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42 (토)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4.01.06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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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1>

1992년 최민수와 심혜진이 주연한 영화로 결혼이야기가 있다. 방송국 PD였던 최민수와 단역 성우배우인 심혜진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하는 당시로서는 초특급 울트라 파격적인 결혼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1992)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는 1.2건에 불과했었다. 물론 2012년에는 5배가 넘는 6.5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청소년 관람불가는 윤리적인 부분에서 따논 당상일 터!

이 중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내용이 가물가물 하지만 결혼한 이후 처음 싸우게 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최민수는 화장실에서 이를 닦기 위해 잠옷 바람으로 들어간다. 칫솔을 들고 치약을 짜려는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다. 아내가 치약을 자기만 짜기 편하도록 위부터 누른 흔적을 다시금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혜야! 내가 치약을 밑에서부터 짜라고 했지! 몇 번을 말해야 고치겠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틀 후면 집사람과 결혼한 지 딱 9년째가 된다. 3000일이 넘는 동안 집사람은 치약을 밑에서부터 짠 적이 없다. 항상 자기 편하도록 위에서부터 짠다.

한편 나는 이를 닦을 때마다 집사람이 편하게 위에서부터 짜도록 치약의 밑동을 꾸욱꾸욱 눌러서 치약을 위로 올려놓는다. 이 부분에서 음양의 조화를 논하는 건 코미디일까? 어쨌든 단 한번도 집사람에게 치약을 위에서부터 짠다고 구박한 적이 없다. 다만 조용히 미소 지으며 치약을 위로 밀어 올려놓는다. 영화 결혼이야기를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적어도 치약 때문에 이혼할 까닭은 없다.

오늘은 내복을 거꾸로 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중에 집사람이 어떻게 봤는지 말한다.

? 내복이 좀 이상한데? 거꾸로 입었네! 여기 상표 있는 부분이 뒤로 가는 게 원칙이잖아. 똑똑한 사람이 가끔씩 이런 것도 모르는 게 우습다니까.”

그러고는 자기의 옷을 까뒤집으며 상표가 있는 부분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나도 질 수 없어 받아친다.

가끔씩 거꾸로 입는 것도 괜찮아.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입을래

또 치약 생각이 난다. 너나 잘해라. 웃음을 참는다. 너는 잘 하냐?

결혼을 불완전한 사람 둘이 만나서 완벽한 한 쌍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오히려 헐렁한 사람 둘이 만나서 길을 걷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내가 왼발을 한번 내디디면 자동으로 집사람이 오른발을 한번 내디디는 것처럼 엇박자이다. 그래도 자연스럽게 왼발, 오른발을 반복해서 걷는 것이다. 물론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발이 엉켜서 몸이 요동치기도 한다. 하지만 음과 양, 왼발과 오른발은 생각지도 않고 비교적 잘 걷는다.

결혼을 하고 편안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걸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부부는 길을 함께 걷고 있다. 동행하는 길은 세월이 되고, 걸음걸음은 사소하지만 특별한 역사가 된다.

오늘도 분명 집사람은 치약을 위에서부터 짤 것이다. 또한 나도 가끔 내복을 거꾸로 입고, 혁대를 차는 걸 까먹거나, 지갑을 놓고 출근할 것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집사람의 질문은 한결같다.
지갑 챙겼어? 휴대폰은? 열쇄는?”
. 휴대폰 안 챙겼네.”

잊고 갈 뻔한 휴대폰을 챙긴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오늘 아침에 치약을 위로 밀어 올려놨다고. 그건 몰랐지?
평범한 치약이 특별한 치약으로 다가오는 건 의미를 부여함에 있다.

심심한 결혼이야기가 눈부신 결혼이야기로 변모하는 것도 소소한 일상에 의미를 부여함에 있다.
매일매일 나는 의미 있는 결혼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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