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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젖줄 갠지즈강이 흐르는 바라나시(Varanasi)
인도의 젖줄 갠지즈강이 흐르는 바라나시(Varanasi)
  • 조미영
  • 승인 2013.12.05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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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영의 여행&일상] <7>

누군가 말한다.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낙관적인 성격과 생각이라고..., 많은 것을 갖고도 늘 불평하는 사람과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맞는 말이다. 또한 해마다 발표되는 나라별 행복지수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히말라야의 조그만 부탄왕국이나 최빈국 방글라데시아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항상 우리보다 높다. 경제적 부나 사회적 지위가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려주는 단적인 결과다. 아마 그들은 끊임없는 욕망보다는 현실에 만족하는 낙관적인 생활관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갠지즈강, 힌디어로 강가라 불린다.

인도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는 “No Problum!"이다. 웬만한 문제는 이말 한마디로 모두 해결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시비가 붙는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리 궁색하거나 퍽퍽해 보이지 않는다.

때론 이런 그들의 인생관 탓에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 한번은 기차를 탔는데 내가 예약한 좌석에 떡하니 그들이 앉아있다. 표를 보여주고 내 자리임을 확인시켜줬더니 조금씩 당겨 앉고는 그 옆에 앉으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 “No Problum!" 어쩜 그리도 당당하던지 마치 내가 그들의 자리에 끼어 앉는 듯 했다.

이처럼 기존의 나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마구 흔들어대는 인도로의 여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심한 경우 ‘인도앓이’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바라나시(Varanasi)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도시를 타고 흐르는 강가(갠지즈강)을 바라보느라 비행기 표를 몇 번이나 날려버린 이들도 있다하니 마음을 다잡고 방문해야 한다.

 

기차역 풍경

바라나시로 가는 밤기차. 일찌감치 침낭을 펴고 잠잘 준비를 하고 누우니 십여 년 전 처음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에서의 경험이 떠오른다. 그날도 야간기차를 탔다. 피곤에 치쳐 깜박 잠이 들었다 깼는데 내가 잠든 이층 칸 주변으로 사람이 가득 둘러앉은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기차는 마치 피난민 차량처럼 사람들로 꽉 차 있다. 틈새라곤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내가 있는 이층 칸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나의 당황한 모습을 보자 그들은 “No Problum!"을 외치며 그냥 계속 자라고 한다. 멀뚱히 그들과 마주 앉을 수 없어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차의 덜컹거림이 이젠 자장가라도 되는 양 주변에 상관없이 잠이 든다.

바라나시의 아침은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다. 오토릭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식당으로 가려면 강가주변의 가트로 가야한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바라나시의 골목은 미로와 같이 좁고 복잡하다. 한 사람이 지나갈만한 좁은 길에 소라도 떡하니 서 있으면 난감하다. 그들이 싸놓은 배설물을 밟는 일쯤은 다반사라 나중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모든 신경은 길을 잃지 않으려 방향레이더에 쏠려있게 된다. 다행히 내가 찾던 식당을 찾았다. 기억력이 그리 녹슬진 않았나 보다.

 

화덕에 짜파티를 굽는 어린이.
망고라씨

인도에 오면 내 식욕은 왕성해진다. 각종 커리와 난, 탄두리치킨, 도사 등 모두 입에 잘 맞는 편이다. 더욱이 아침에 마시는 짜이 한 잔은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가 되고 식후 마시는 라씨는 훌륭한 소화제다. 남들은 식욕을 잃거나 배탈로 고생을 하곤 하는데 되레 난 귀국할 즈음이면 살이 포동포동 오른다. 더욱이 바라나시에는 유명한 라씨가게가 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찾아갔다. 역시나 만원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다녀갔는지 곳곳에 한글이 쓰여 있고 주인장도 얼추 한국말을 한다. 믹서기 대신 수제로 저어 만든 망고라씨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소와 함께 목욕하는 사람

이제부턴 슬슬 배회해도 좋다. 골목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다보면 가트에 다다른다. 우기인 탓에 강물이 불어 계단이 잠겨있다. 이곳에서 소와 사람이 섞여 물을 마시고 몸을 씻는다. 외국인에겐 한낮 누렇고 탁한 강물일 뿐이지만 그들에게 이곳은 성소이다. 그래서 각종 제사의식과 심지어 화장(火葬)후 장례까지 한 강줄기 내에서 이루어진다. 더럽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화장터를 그저 호기심으로 여겨 사진을 찍어대는 행위는 자제해야한다. 자신의 죄업을 씻어내기 위한 그들의 의식을 우리의 기준치로 제단 할 이유는 없다.

 

바라나시의 비단가게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객에 슬금슬금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옷가게를 홍보하는 호객꾼들이다. 바라나시는 비단옷으로도 유명한데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쇼핑을 한다. 그래서 옷가게가 많고 종류도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나도 펀자비와 바지 한 벌을 사 입었다. 이렇게 인도스타일로 변신을 하고나면 호객꾼들의 집적거림은 더 이상 없다.

 

목욕재개 후 의식을 준비하는 여인들.

우기인지라 갑자기 훅하고 바람이 일더니 큰비가 쏟아진다. 얼른 근처의 큰 건물로 몸을 피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의 실내에서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진다. 자세히 보니 대형쇼핑몰이다. 유명브랜드의 옷매장과 햄버거가게, 커피숍 등이 입점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어색하다. 성스런 고도(古都)에도 거대자본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다.

 

소원을 빌고 띄워 보내는 디와.

저녁이 되어 다시 가트로 나갔다.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아르띠뿌자(Arti Pooja)가 거행되고 있다. 이는 강가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매일 수많은 순례객과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질녘에 진행된다. 너무 인파가 많고 복잡하여 잠시 지켜보다 빠져나왔다. 대신 소원을 빌기 위한 디와를 하나 샀다. 작은 나뭇잎 접시에 꽃과 기름심지를 앉히고 불을 피워 강에 띠우는 도구인데 여행의 무사귀환을 빌며 띄워 보냈다.

 

의식을 위해 강가를 찾은 사람들.

다음날 새벽 숙소를 나와 다시 강가로 향했다. 보트를 타고 나가면 여러 가트를 훤히 볼 수 있는데 그 곳에서 새벽의식을 올리는 사람들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보트를 타고 나가는 게 약간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지만 보트타기를 취소하고 대신 가트주변을 거닐며 그들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몸을 씻으며 뜨는 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각자 살아온 인생은 달랐겠지만 이런 의식을 통해 죄업이 씻겨 지면 다시 태어나 좀 더 나은 카스트로의 윤회를 믿기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경건하다. 아마 그들의 낙천성은 이런 종교적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닐까?

 

떠오르는 해를 향한 기원.

2013년의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아있다. 올 한 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얻었을까? 늘 바쁘게 살아왔음에도 이즈음이 되면 해 놓은 게 없는 것 같은 조급증으로 불만족스럽기 일쑤다. 하지만 내 자신의 기대치를 조금 낮춰보자. 큰 탈 없이 소소한 일상들에 웃고 울며 지내온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남은 시간들도 큰 욕심 대신 작은 행복들로 채워 넣으며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프로필>
전 과천마당극제 기획·홍보
전 한미합동공연 ‘바리공주와 생명수’ 협력 연출
전 마을 만들기 전문위원
현 제주특별자치도승마협회 이사
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이사
프리랜서 문화기획 및 여행 작가
저서 <인도차이나-낯선 눈으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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