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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未生)
미생(未生)
  • 홍기확
  • 승인 2013.10.28 14: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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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6>

바둑은 가로 19줄, 세로 19줄이다. 승부사는 단 2명. 특별한 규칙을 먼저 정해놓지 않는 한 무승부는 없다. 흑과 백의 싸움. 바둑돌을 놓을 수 있는 곳은 361군데이다.
하지만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단순하게 2의 361승을 하면 4697085165 547666455778961193578674054751365097816639741414581943064418050 229216886927397996769537406063869952가 나온다. 자릿수가 119개인데 따 먹은 돌의 자리에, 다시 돌을 놓는 경우까지 살피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바둑판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두 눈(집)이 필요하다. 한 개의 눈만 있거나 없으면 살아있는 게 아니다. ‘미생(未生)’이라고 하며, 이러한 곤란에 처한 돌들의 덩어리를 곤마(困馬)라 한다.
살아있지 못한 돌들. 곤란에 처한 돌들. 하지만 이들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곤란을 극복해 가고 있다.

바둑에서 큰 차이로 이기든 반 집 차이로 이기든,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것이다. 내 목표는 삶의 마지막 날에 통쾌하게 반 집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것이다. 그 동안의 작은 전투의 성패(成敗)는 상관없다. 하지만 장애물이 꽤나 된다. 그 중에 하나는 바둑판 맞은편에 있는 상대방, 상대적인 상대방이다.

햇볕이 매일 쨍쨍 내리쬔다면 좋은 곳인가? 아니다. 우리는 보통 이런 지구의 몇몇 장소들을 사막이라고 부른다.
단점이 15가지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그 사람의 장점은 25,000가지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사람과 개미 중 개미가 작은가? 아니다. 소나무 재선충은 크기가 0.6mm이다. 재선충에게 개미는 거인이다. 개미가 작아도 작다고 볼 수 없다.
항상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내가 못 한가? 아니다. 나는 이제 행복을 논하지 않는다. 행복은 하나의 목표, 혹은 넘어야 할 삶의 고개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고개를 넘으니 행복이라는 녀석에 관심이 시들해졌다. 아니, 전혀 관심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항상 행복하다는 사람과 나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결국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두루뭉술 에둘러 말하며 대충 넘어가는 것 같지만 인생은 상대적이고, 모든 행불행(幸不幸)이 비교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역으로 상대적인 것을 인정하고 다른 것과 비교를 중단해야 한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남과의 차이에 대한 비교에서 생겨난다. 부, 명예, 권력 등 소위 객관적이라는 지표 따위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지표가 과연 객관적일지 의문이다. 오히려 지극히 주관적인 지표가 아닐까?
월급을 200만원 받는다고 해서 직장에서의 가치가 200만원인 것은 아니다. 단지 그 회사의 재정상 이 사람에게 월 200만원을 줄 수 있는 능력이 그 뿐인 것이다. 남이 정해준 가치로 스스로를 헐값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는 남의 기준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오롯이 자기만의 갈 길을 가야 한다. 그 곳에서 만족과 안락을 누려야 한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이다. 20편으로 되어 있는데 역시나 백미(白眉)는 첫 장인 학이(學而), 그 중에서도 첫 구절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보통 하루에 한 번씩 되새긴다. 제자들이 논어란 책을 엮을 때 구절들의 배치순서를 분명 고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구절은 아마도 후대에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유명하지만 열거해 본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살다 보니 공자가 말한 세 가지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듯 하다.
방통대에 편입하여 문학 공부를 하고 있고 틈틈이 자격증도 취득하고 있다. 영어, 중국어 같은 외국어 공부도 꾸준히 하는 편이다.
제주도에 내려온 지 3년이 넘는 동안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오히려 서울에 살 때보다 더 많은 친구들을 자주 보내 된 것 같다.
그리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가끔씩만 성을 낸다. 오히려 나를 알아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직장 동료들이 술을 먹자고 하면 거절을 하지는 않는다. 꽤나 재미있게 먹으며 심금(心琴)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래도 내 소주 2병인 주량을 넘기기 일쑤고, 저녁 9~10쯤에 자는지라 이 시간이 넘어서면 하품을 참느라 힘겹다. 게다가 술 먹고 자면 꼭 체를 해서 술자리가 끝나 집에 와서도 2~3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니 당연히 다음날이 피곤하다.
초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라고 배웠다. 이렇게 착한 어른이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주로 집에서 술을 마신다.

신석기 시대에는 남자들이 사냥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들어올 때까지 짐승들을 쫓아 다녔다. 동네사람들과 함께 공동사냥을 하기도 했겠지만, 작은 짐승들은 혼자 잡았다. 사냥감은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심하다.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불이 켜져 있다. 이른바 역사책에서만 들어본 ‘화덕’이다. 화덕은 본격적으로 농사를 통해 배를 채웠던 청동기 시대에는 벽 쪽에 치우쳐 있었지만, 신석기 당시에는 집의 한 가운데 있었다. 집안의 가장은 30여 분간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돌아보고 화덕 앞에서 멍하니 불빛을 바라보며 몸을 녹인다. 긴장이 풀리고 잠은 쏟아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밤에 퇴근해 컴퓨터를 하며 멍하니 식구들을 바라보는 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건 아는데,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음미하는 가치관을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착한 생활방식으로 살 때도 있고 어길 때도 있다. 이렇듯 삶의 단편(短篇)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하지만 삶은 장편소설(長篇小說)이다.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죽음의 순간까지는 누구나 힘차게 살아가지만 결국 현재로 보면 ‘미생(未生)’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은 다짐으로 외친다.
결국에는 반집차이로 이기리라!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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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2013-10-28 15: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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