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세상을 향한 비행
세상을 향한 비행
  • 홍기확
  • 승인 2013.02.17 11:57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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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4>

지난 설 연휴동안 나는 비행어른이었다. 답답한 서울의 공기를 잊으려는 듯 한껏 날아올라 비행했다.

서울이 고향인 나는 설날을 맞이하여 집사람, 아이와 함께 1년 반 만의 서울나들이를 했다. 김포공항의 투박한 공기는 서울이 여전하다는 것을 한 순간에 느끼게 해주었고, 지하철의 매콤한 공기는 코까지 찌릿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흔한 것이 오히려 소중한 것이라고.
다이아몬드는 단지 드물기 때문에 귀할 뿐이다. 반면 공기는 흔하지만 소중하다. 공기가 없으면 10분을 살기 힘들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배고파 죽기 전에 먹고 죽으려 해도 씹히지도 않는다. 서울의 혼탁한 공기를 흡입하니 제주도의 맑은 공기가 너무나 그리워졌다.
하지만 흔한 것은 평소엔 잘 느끼지 못한다. 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재발견하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찾으려면 위기상황을 겪거나 일상에서 일탈, 즉 비행(非行)을 해야만 알 수 있다. 가족이 아프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길을 잃으면 익숙했던 풍경들이 그리워지고, 비행을 하면 평온하고 정상적인 일상이 그리워진다.
 
설 연휴 부모님의 집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는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집사람과 함께 오랜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나섰다. 집에 들어온 시간은 나만큼이나 숫자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아침 539분이었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신 건 몇 년 만에 처음이다. 게다가 좀체 낮잠을 자지 않는데 술을 먹고 들어와 오후 2시 정도에 일어났다. 폐인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해보니까 시간의 소중함이나 맑은 정신이 간절해졌다. 당분간은 낮잠이나 낮술을 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
 
설날 당일 처갓집에 놀러갔다. 저녁에 도착해선 또 술판을 벌렸다. 그리곤 거나하게 취해서 만화방에 갔다. 만화방 역시 거의 3년만이다. 특별하게 재미도 없는 만화책을 30권 넘게 읽었다. 하지만 세 종류의 만화책을 읽고 나선 허탈해졌다. 처음 만화방에 온 시간과 떠날 시간을 보니 4시간이나 만화방에 머물렀다. 시간은 새벽 3. 진정한 폐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백수처럼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고 난 후 놀랍게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타올랐다. 당분간은 새벽까지 놀지 않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 직장 상사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어제는 몇 년 만에 직장 출근하기 싫어서 이불에서 뒹굴뒹굴댔어요. 정말 회사 제치고 싶었는데 꾸역꾸역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비행(非行)을 준비하기 위해 넌지시 씨앗을 뿌려놓았다. 갑작스럽게 출근을 안 하면 황당하겠지만, 씨앗을 미리 뿌려놓으면 약간만 당황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라산에 눈이 내리면 직장 제치고 눈구경 갈 겁니다. 한라산에 앞으로 한 번쯤은 눈이 올까요? 오겠죠?”
 
마치다 준의 어른을 위한 동화 얀 이야기에 나오는 나와 같은 생각을 인용해본다.
 
만일 그대가 카와카마스는 늘 꾸기만 하고, 꾸어간 것들을 갚을 줄 몰라 교활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그대가 조금 지쳐 있다는 증거다.
오늘 하루는 학교를 쉬어라. 학원도, 회사도 쉬어라. 온 하루를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있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루할 때 항상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라고 표현하며 일탈을 꿈꾸지도, 비행을 하지도 않는다. 스스로의 삶을 쳇바퀴라는 굴레로 폄하하고 가두어 놓는다.
비행(非行)함으로써 세상을 향해 더 힘차게 비행(飛行)하는 것. 알쏭달쏭한 얘기지만, 이 재미는 해 본 사람만 안다. 해 봐야 안다.
 
다음 번 눈이 내리면 나는 다시금 세상을 향한 비행을 할 것이다. 비행으로 잃는 것도 있겠지만 보통은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며칠간 기우제를 지내야겠다. 내가 사는 곳에 비가 내리면 한라산에는 눈이 내릴 것이다. 내 기우제는 지금까지 통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인디언 부족처럼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니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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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축하 2013-02-22 11:39:59
축하드립니다^^
비행의 묘미는 돌아오는데 있는거 같아요.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돌아와서 기분좋음을 느끼는 것.
저도 그래볼까 싶네요.^^

어쩔수가없다 2013-02-21 18: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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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성공 2013-02-21 15:23:29
오전에 한라산 영실코스 남벽까지 왕복 3시간10분에 주파하고
돌아와서 일 잘하고 있답니다.
기분이 너무 좋고 탄력도 좀 생긴 듯합니다.

댓글급수정 2013-02-18 21:59:23
집사람이 글을 읽어보더니 "봄비가 내리네요. 촉촉히 ㅎㅎ"란
댓글의 의미는 비가오니 한라산에는 눈이 오겠다는
의미로 쓴 댓글이라네요. 저보고 센스없다고...^^;
글중에 기우제를 지내겠다고 한 문장이 있는데
기우제가 통한걸 축하하는 덧글이라구요.
듣고보니 집사람의 견해가 유력한 듯한데
저는 엉뚱한 댓글을 달았군요...ㅋㅋ
급수정한 윗 댓글의 답변은
"목요일날 오전 영실에 가기로 했습니다"입니다.

다른 길로 가보기 2013-02-18 12:39:02
사실 일부러 평소와는 다른 낯선 길을 가보기도 하거나,
책을 통해 남이 걸어본 길을 걸어보기도 합니다.
차를 타는 게 지루하면 걷거나, 1년에 4번 정도는 마라톤을 뜁니다.
앞만 보고 가면 주변의 경치는 감상하지 못하니까,
가끔씩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거나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지칠때면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제가 하는 비행(非行)이라고 해봤자 남들 보기에는 사소한 일들 뿐입니다.
하지만 해보면 압니다. 이런 것들에서 얻는 즐거움과,
새로운, 혹은 잊고있던 사실들을 "발견"하는 짜릿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