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를 그림자로 표현한 이들이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이다. 그것도 무려 천년동안 바닷속에 잠긴 그림자로 표현했다. 우도(牛島), 뜻풀이 그대로 우도는 ‘소섬’이다. 곱게 누워있는 소라고 한다. 하지만 ‘소’로만 통용되진 않는다. 물에 뜬 평지라는 의미로 ‘연평(演坪)’으로도 불린다.
우도를 그림자로 표현한 글은 충암 김정의 우도가(牛島歌)에서 읽을 수 있다. 우도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주산 동쪽 머리에 자라 기둥이 기울어/천년의 신비한 그림자가 큰 바다에 잠겨 있네.”
그림자처럼 제주의 동쪽 바다에 길게 누워 있는 우도. 전지현이 나온 영화 <시월애>를 비롯한 영상의 무대로 드문드문 알려지던 우도는 이젠 누구나 한 번은 밟아봐야 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포인트가 됐다.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우도엔 머무는 이들보다 들어왔다가 나가는 이가 많다. 그래서 더욱 작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작은 섬 이 곳 우도엔 섬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상징이 있다. 작고 예쁜 학교인 우도초·중학교(교장 허영조)다.
우도초·중학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합쳐봐야 100명을 간신히 넘는다. 하지만 이 학교는 우도의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한 필수공간이다. 이 학교의 핵심축인 1층의 열린 공간 ‘안뜰’은 여느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공원에서 마주하는 의자와 작은 분수, 가볍게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탁자 등이 있다. ‘안뜰’은 갤러리이면서 카페이면서 각종 행사가 펼쳐지는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우도문화센터’라는 이름이 제격인 곳이다.
이 학교는 ‘우도문화센터’이면서도 학부모들에게는 방과후를 책임져주는 ‘제2의 부모’로, 학생들에게는 ‘공부방’이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곳 학부모들이 1차 산업에 주로 종사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다른 곳과 달리 ‘자녀교육=학교’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으며, 그 등식은 고정불변의 상식이 돼 있다.
더욱이 우도엔 사교육이라는 단어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예능 계통의 학원도 없다. 그러기에 우도에서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우도초·중학교가 학생들을 책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 곳 교사들도 학생들을 위한 봉사를 묵묵히 행하고 있다.
사교육을 대신하는 장치는 ‘등대불 공부방’이다. 저녁을 먹은 뒤 하나 둘 학생들이 학교로 몰려든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운영되는 ‘등대불 공부방’을 찾는 발걸음이다. ‘등대불 공부방’은 공교육에서 학생을 책임지는 장치로, 방과후 학교나 다름없다. ‘등대불 공부방’은 부족한 교과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등대불 공부방’은 올해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단순한 자기주도 학습 차원을 뛰어넘어 EBS 교재로 공부를 한 뒤 교사들이 직접 부족한 점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시간은 부족한 교과를 채우는만큼 과제는 평일이 아닌 주말에 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허영조 교장은 “이 학교는 가정이다. 8시 이후에도 열려 있다. 부모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면서 “사교육이라는 과부하도 없다. 1등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방법을 배워주고 있다. 선행학습이 없기에 학교 수업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등대불 공부방’은 100% 복습 위주로 진행된다. 수업에서 배운 걸 다시 익히는 자리로, 실력을 다지기에는 그만이다. ‘등대불 공부방’은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서는 밤 9시 30분까지 열려 있다. 여기에서 교사는 공부를 가르치는 존재로 그치지 않는다. 인생의 멘토가 된다.
‘등대불 공부방’은 사교육이 없는 섬에서 탄생한 산물이기에 교사들의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곳 교사들은 이 섬에 머무는 2년이 부족하단다. 학생들을 알아갈 시기에 섬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한 교사는 “교사들이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건 이 곳 학부모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대해, 학생에 대해 알려고 할 때 떠나야 하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최근 이 섬엔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문화의 거리도 조성되고 있다. 조만간 섬의 한계를 벗어날 수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섬이 가진 매력은 ‘사교육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사교육에 쓴 비용은 19조원을 넘는다. 학생 1인당 매월 평균 23만6000원을 지출하고 있으며, 제주에서도 20만원이 넘는 부담을 지고 있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비율도 66%를 넘고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 제주도 본섬에서 조차도 사교육의 광풍이 일지만 이 섬은 뭐라 할까, ‘사교육 무풍지대’라는 말이 제격일 듯하다. 그래서 우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교육에 찌든 학생들은 사교육이 없는 이 곳에 오라”고 손짓한다.
[미니 인터뷰] 우도중 3학년 김효진 학생“공부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좋아요.”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공부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우도중 3학년인 김효진 학생은 이 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공부는 없을텐데,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있다. 바로‘탈(脫) 사교육’ 때문이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니 좋아요. ‘등대불 공부방’은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어서 좋고, 모르는 건 선생님께 물어볼 수도 있거든요. 학원비도 안들잖아요.”
자신의 형과 누나도 그렇게 공부를 했다. 김효진 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 동생도 있다. 다들 사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김효진 학생은 2학기만 마무리하면 고등학생이 된다. 이후엔 우도를 떠나서 본섬에 있는 학생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초·중학교를 7명의 친구들과 경쟁을 했어요. 고등학생이 되면 아주 많은 애들과 경쟁을 해야죠. 그 때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사교육을 받지 않을 걸 강점으로 활용하겠어요.”
공부를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일까, 김효진 학생은 이 학교에 독서실 형태의 공부방이 갖춰졌으면 하는 희망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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