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3:40 (금)
유리창을 깨뜨리자
유리창을 깨뜨리자
  • 홍기확
  • 승인 2013.08.14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31>

신혼살림을 장만하면서 소주잔 네 개를 구입했었다. 8년이 넘는 시간동안 설거지를 수백번 하다보니 실수로 두 개는 깨져버렸다. 와인잔은 두 개를 샀었는데 몇 달 전 모두 사망했다. 아쉽진 않다. 그동안 쏠쏠히 써 먹은 데다 소주잔은 두 개면 충분하고, 와인잔은 대체할 수 있는 잔들이 아직까지 많다. 오히려 잔이 깨졌을 때는 엉큼한 쾌감도 느꼈다.
사회학이나 경제학, 심리학에서 쓰이는 이론 중에 프레이밍 이론(framing theory)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개개인에게 전형적(典型的)인 사고구조를 주입하여 조직의 단체적 행동을 이끌어 내거나 조직문화를 심는 이론이다.
경제학에서는 이 이론을 마케팅에 적용해 제품의 장점과 특징만을 강조하고, 단점과 비싼 가격은 정보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그들만의 틀을 소비자에게 주입시킨다. 심리학에서도 물이 반 컵밖에 안 남았다거나 반 컵이나 남았다는 판단의 차이를 설명할 때 쓰인다. 정리하자면 개인은 고정된 가치관인 틀(프레임, frame)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상황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서두가 무거워졌지만 나는 이 틀을 깨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스웨덴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책, 『오래된 미래』에 등장하는 라다크 사람들에게는 “숀찬”, 즉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라고 한다. 그들은 인간관계를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라고 여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돌보기보다는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남을 더 챙기려고 한다. 지구촌도 오랜만에 하나가 된다. 배려라는 예쁜 말로 포장을 해서 남을 위해 신경을 쓰라 강요한다. 하나의 틀, 선입견이 우리 뇌 안의 시냅스를 연결해가며 형성된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위해 주며 살라.”

법관, 판사, 변호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꼽으라 했더니 채근담(菜根譚)의 이 말이 꼽혔다고 한다.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
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에게는 가을서리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

남에게 형벌을 내리는 분들이 좋아하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는 형벌을 내릴 정도로 엄격하게 대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자신을 엄격하게 대한 세파(世波)에 지쳐, 상처받았다니 치료가 필요하다니 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힐링(Healing, 치료 혹은 치유)을 한다. 부산스럽다. 두 번째 틀, 선입견이 형성된다. “생채기가 나더라도 자신에게 엄격하라. 그래서 아프면 힐링하라.”

깨뜨리고 싶다. 두 개의 틀을.

첫 번째 틀, “나보다는 남을 위해, 위해 주며 살라.”를 깨본다.
일반적인 유리창은 돌을 던지면 깨진다. 일반인의 선입견은 화들짝 놀라야 깨진다. 자기를 위해 살라는 공염불(空念佛)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남을 위해 사는 것도 좋고 지구를 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비중”을, “남을 위한 비중”보다 더 높게 해야 한다. 즉, 가끔 남을 위해 살고, 시간 날 때 틈틈이 지구도 구하고 하면 된다는 얘기다. 대부분은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한다. 자신을 갈고 닦은 후에 가정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말이다. 어찌 가정이 바르게 되지 않고서 일을 잘하겠다고 하는가? 집에서 아이나 아내와 싸웠거나, 집안의 불화가 있을 때 일의 효율이 오른 적이 있을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아닌 말로 내가 피곤한데 남을 챙긴다? 하루하루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 탈난다.
다시 자기와 남에 대한 애정의 비중설정으로 돌아가 본다.
물론 이 비중은 시기마다 다를 수 있다. 어쩔 때는 자기에 대한 비중이 커지거나, 남에 대한 비중이 커지거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남에 대한 비중이 커지고 게다가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될 때는 한 방에 지칠 수 있다. 이땐 정말 상처를 입어 힐링(healing)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두 번째 틀, “생채기가 나더라도 자신에게 엄격하라. 그래서 아프면 힐링하라.”를 깨본다.
나는 현대인에게 힐링(=상처 치유)이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다. 세간에서 떠드는 힐링은 출판사나 종교인, 심리학자들의 “처방전”, 혹은 “진통제”에 불과하다. 처방전은 그대로 약을 해 먹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고, 진통제는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우리가 약사가 아닌 이상 처방전대로 약을 만들 수 없고, 진통제의 경우 쓸데없이 습관적으로 맞는다면 정말 급할 때 약발이 들지 않는다.
주변에서 당신에게 병들어 있다고 외친다. 그리고 처방전을 준다. 진통제를 맞으라 한다. 당신, 지금, 진정 아픈가?
그래도 진심으로 아프다면 혹시 자기 스스로 병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본인을 학대하며 수많은 상처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고 있다면 그 이유를 열거해보라. 과연 본인이 상처를 입더라도 꿋꿋이 나야가야 할 만큼 모두 다 중요한가?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가?

죽기 직전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 오츠 슈이치의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서문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심금(心琴)을 울린다.

“인생의 마지막에 서 있는 이에게 세상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지금 무엇을 가장 후회하고 있나요?’
우리는 한없이 참고 또 참으며 비로소 끝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미루고 또 미룬 후에야 이제 더 이상 '뒤'가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많다고 한다. 남을 위한 삶의 비중을 자기보다 더 할애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라는 세상의 광고. 그리고 판매되는 각종 힐링 나부랭이들. 꾀병 치료하다 시간 다 간다.
우리는 결코 아프지 않다. 힐링이 대세이기 이전에는 어떤 스트레스라도 술자리로든 가족간의 대화로든 풀어왔다.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다. 아직까지는 힐링(치료)할 만큼 면역력이 약해지지 않았다.
병 주고 약 주며 불필요한 고민을 만들며 시간을 빼앗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병이 없으면 약이 필요 없고, 의사도 필요 없다. 아무리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라지만 힐링거리도 대량생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산된 쓸모없는 힐링 진통제를 대량소비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다.

남들 돌보느라 잠시 자기 자신을 놓쳤을 뿐인데 이것도 치료가 필요할까? 혹시 힐링하느라 힘들지 않으세요? 힐링하느라 지치지 않으셨어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힐링인데….
조금 지쳤다면, 쉬거나 피로회복제를 먹으면 될 일이다. 피로할 뿐인데 항암치료제를 먹는 건 아닐까? 세상이 주입한 앞서 말한 두 개의 틀을 깨보면 각자 나름대로의 해답이 나올 것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현 현대문예 제주작가회 사무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