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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 선거와 필리핀
6.4지방 선거와 필리핀
  • 조미영
  • 승인 2014.06.03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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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는 여행자 조미영의 여행&일상] <10>

봄의 여운이 남을 틈도 없이 더위가 훅하니 찾아왔다. 아직 여름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데, 벌써 햇살이 뜨겁다. 올여름 더위가 드세지는 건 아닌지 조금은 걱정스럽다. 그러고 보니 제주의 날씨가 점점 동남아를 닮아가는 것 같다. 빨리 찾아오는 더위와 습한 기운들......, 날씨변화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할 때다.

더운 나라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유독 더위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필리핀의 날씨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그중 가장 더운 때는 3월에서 5월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난 3,4월 두 달간 필리핀에 머물렀었다. 연일 35~40도를 오가는 날씨에 가끔씩 내리 쏟는 스콜은 모락모락 수증기를 만들며 거리 전체를 사우나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필리핀을 연상하면 더위가 후끈 느껴진다. 그래도 여행의 기억은 즐거움이 더 크게 남는 법! 아련히 스치는 장면들에서 미소가 절로 찾아든다.

 

산호빛 해변의 필리핀.

글을 쓰기 위해 참 오래된 여행기록을 꺼내들었다. 굳이 묵혀둔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난 필리핀에서 두 번째 피플파워(people power)를 목격했었다. 이 과정에서 선거가 그리고 정치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필리핀은 한때 우리나라에 원조를 해주었던 나라지만, 21년간 지속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의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린 나라다. 이후 여러 차례의 개혁시도로 난관을 극복하고자 노력 중이다.
수 천 개 섬들의 나라 필리핀. 그중 수도 마닐라가 있는 곳은 북부의 루손 섬이다. 비행기는 4시간을 날아 니노이아키노국제공항에 나를 내려놓았다. 필리핀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 니노이아키노가 1983년 이곳에서 암살당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목청껏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3월이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이 창가로 들이친다. 아침식사 전 동네산책을 나섰더니 새벽시장이 한창이다. 생선과 채소 등이 주 거래품목이다. 나중에 외출을 위해 다시 나왔을 때는 이들 상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상가들만이 띄엄띄엄 문을 열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 새벽에만 잠깐 장을 여는 것 같다.
우선, 환전소를 찾아 달러를 페소로 바꾸어야 한다. 사설환전소가 워낙 성행하여 은행대신 줄곧 이용했다. 당시 필리핀은 선거를 앞두고 있던 터라 정치적 불안이 가중되던 때다.

그래서 환율이 큰 폭으로 요동을 치며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내려가곤 했다. 불안정한 정치가 국가경제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풍부한 자연자원과 훌륭한 경치가 경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세부, 보라카이, 팔라완 섬 등의 해안휴양지는 물론 따가이따이 화산과 팍상한 폭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라이스테라스 등의 원시적 자연은 관광객들을 줄곧 끌어당기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라이스테라스.

마닐라에서 차로 두 시간쯤 가면 팍상한 폭포가 나온다. 우리에겐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으로 알려진 곳이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인데 이곳의 전통 배인 방카를 타고 가야 한다. 1시간 정도 사람의 힘으로 거슬러 가는데 그들의 숙련된 솜씨가 놀라울 정도다. 그들의 원시적이지만 신성한 노동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폭포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시원스레 내리는 물줄기 소리만큼은 우렁차다.

 

팍상한 폭포의 하류.
팍상한 폭포의 원시림.

또한,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가면 해안이 나온다. 풀 빌라 형식의 리조트들이 있는 곳들로 부유한 이들의 휴식처이다. 배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서 스노쿨링 등의 물놀이를 하다 돌아올 수 있고, 경치 좋은 해안에 앉아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다. 야자나무 아래에서 필리핀식 빙수인 할로할로와 시원한 산 미구엘 맥주 한잔을 들이키면 마닐라 시내에서 찌든 더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하지만, 이런 기쁨도 잠시! 돌아오는 길 곳곳에서 보게 되는 다닥다닥 붙은 판자 집들과 쓰레기가 쌓여있는 하천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반면 부유한 이들은 상상 이상의 삶을 산다. 거주지 입구부터 출입을 체크하는 경비시스템을 하고 커다란 저택에 넓은 정원을 갖춘 빌라촌을 형성하고 지낸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대형 쇼핑몰에서 거침없이 쇼핑을 해대는 그들과 도시빈민의 삶이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물론 어느 나라건 이런 빈부격차가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기본생활권과 복지가 형편없는데 지도층의 사치만 극대 된다면 이는 볼 성 사나운 일이다.

 

이멜다의 별장이었던 풀빌라 리조트.
휴가를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

도시의 역사를 알기 위해 올드마닐라로 향했다. 이곳은 오랜 스페인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스페인풍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성벽요새 인트라무로스는 1571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건설된 도시로 주거지와 성당, 병원 등이 있다. 300여 년간의 스페인 통치 이후 일본, 미국 등의 식민지배도 이곳을 거점으로 진행되었다. 그들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 유적이다. 필리핀의 독립영웅 호세리잘도 이곳의 산티아고 요새 감옥에 갇혀있다 공개 처형됐다. 지금은 그 자리에 호세리잘 공원을 만들어 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오랜 식민 지배를 겪고도 강인한 민족정신을 키울 수 있음에는 이런 훌륭한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19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몰아냈던 필리핀 민중의 힘(people power)은 이런 정신들이 바탕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뉴스속보가 나온다. TV화면에는 대규모 군중집회모습이 나오고 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에 분노한 민중들의 항거였다. 서민출신의 영화배우로 인기를 얻어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결국 탐욕에 의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그는 또 한 번의 피플파워에 의해 권력에서 물러나는 신세가 된다.

 

 

이런 소박한 먹거리 하나에도 행복해 하는 낙천적인 필리핀사람들에게 좋은 지도자가 나서길 바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리핀 국가 경제는 아직도 답보상태다. 부패의 상징이었던 이멜다 마르코스는 다시 하원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였고, 시민저항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던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도 최근 마닐라 시장으로 당선되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렇듯 오랫동안 계속된 부패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필리핀의 미래는 그리 밝다고 볼 수 없다. 낙천적인 사람들과 풍부한 자원이 국가 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선 올바른 지도자의 역할이 절실하다.

이제 며칠 후면 6.4 지방선거일이다. 각 분야별 지역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그 지역의 미래발전을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우리 지역 역시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 정체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고착화된 지역 권력의 구도 탓이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선거의 힘으로 낡은 정치구도를 바꿔야 한다. 올바른 한 표 행사로 내 주변의 작은 변화들을 기대해 본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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