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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화된 교과 경계의 틀을 무너뜨리니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고정화된 교과 경계의 틀을 무너뜨리니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1.17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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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학교 현장] <32>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다운 신엄중학교
신엄중 전경.

1971년 우리나라 교육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중학교 입시 제도의 폐지였다. 중학교 입시 제도의 폐지는 자신이 가고 싶은 중학교에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학구제 도입과 연관이 있다.

당시 학구제 실시로 통학에 불편이 생기는 곳이 나타났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4개 마을(신엄·중엄·구엄·용흥리)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교육 평준화 실시에 발맞춰 학교 신설을 추진한다. 지금의 신엄중학교다. 학교 설립을 위해 구슬땀이 모인 건 물론이다. 그야말로 빌레였던 땅을 고른 건 주민들이었다. 연인원 1만명 가까이 동원돼 신엄중학교가 탄생했다. 주민들의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굴곡이 없던 건 아니다. 제주시로 인구가 빠지면서 학생수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학생수는 70명까지 떨어졌고, 지난 2002년엔 폐교 대상으로 통보를 받기도 했다. 땀이 어린 곳을 주민들은 내줄 수 없다면서 학교살리기 운동을 본격화했다. 신엄중 살리기 대책위원회가 가동됐고, 무상임대 다세대주택도 지어졌다.

그 결과 이젠 오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했다. 178명의 학생수 가운데 100명 가량은 4개 마을에서 수급되지만 나머지는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는 이렇게 10년만에 전혀 다른 학교로 바뀌었다.

여기엔 주변상황의 변화도 있지만 학교내의 변화가 무엇보다 컸다. 신엄중학교(교장 신순선)는 자유학기제 시험학교가 아니면서도 시험학교보다 더 자유학기제를 잘 운영하는 학교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제주형 자율학교로 다져진 기초 위에 자유학기제라는 씨를 뿌린 결과였다.

신엄중학교의 수업 장면.

신엄중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배움과 즐거움이 있는 수업변화를 내걸었다. 여기에다 꿈과 끼를 키우는 동아리 및 진로활동이 더해졌다.

신엄중은 자유학기제 기간동안 수업변화를 위해 공통과정 가운데 국어·사회·수학·기술가정 등 4개 과목의 주당 시수를 1시간씩 줄였다. 대신 자율과정을 만들어 빛을 봤다. 자율과정은 △인성박물관 △신문으로 만나는 세상 △조작체험 △생활디자인 등 모두 4개 과정으로 운영됐다. 자유학기제를 맛보는 학생들은 이들 4개 과정 가운데 2개 과정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한학기동안 68시간의 새로운 과정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 과정마다 해당 교사와 전문 강사 등 한꺼번에 2명이 투입되면서 강의의 몰입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다.

특히 교과수업의 변혁은 신엄중만의 자랑거리가 됐다. 신엄중은 학급당 학생수가 25명내외라는 소규모 학교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 결과로 내놓은 건 수업개선으로 도출됐다. 4인 1모둠으로 구성된 ‘ㄷ’자형으로 수업모형을 변화시켰다. 이에 앞서 교사들은 올해 1학기 때 ‘배움공동체’ 연수를 통해 수업개선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신순선 교장은 “주입식 교육 때와는 달리 소외되던 학생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부여했다. 학생들에겐 생각할 시간을 주고 교사들은 기다려줬다. 처음엔 엉성했으나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일부 학생만 바라보던 수업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수업으로 변신했다”고 설명했다.

육지부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혁신학교의 모델이 신엄중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타 시도 혁신학교에 재학하다가 신엄중으로 전학온 학생은 “신엄중이 오히려 낫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교사수업동아리를 중심으로 한 수업변신도 신엄중엔 있다. 국어·도덕·사회·영어 교과 교사들이 중심이 돼 매월 한 차례 ‘1day’ 집중 수업을 전개한다. 한가지 주제를 놓고 교과를 융합시키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이런 수업은 혁신학교를 성공 모델로 꼽는 학교에서 주로 쓰고 있는 수업의 하나이다. 신엄중은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제주도내 모든 학교들이 지향해야 할 수업방식을 선도하고 있다.

자유학기제를 설명하는 신엄중 교사.

이런 수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엄청난 노고가 빠질 수 없다. 해당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은 하루 수업을 위해 5차례 모여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를 한다.

신순선 교장은 “프로젝트 수업은 지식, 이해, 기능, 평가 등 모든 요소를 포괄한다. 종전엔 수업을 개인 영역으로 생각했기에 다른 교사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으나 신엄중은 그걸 없앴다. 교과의 경계를 무너뜨린 결과 애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혁신’은 없는 걸 새로운 걸로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있는 걸 새롭게 만들 수 있음을 신엄중이 사례로 당당히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올해 중학교 3학년 48명 가운데 2명이 과학고에 입학하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미니 인터뷰] 신엄중 1학년 이태우·한혜원 학생

한혜원(왼쪽) 이태우 학생.

신엄중 1학년 이태우·한혜원 학생의 공통점은? 이들은 올해 첫 자유학기제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태우 학생은 자유학기제가 “진로탐색은 물론,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했고, 한혜원 학생은 “1학기 때 서로 다투던 애들이 진지하게 꿈을 찾는 걸 봤다”고 말했다.

다들 자유학기제에 대한 긍정 반응들이다. 그렇다면 신엄중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수업개선에 대한 생각들은 어떨까. ‘ㄷ’자형 수업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씩 해달라고 했다. 한혜원 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자형 책상 배치였을 때는 발표할 때 선생님 눈치를 봤어요. ‘ㄷ’자로 바뀌니까 애들을 마주보고 토론도 해요. 이젠 애들 등을 볼 일은 없어요.”

이태우 학생도 ‘ㄷ’자의 매력에 우선 순위를 매겼다.

“당연히 ‘ㄷ’자 배열이 좋죠. 수업에 참여하지 않던 애들도 발표를 하곤 해요. 선생님의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서로 부담없이 모르는 걸 물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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