 하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모습은 열정적이거나 격렬하지 않다. 조용하고 조심스럽다. 대신 차분하고 끈질기다. 러시아와 독일의 틈바구니에 끼어 잦은 외침을 당한 폴란드인들의 특성인 듯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역사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배울 점 많은 바르샤바에 괜시리 마음이 더 가는 이유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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