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그 진정한 여행
인생 후반전, 그 진정한 여행
  • 홍기확
  • 승인 2014.06.05 15: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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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51>

현재 40세 한국 사람의 평균수명은 100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더욱 우울한 것은 평균수명에는 OECD 국가중 1위인 자살률(10만명당 33.3명, 2011년 기준)과 전세계 국가중 1위인 교통사고 사망률(10만명당 114명, 2009년 기준)이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이 나쁘면(?)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가? 100세! 바로 당신의 이야기이다. 꿈이 아닌 현실이고, 이제 61세에 하는 환갑의 ‘잔치’는 과거의 영광뿐인 부끄러움의 미학(美學)이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신과 의사이자 세로토닌 전도사인 이시형 박사와 이슬람 전문가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가 같이 쓴 『인생내공(人生內攻) - 내일을 당당하게』를 읽었다. 감격에 겨워 아내에게도 추천하여 함께 읽었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100세 생일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저자는 『100세 인생의 다섯 가지 목표』로 답한다.

첫째, 100세까지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어야 되고
둘째, 100세까지 치매에 안 걸려야 되고
셋째, 100세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어야 되고
넷째, 100세까지 병원에 안 가도 되는 사람이어야 되고
다섯째, 100세까지 우아하고 섹시하고 멋있게 살아야 된다.

미국의 경우 일생동안 평균적으로 8군데의 직장을 다니고, 더욱 역동적인 시기를 살았던 이른바 베이비부머세대(55~63년생)들은 11~12군데의 직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평생직장이란 개념을 쉽사리 깨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일하면 을사오적)은 은퇴 후 남은 수 십 년을 생각하게끔 하는 신조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갑내기 아내와 나의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태백을 지나 삼팔선을 건너기 직전이다. 둘 다 인생의 1/3정도 밖에 살지 않았으니 은퇴 후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 게다가 집사람은 6번째 직장이고, 나는 5번째 직장이다. 아마도 죽기 전에는 각각 직장 10개 정도는 가뿐히 경험할 것이다. 경험한 게 많은 만큼 직장에 대한 시야도 꽤나 개방적이고 냉정하다.
또한 20대에 혼신의 힘을 다해 밥벌이를 위한 공부를 한 지라, 지금 30대에는 우리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 우리가 40대가 된다면 그때는 100세의 분기점인 50, 60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밥벌이를 위한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한편, 지금 직장이 무조건 최선일까?
아니다. 차선일 수도 있고, 최악일 수도 있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을 패러디하여 설명하면, 가장 훌륭한 직장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직업 개수는 미국의 1/3에 불과하다. 최고의 직장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직장이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그 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현재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한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충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비록 보람이 있더라도 ‘그렇지 않아도 될 나이에’ 조직을 떠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소모품처럼 세상에 내쳐질 수 있다.
본인이 떠나면 조직에 큰 일이 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조직은 재생력과 더불어 회복탄력성이 있다. 다 잘 돌아가게 되어 있다. 결국은 조직에 있는 동안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라도 아니 오늘 당장 일어날지 모를 조직의 섭섭한 ‘한 수’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첫 직장을 떠나면서 선배에게 들은 얘기는 내 평생의 직장관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선배는 만년 대리였다. 유순함과 함께 후배들의 귀감이 되는 성실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선배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동기가 차장으로 승진하여 자신의 상사가 된 것이다. 이후 선배는 일할 의욕을 잃은 듯이 외근이 잦았다. 그러다 내가 사표를 낸다고 하자 마음속의 얘기를 털어냈다.

“저 차장은 내 동기야. 친하진 않았지만 모임 때마다 자주 만났지. 그런데 이 친구는 동기들이랑 술을 마시면 1차만 끝나고 들어가고, 심지어 상사들이랑 마셔도 1차만 하고 도망가더라고. 처음에는 동기나 상사들이 욕하더니만, 몇 년 지나니까 원래 술을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더군. 1차만 끝나서 간다고 말해도 그러려니 하더라.
반면 나는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2차, 3차, 당구장에서도 상사들이랑 끝까지 함께 했지. 집이 먼 상사가 있으면 찜질방에서도 같이 자주고 했어. 그러다보니 상사들이 나를 자주 찾더라. 인기가 꽤 좋았어. 동기들은 내가 동기 중에서 제일 인정받고 잘 나가는 줄 알았지.

가정생활이 잘 안 되긴 했어. 집사람한테는 술도 업무의 일부, 2차전이니까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내 몸도 힘들고 집사람도 지쳐갔거든.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니 더더욱 집사람과 소원해졌어. 애는 어떻게 컸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간염 때문에 몇 년을 고생하고, 당뇨까지 걸리니 술을 못 먹게 되었어. 자연스레 그렇게 친했던 상사들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다른 술상무들을 찾아 떠나더라고.

그러다 대리 승진하고 1~2년 후쯤이었나? 지금 차장이 된 친구가 회사 비용으로 해외유학을 간다는 거야. 언제 그렇게 외국어를 공부했는지 사내 시험에서 1등을 했더라고. 게다가 입소문이 도는데 새벽에는 자격증 학원도 다니고, 저녁에는 다른 공부도 하고 그랬나봐. 사내 전산 교육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들었어. 나는 눈치 보여서 그런 거 하나 없이 일만했지. 평일에는 상사들과 술 먹고, 심지어 주말에도 할 일이 없더라도, 상사가 나오니까 나도 나와서 같이 밥 먹어주고 그랬거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래. 회사의 시스템을 잘 이용해라. 회사가 제공하는 범위 내에서 교육이든, 무료 강연이든, 유학이든 활용하라는 거야. 동기들 중에서 대리는 나 밖에 없는 거 아냐? 만년 대리다. 아무리 술 먹고 잘해서 승진하려고 해도 가정 망가지고 자기 몸 망가지면서 할 필요는 없다. 남는 게 없어. 게다가 지금의 나는 뭐냐? 집에서도 외면 받고, 회사에서도 인정 못 받고.

제대로 판단한 줄 모르겠지만 너를 보면 내가 보인다. 뭐든 적극적으로 하려는 건 좋지만 너 뿐만 아니라, 결혼했으니까 집안도 좀 챙겨가면서 해. 그리고 어울려 술만 먹지 말고 회사 시스템을 이용해서 공부도 하고 말이야. 정신 못 차리고 흔들릴 때는 나를 생각해봐라. 남는 게 없는 만년 대리를 말이야.”

당시 선배의 동기인 차장의 자리에는 업무와 그닥 관련이 없는 두꺼운 마케팅 이론서가 여러 권 놓여있었다. 그 차장은 꾸준히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려 노력했다고 한다. 가끔 술 먹을 때에는 퇴직 후에 마케팅 회사를 차리겠다는 욕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곤 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끝났다. 평생 직업의 개념도 경쟁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직장에서 가파른 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몸부림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다르다. 틀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도 많다는 얘기다. 100세를 살면서 현재 직장은 기껏해야 50대 전후로 끝나는 ‘과정’에 불과하다. 현재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나머지 인생 후반의 2차전을 위한 여력을 남겨두고 내공을 쌓으며 대비하는 것도 좋다.

이시형 박사와 이희수교수의 책, 『인생내공(人生內攻) - 내일을 당당하게』를 읽고 나서 6개월의 장기교육을 가기로 한 내 결심을 궂혔다. 물론 회사의 비용으로 가는 것이다.
한편 아내는 20대 밥벌이를 위한 공부를 힘겹게 마치고, 지금 30대 중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 새벽에 잠이 절로 깨진다고 한다. 아내는 퇴직 후 카페를 경영하는 숲 해설가가 꿈이다. 물론 100세까지 제 발로 걷기 위해 운동도 미리미리 열심이다.

살아가며 쉽게 얻지 못하는 것들. 우리는 쉽게 얻지 못하므로 쉽게 안주하게 된다.
며칠 전 띠 동갑 형님을 만났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사상이 자연스레 보수적이게 되고 트로트가 좋아진단다. 변화가 없는 게 편하다고 한다. 너도 그럴 것이라 한다.
아니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진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고, 진정한 여행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가지 않은 길이 많다. 겪어봐야 할 것도 많다. 지금부터는 인생 후반전을 위한 내공수련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A true travel)』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1902~1963, 터키)

A true travel(영어원문)

The most magnificant poem hasn't been written yet
The most beautiful song hasn't been sung yet
The most glorious day hasn't been lived yet
The most immence sea hasn't been pioneered yet
The most prolonged travel hasn't been done yet.

The immortal dance hasn't been performed yet
The most shine star hasn't been discovered yet.

When we don't know any more what we are supposed to do
It's the time whe we can do true something
When we don't know any more where we are supposed to go
It's the start when the true travel has just begun.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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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2014-06-05 23:44:38
인생후반을 준비하는 내공수련을하는 멋진 모습이 그려집니다. 평범하지않은 특별한 아빠시네요. 자극을 주는 좋은글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