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21:53 (금)
평범한 성공
평범한 성공
  • 홍기확
  • 승인 2014.02.12 10:0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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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3>

지난 주말 다른 식구의 아이들과 밥을 먹다가 9살 난 친구가 물어본다. ‘삼촌은 어렸을 적에 꿈이 뭐였어요?’ 이 친구의 좋은 점은 여기에 있다. 가끔씩 엉뚱한 질문으로 나를 각성시킨다. 어제는 직장동료가 허공에 대고 질문을 한다. ‘어떻게 사는 게 멋지게 사는 걸까?’
아이의 질문이라 해도 사소하지 않다. 허공에 하는 질문에도 나름 진지한 고민이 있다.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한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이미 이룬 것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갈망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소(些少)한 것에서 사단(事端)이 일어난다.

초등학교 2학년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빵이나 제과를 굽는 파티시에가 꿈이라며, 지금까지 꿈이 바뀐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빵이나 쿠키, 케이크 굽는 걸 좋아하는 집사람과 단짝이다. 이 친구는 분명 파티시에가 될 것이다. 비록 직업으로 하던 취미로 하던 특기로 하던 관계없이 말이다.
창공을 가른 직장동료의 ‘멋진 삶’에 대한 질문에는 그간 내가 쓴 글들을 잔뜩 보내주었다. 시간이 날 때 읽어보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지 엿볼 수 있으며, 그 곳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간략한 메시지와 함께.

앞선 아이와 어른아이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렇다.
‘평범한 성공’

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가정의 가장으로, 향기로운 영향력을 뿌리는 것도 좋다. 물론 둘 다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시간은 24시간이다. 두 마리 토끼 중, 좋은 리더 되기는 남에게 부탁하는 민간위탁 등 아웃소싱으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가장 되기는 남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직원들에게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하지 않았는가?

윗사람들에게 충성하고 인맥이라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세력을 구축하는 것도 좋다. 이른바 정치, 혹은 정치질이다. 정치는 어느 조직에나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에도 수많은 파워 게임과 서열들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나는 힘없는 사람들일지라도 만나서 즐겁다면 흔쾌히 이들을 택하겠다. 정치를 하면 존재의 품격과 만남의 품격이 떨어진다.

죽자 살자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들 한다. 그 다음은?
더 많은 돈을 벌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그 이후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만약, 만약에 진정 그들이 결국 행복해졌다면 나는 평범하게 일하며, 품격을 지킬 것이다. 죽음과 삶의 벼랑 끝에서 인생을 살기보다는 평범한 평지에서 나와 가족과 함께 품격을 지키며 살 것이다. 결국 선택이다. 양 극단은 싫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B(탄생, birth)와 D(죽음, death) 사이의 C(선택, choice).

또 다시 되 집어 보자.
성공하고 정치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행복은 비교에서 생겨난다. 성공하면, 성공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그 안에서 본인보다 더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교를 하게 된다. 결국 상대적인 박탈감과 느끼며 더 나은 삶보다는, 더 높은 삶을 선택한다. 그리곤 다시 성공하려하고 정치를 하게 된다.
삶의 품격은 멀어지고, 껍데기의 품격은 가짜로 빛난다. 냄새를 가리는 향수처럼. 그래서 헬렌 켈러는 해를 향해 서 있으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해를 향해 달려가면 그림자를 놓친다.

만약, 만약에 진정 그들이 성공의 끝을 보았다면 기립박수를 보낸다. 완벽한 그들의 인생은 어떤 의미로 빛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보기에는 패배주의자로 남을 지라도, 나만의 최적화된 평범한 성공을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품격을 잃지 않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해를 등지고 달릴 것이다. 항상 사람들은 내 그림자를 볼 테지만 그와 동시에 본래의 내 자신도 볼 것이고, 덤으로 등 뒤에 비치는 후광도 볼 것이다.

한편 노동에도 품격이 있다. 회사는 나에게 수백만원의 월급을 준다. 이 돈은 그저 그렇다. 회사는 단지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범위에서 회사의 형편상 줄 수 있는 돈을 줄 뿐이다. 여기에 더하자면 조직을 떠나지 않게 비슷한 격의 회사에서 주는, 알파적인 요소를 첨가한 덩어리를 월급으로 줄 뿐이다.
나는 그저 그런 월급의 가치가 아니다. 내 수천, 수억원의 가치를 ‘노동’에 한정된 비용으로 따지는 게 구차하지만, 딱 월급만큼 일하려는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건 진정 노동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받는 월급의 가치가 아닌, 내 노동의 품격의 가치만큼 일한다.
자본주의는 칼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일정부분 자신을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보편적 매춘의 시대’다. 2000년대 젊은이의 최대 화두인 학벌, 혈연, 지연, 외국어, 모든 것들을 포함한 스펙, 스펙의 추구(The persuit of specification)가 그렇다.
하지만 칼 마르크스는 틀렸다. 자본주의에서도 품격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간과했다. 노동을 자본가의 착취라고 생각하면 노동자는 심하게 말하면 노예가 되지만, 품격 있는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독립적인 주체인이 된다.

나는 사형수다. 우리는 모두 사형수다. 다만 사형일이 확정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나는 태어났다. 그리고 죽을 것이다. 다만 언제 죽을지 확정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기에는 내 삶의 품격이 안타깝다.
죽도록 일해서 마지막에 죽는다면 내 삶의 영혼은 어디있나.
한 곳만을 바라보며 살기에는 270도, 4면8방 중에 3면 6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진화된 내 눈이 안타깝다.
멋지게 사는 법에 대한 질문에, 나는 ‘평범한 성공’이라고 답한다.
소설가 이상도 날개에서 말한다.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비록 천재는 아닐지라도 품격 있는 박제(剝製)가 된다면 그것도 적잖이 유쾌한 일일 것이다.
비록 성공은 아닐지라도 평범한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도 적잖이 유쾌한 일일 것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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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있는 노동자 2014-02-14 17:49:59
품격있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평범한 성공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삶을 본받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품격있는 노동자 2014-02-14 17:49:26
품격있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평범한 성공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삶을 본받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홍기확 2014-02-12 16:33:52
제가 쓴 글들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글이었는데,
아직 생각의 정리가 완성단계가 아니어서 그런듯합니다.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범한 행복 2014-02-12 13:53:32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이 바로 행복이죠...
눈 앞에 행복을 두고, 우리는 늘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죠.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돌담 2014-02-12 11:34:17
품격있는 노동자..좋은 말씀이네요.
자신의 품위를 다치지 않게 하거나, 혹은 지키기 위해 최소한 나만큼은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품격있는 노동이 이뤄지기 위한 기본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