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06 (금)
Raffles 도심계획에서 마스터 플랜 1958까지
Raffles 도심계획에서 마스터 플랜 1958까지
  • 이정민
  • 승인 2015.02.24 09:4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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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싱가포르 도시계획 이야기] <5> 싱가포르의 도시계획 역사 ①

1. 시작하면서

도시계획은 그 도시의 미래 발전방안을 설정하는 주요한 작업이다. 모든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시민들은 자신의 삶이 경제적으로 실리적이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사회적으로는 공정한 도시, 그리고 후손들의 자신들의 도시와 환경을 그대로 물려줄 수 있도록 환경적으로 수용 가능한 그러한 도시를 꿈꾼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도시다.

하지만 도시계획은 실행을 전제로 한다. 실행될 수 없는 계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주도에서 그동안 국제자유도시와 관련된 계획을 수차례 수립되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싱가포르도 경험했던 문제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독립과 함께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으로 기존 규제위주의 도시계획을 개살사업 시행 위주의 도시계획으로 개편하였다. 이를 위해 도입된 것이 이전에 다뤘던 토지취득제도와 국유지 판매프로그램이었다.

도시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반대에도 부딪혔지만,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지금 싱가포르 도시계획 경쟁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주요 도시계획 프로젝트에 도시재개발청이 참여하거나, 관련 사업시행자들에게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전 세계 도시계획 사례를 대상으로 리콴유 월드시티 프라이즈를 수여하고 있다.

도시계획이 싱가포르 세계도시화 과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멜버른 대학의 Han(2005) 교수는 그의 논문의 결론부분에서 ① 유연하고 개방적인 계획시스템과 자율재량이 보장되는 개발컨트롤 절차 등을 마련한 것과, ② 대규모 공공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지원 강화, ③ 토지취득, 분배, 그리고 각종 개발규제 등에 있어서 혁신적인 메커니즘의 도입, ④ 적절한 토지 이용을 위한 관리체계와 재개발 계획 등과 같은 도시개발에 대한 싱가포르의 노하우는 충분히 배울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글에서는 도심계획에서부터 마스터 플랜 2014까지 싱가포르 도시계획이 어떠한 변화과정을 거쳤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물론 지면상의 한계 때문에 이번 호에서 마스터 플랜 1958까지만 다루도록 한다.

2. 싱가포르 도시계획 체계

그림 1. 지속가능성. 경제적으로 실리적이고,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환경적으로 수용 가능한 상태

싱가포르의 도시계획은 우리나라의 도시기본계획과 유사한 콘셉트 플랜과 도시관리계획과 비슷한 마스터 플랜 2개의 체계로 이루어진다. 콘셉트 플랜은 싱가포르 계획법에 규정되지 않은 계획이지만, UN 자문단의 도움을 받고 수립하기 시작한 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싱가포르가 추구해야 할 비전, 각 부처 간 협조 사항, 그리고 대규모 개발사업 등에 대한 정책방향을 설정한다.

여기서 비전은 리콴유 전 총리가 선언했던 “일류국가 싱가포르 건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기본 비전으로 지속가능성을 위한 계획으로 설정하고 있다.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부처는 국가건설성(MND: Minstry of National Development)이다. 도시계획은 그 도시의 비전과 장기발전구상을 제시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모든 부처가 도시계획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그림 2. 참조). 또한 창이국제공항 건설, 신항만 건설, MRT 노선 확충과 관련된 대규모 개발사업은 콘셉트 플랜에서 다루어진다.

그림 2. 콘셉트 플랜과 관련이 있는 부처 및 기관. 자료 : URA. Land Use Planning: The Singapore Experience

반면, 마스터 플랜은 계획법이 정한 계획으로, 5년마다 한 번씩 재정비가 이루어진다. 이 계획은 콘셉트 플랜보다 일찍 도입되었다. 최초의 마스터 플랜인 Master Plan 1958은 1952년에 착수하여 1955년에 최종안이 마련된 후 1958년에 최종 승인 고시가 이루어졌다.

그림 3. 2층 구조의 도시계획

마스터 플랜은 공공 및 민간의 개발 규제를 목적으로 수립되었다. 영국의 영향을 받아 계획허가제보다 강한 규제가 따른다. 계획법 자체에서 용도지역제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에 계획 자체가 도시에서의 개발과 관련한 법률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계획을 위반한 개발이나 건축은 불가능하다.

마스터 플랜은 토지이용용도(용도지역 및 세부용도), 개발밀도(건폐율과 용적률), 구체적이고 상세한 계획 등을 다룬다. 우리의 경우에는 같은 용도지역인 경우에는 동일한 개발밀도와 동일한 용도가 가능하지만, 싱가포르 도시계획은 세부용도가 같더라도 개발밀도는 입지와 필지 형태에 따라 달리 계획된다.

이러한 마스터 플랜을 실행하기 위해 지역별로 세부적인 개발규제계획(Development Guide Plan)과 국유지 판매프로그램(Government Land Sales Program)을 활용하고 있다.

그림 4. 싱가포르 도시계획 체계 및 기능

3. Raffles의 Town Planning

1800년대 싱가포르는 영국의 스탠포드 래플즈 경(Sir Stanford Raffles)이 싱가포르를 발견한 후 중개무역으로 번성하였다. 1819년부터 1923년까지 싱가포르를 통치했던 William Farquher는 싱가포르 항만의 규모를 키워 무역규모를 키우고자 하였다. 당시 아무런 계획도 없던 싱가포르 시가지는 무질서하게 확장되었다. 래플즈 경이 1822년 10월 싱가포르로 돌아왔을 때,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확장된 모습을 보고 매우 언짢아하였다. 그는 즉시 측량기사였던 필립스 잭슨 중위에게 도심계획을 마련하도록 하여 탄생된 “Plan of the Town of Singapore”가 최초의 도시계획이 되었다.

그림 5. Town Planning of Singapore 자료: http://www.wikipedia.org

이 계획은 영국의 식민지였던 Penang의 Georgetown을 참고하여 수립되었다. Penang 계획에는 인도인과 중국인 커뮤니티를 하나의 계획에 통합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인종별로 생활습성이 달라 하나의 커뮤니티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래플즈 경은 잭슨 중위에게 이러한 점을 주지시켰다. 그래서 최초의 도시계획은 도심내 도로를 격자형으로 계획하고, 네 개의 분리된 인종별 주거지역으로 계획되었다.

유럽인 타운의 경우에는 유럽 출신 무역업자와 부유한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차이나타운인 China Kampong은 현재 차이나타운의 위치에 지정되었다. 인도인을 위한 주거단지인 Chulia Kampong은 차이나타운 북측에 지정되었다. 싱가포르로 이주한 말레이인, 무슬림, 아랍인들을 위한 주거단지인 Kampong Glam은 Bugis, Arabs, Sultan of Singapore 세 개의 구역으로 분할되어 지정되었다. 인종간 주거지역 사이에 시장, 교회, 도로 등을 배치하여 인종별 주거지역을 확실하게 구분하였다.

유럽인 주거지역 서측으로 행정관서와 상업업무지구가 지정되었고, 싱가포르강변을 매립한 곳을 래플즈 광장으로 조성하였는데, 이 지역이 현재 다운타운 코어(Downtown Core)로 불리는 지역이다.

최초의 싱가포르 도심계획은 인종별 주거지역으로 지정하였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지되었다. 하지만 격자형 도로망 패턴과 용도지역 배분 패턴은 현재 도시계획까지 지속되고 있다.

래플즈 도심계획은 싱가포르 도시성장을 10년도 채 관리하지 못했다. 그만큼 인구집중이 가속화되었다. 1900년대 초반 싱가포르 도심은 초과밀 그 자체였다. 영국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최초의 도시계획에 대한 재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계획적으로 시가지의 과밀과 확장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기존 도심과 주거지역 주변으로 슬럼화가 진행되었다.

4. Master Plan 1958

4.1. 계획 수립의 배경

1820년대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는 증가하는 자동차 수요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도로는 극심한 혼잡에 시달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싱가포르 발전 신탁(SIT: Singapore Improvement Trust)을 설립했고, 1927년 싱가포르 발전 조례(Singapore Improvement Ordinance)가 제정되면서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였다. SIT는 싱가포르 도시계획을 담당해야 하는데, 당시 부족한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거나 주거지나 중심지역에서의 도로를 확장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공급되는 주택들이 중산층 이상의 수요를 충족시키기는 못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1959년 SIT가 폐지될 까지 23,000호의 주택밖에 공급하지 못했다.

그림 6. 싱가포르 개발초기 중심지역의 모습. 도시의 주거여건은 매우 열악하였으며, 매우 열악한 주택 개별세대에 7~8명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주택부족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25%가 도시면적의 1%에 해당하는 곳에 밀집하여 거주하였다.

1951년 싱가포르 발전 조례가 개정되면서, SIT는 싱가포르 전역에 대한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모든 토지에 대한 규제 권한을 부여 받았다. 당시 1 퍼센트도 되지 않는 면적에 25만 명의 인구가 살았다. 심지어 1 동의 상가주택(shop house)에 100 명 정도 거주하였다. 중심지역은 말 그대로 열악한 환경이었고, 기반시설 또한 매우 부족하였다.

4.2. 계획의 목표와 당시 사회 분위기

SIT는 1972년 싱가포르 인구 200만 명을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마스터 플랜을 수립하기 위하여 1952년부터 2년간 싱가포르 전역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분석 작업을 수행했다. 마스터 플랜은 래플즈 계획과는 달리 싱가포르 전역을 장기발전구상에 따라 토지이용과 개발을 유도함으로써, 새롭게 조성되는 환경에서 싱가포르 국민들이 살고, 일하고, 여가를 쾌적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개선하는 것이 이 계획의 첫 번째 과제였다. 두 번째 과제는 교통혼잡과 같은 중심지역의 혼잡을 개선하는 것이고, 세 번째 과제는 인구가 이 계획의 목표연도인 1972년에 200만 명까지 증가할 것에 대비하여 충분한 주택과 직장, 교육시설, 여가시설 등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네 번째 과제는 급격하게 싱가포르를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개발사업을 위한 유보지를 확보하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산업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장래 개발을 위한 토지를 확보할 것으로 제안하였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①중심지역 인근에 주택건설을 늘리며, ②중심지역내 슬럼과 불량 주택을 철거하여 재개발하고, 이들을 현대적인 주거공간으로 이주시키며, ③시가지가 무분별하게 외연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원, 운동장, 농지, 여가공간 등으로 활용될 그린벨트를 지정해야 하며, ④Woodlands, Jurong, Yio Chu Kang 세 곳에 학교, 여가 공간, 상점, 의료시설, 업무시설과 같은 취업공간이 마련된 자족적인 신도시를 조성해야 하며, ⑤새로운 산업을 위한 토지를 비축하고, ⑥인구 증가에 맞춰 새로운 도로와 주차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초안은 1956년에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빅토리아 홀에서 6주간 주민열람이 이루어졌다. 주민열람은 찬반의견을 제시할 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피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마스터 플랜에 대한 총 294건의 반대 의견이 접수되었다. 당시 The Strait Times(1956.04.04. p.8) 보도에 따르면 반대하는 사람 대부분이 그린벨트에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이 계획 초안이 발표되자, 싱가포르 토지시장이 요동을 쳤다. 산업용지로 계획된 곳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토지가 오를 것이라 기대를 했으며, 그린벨트와 그 인근 토지소유자들은 지가하락으로 반대하게 된 것이다.

그림 7. 당시 언론보도 내용 화면 캡쳐.
자료: http://eresources.nlb.gov.sg/newspapers/Digitised/Article/straitstimes19560105-1.2.132.aspx

Colony Hails Master Plan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제시되었다(The Strait Times. 1956.01.05. p.8).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마스터 플랜에 대한 국민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반대보다는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노동당 대표는 이 계획을 두고 자신들이 열망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같이 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고, 진보당 관계자는 이 계획에 의해서 일부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제대로 추진된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평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200만 명을 지탱할 수 있는 산업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현재의 중개무역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4.3. 마스터 플랜의 주요 내용

마스터 플랜 1958 도면은 중심지역(Central Map Area), 타운지역(Town Map Area), 식민지 지역(Colony Map Area) 3개의 도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도면마다 축척이 달리 적용되었다. 중심지역은 약 3천분의 1(a scale of 4 chains to 1 inch), 타운지역은 6천분의 1(a scale of 8 chains to 1 inch), 식민지 지역은 2만 5천분의 1(a scale of 2½ inches to 1 mile)의 축적으로 작성되었다.

그림 8. Master Plan 1958 Index Map. 자료: http://www.ura.gov.sg

이 계획에 첨부된 보고서에는 싱가포르 발전조례 제259조의 규정에 따라서 마스터 플랜 수립주체(competent authority)는 5년 마다 변경하거나 수정사항을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계획에서는 싱가포르 전역을 농촌계획구역, 도시계획구역, 중심계획구역 등으로 구분하여 계획을 수립하였다. 농촌계획구역은 11개의 계획지구(planning district), 도시계획구역은 16개의 계획지구, 중심계획구역은 12개의 계획지구로 세분하였다. 이들 3개 구역의 계획 내용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표현하는 방식이나 개발 사업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농촌계획구역

이 계획에서는 농촌계회구역에 3개의 뉴타운과 2개의 도시지역의 조성을 제안하고 있다. 새롭게 추가되는 뉴타운은 Woodlands, Bulim, Tomson Road/Yio Chu Kang Road변 등에 조성하는 것으로 계획되었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Bukit-Panjang과 Bedok-Changi는 새로운 도시구역으로 편입하는 것을 계획했다.

그림 9. Rural Planning Districts. 자료: http://www.ura.gov.sg의 자료를 재구성(진한 녹색이 그린벨트이고, 빨간 쇄선 안에 주황색 사선으로 된 곳이 신도시가 들어설 지역임)

기존 취락주민의 사회・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농촌정주지구도 지정되었으며, 학교(S)・의원(H)・상수도(W)・하수도(D)・커뮤니티 센터(C)・전기(E) 등과 같은 기반시설과 편익시설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었고 그 장소가 구체적으로 지정되었다. 기반시설 및 편익시설은 원을 6등분하여 그 안에 표시된 기호에 빨간 색으로 칠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그림 10. 기반시설 및 생활시설 표현방식. 자료: http://www.ura.gov.sg

도로계획의 경우에는 도면의 축척 때문에, 향후 새롭게 개설되거나 기존 도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경우에만 그 노선이 포함되었을 뿐, 폭원은 표시되지 않았다. 다만 Bukit Timah와 Woodlands에서 Paya Lebar 공항까지 연결되는 도로는 파크 웨이(Parkways)로 계획하고 이 주변을 그린벨트로 지정하고 있다.

Paya Lebar 신공항이 이 계획에 포함되었으며, 주변 지역에 대한 고도제한은 영국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농촌계획구역에 그린벨트가 지정되었는데, 이를 지정한 의도는 향후 여가, 농업, 혹은 임업 용도로 활용하기 위함이고, 이러한 용도와 관련이 없는 건축물의 건축은 금지되었다.

이 구역에서의 주거용 개발을 위해서는 계획수립 주체의 계획허가를 받아야 가능한데, 평균 주거밀도는 1에이커에 50인을 약간 넘지만, 1에이커에 100 명을 초과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산업용지는 새로운 산업개발을 위한 부지이다. 다만 대규모 농촌 정주단지에서 산업용 개발을 위해서는 계획허가가 필요하다고 규정하였다.

군부대 또한 도시계획으로 관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국토면적의 상당한 부분이 군사용지로 사용되었다. 향후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이 부지들은 대학, 주요 산업단지로 활용되는 중요한 토지가 되었다.

2) 도시계획구역

도시계획구역 도면의 축척이 농촌계획구역보다 커져, 계획에서 표현되는 것 또한 상세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구역에 포함되어 있던 중심지역은 싱가포르 발전규칙 마스터 플랜 관련 조항에 따라 별도의 구역으로 분리되어 다루어지는데, 이 구역이 바로 중심계획구역이다.

그림 11. Town Map Area 자료: http://www.ura.gov.sg의 자료를 재구성

도시계획구역에서 농촌계획구역에서 거론되지 않던 판매시설, 업무시설 및 관련 판매점, 행정 및 공공기관 청사, 교육시설(대학교) 등이 새롭게 계획되었고, 산업단지의 경우에는 그 시설의 위치와 규모가 구체적으로 정해졌다.

주거지 개발인 경우에는 이 당시 대부분의 주택이 함석지붕과 같은 불량주택이었다. 주거개발지구내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불량 주택 건축이 허용되었다. 농촌계획구역과는 달리 계획인구밀도가 에이커 당 200인까지 허용되었다. 이 기준은 모든 주거용지에서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16개의 계획지구 여건에 따라 달리 적용되었다.

중심판매시설 및 근린판매시설이 구체적으로 계획되어 있는데, 이 계획을 근거로 현재 쇼핑몰들이 집적해 있는 오차드 로드(Orchard Road)가 중심판매시설 지구로 계획되었다. 근린판매시설은 도시계획구역내 뉴타운이나 새롭게 조성되는 주거지역과 기존 주거지역의 중심에 지정되었다.

Cluny Road와 Bukit Timah Road 인근에 말라야 대학의 분교를 설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싱가포르가 영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대학교 설치계획은 추진되지 않았다.

농촌계획구역과는 달리 도시계획구역의 산업용지는 경공업, 일반공업, 특수공업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목표연도까지 1,441 에이커를 조성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3) 중심계획구역

중심지역 지도는 중심지역의 도시계획을 위해 작성되었는데, 주로 향후 이 지역의 재개발과 개발, 기반시설 개선 등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장래 개발을 위한 토지를 확보하는 내용이 반영되어 있으며, 다른 유보지의 경우에는 구체적이고 자세한 도시계획이 준비될 때까지는 필요하지만, 그 구체적인 위치를 표현하지 않았다.

중심계획구역에는 재개발사업지구, 주거지 개발사업, 중심판매시설, 근린판매시설, 상업지역, 공공업무시설, 도로계획, 주차장 용지, 교육 및 사회서비스 시설, 공개공지, 산업용지, 창고용지, 역사문화보전지구 등이 지정되었다. 도시계획구역과 다른 점이 바로 재개발 사업지구와 주차장 용지, 역사문화보전지구가 지정된 점이다.

마스터 플랜 1958 보고서에 명시된 중심지역 경계와 도심계획지구 혹은 중심지역 프로그램 지도의 경계가 서로 다르다. 도심계획지구 혹은 중심지역 프로그램 지도의 면적이 중심지역 지도의 면적보다 크다. 추후 중심지역 경계와 명칭은 콘셉트 플랜이나 마스터 플랜을 수립할 때마다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림 12. 중심지역(Central Area) 계획도면. 자료: http://www.ura.gov.sg의 자료를 재구성

1953년 중심지역에는 약 24만 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재개발이 필요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약 20만 명이었고, 재개발을 하더라도 같은 사업지구에서 수용 가능한 인구는 14만 여명에 불과하였다. 약 6만 명에 가까운 인구는 중심지역이 아닌 곳으로 이주가 불가피하였다.

중심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주차장 확보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였다. 총 9.56 에이커의 부지를 주차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는데, 12개 지구 가운데 10 곳은 1층에 1층에 주차하는 것이고, 나머지 2 곳은 주차 빌딩을 조성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수립된 도시계획에서 주차장을 계획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계획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림 13. 마스터 플랜 1958 보고서에 나타난 주차장 계획. 자료 : http://www.ura.gov.sg

5. 마치면서

싱가포르 도시계획은 중심지역의 혼잡과 사회기반시설의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식민지 상황에서 중심지역에 대한 도시계획이 수립되었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계획은 수립되지 않고, 중심지역의 혼잡을 완화하고, 노후한 주거지를 재개발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싱가포르는 영국 도시계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계획 없는 개발이나 건축은 불가능하였다. 또한 계획수립 과정에서 주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태도는 도시계획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싱가포르의 현대적인 도시계획의 시작은 1958년에 수립된 마스터 플랜 1958이다. 오늘날 싱가포르 마스터 플랜과 비교하면 그 수준이 한참 떨어지지만, 현재 제주도 도시계획과 비교했을 때, 57년 전 계획이 지금 우리의 계획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비전 지향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림 14. 최초의 도시계획(1952). 자료: 제주시 도시계획 40년사

제주도의 도시계획 역사는 오히려 싱가포르보다 더 길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1952년에 도시계획이 수립되어 당시 내무부 관보에 고시되었다. 당시 혼잡하고 복잡했던 묵은성 주변은 계획구역에서 제외하면서, 동문로타리와 관덕정을 연결하는 도로망 계획만 있었을 뿐이다. 이로 인해 관원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했고, 주민들이 오일장으로 사용했던 관덕정은 도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의 정체성은 상당 부분 훼손이 되었다. 싱가포르는 기존 가로망을 최대한 존치하면서 도심재개발을 추진한 것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점이다.

그림 14.의 진한 노란색 부분은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를 표시한 것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필지 분할의 원칙만 보고서에 서술한 채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인지 묵은성을 벗어난 동네의 패턴이 격자형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변해버렸다.

제주도 전역에 대한 도시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고, 도시계획의 내용에는 공항,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공원, 도로만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제주도의 지역정체성이 녹아 있는 묵은성이 계획대상지에서 제외되고, 현재의 시청 자리에 있는 도청을 계획함에 있어서 아무런 공간적인 배려가 없었다. 이는 원도심의 정체성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묵은성에서 시청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상업지역이 평면적으로 확산되면서 원도심의 구심력이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싱가포르와 제주도 섬이라는 점과 식민지를 경험했던 점은 공통점이다. 물론 싱가포르는 중개무역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을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마스터 플랜 1958의 계획인구 200만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점은 당시 의견수렴 과정에서도 충분히 논의되었던 사안이다.

차이점이라면 최초 도시계획 수립 당시 근거 법령이었던 영국의 「Town and Country Planning Act(1947)」과 「조선시가지계획령(1936)」의 규제 내용이 달랐고, 토지를 대하는 가치관이나 태도가 달랐기 때문에 도시계획의 수준 차이가 발생한다고 생각된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이다. 우리는 제주의 미래비전을 위해서라면 토지와 관련된 특례 규정을 충분히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서는 제안하려 하지 않는다. 계획 없는 개발이 허용되는 지금의 제주도 상황에서 제주도의 미래비전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프로필>
1989. 홍익대학교 도시공학과 입학
2002.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시계획과(공학박사)
1995. 국토연구원 연구원
2003.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원
2004∼2006. 2011. 제주대학교 시간강사
2006∼2014.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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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2015-02-24 13:58:31
그림 추가했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도 수정했구요.

이정민 2015-02-24 11:33:42
그림 14. 제주시 도시계획이 빠졌습니다.
그리고 그림 7. 아래 "노조대표"를 "노동당 대표"로 수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