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너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너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 홍기확
  • 승인 2012.12.24 13:5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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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4> 2012년을 마무리하며

드디어 2012년을 마무리하는 글을 써서, 스스로 낸 올해의 마지막 숙제를 끝마쳤습니다. 글이 이렇게 길어질지 생각도 못했는데 A4지 9장의 분량이나 써버렸네요. 제가 쓴 글들을 묶은 ‘자서전(子徐展)’이란 책도 인쇄업체에 맡겼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최고입니다!

 

2012년을 마무리하는 글을 쓰려고 고심하던 중 어제 엄마와 얘기하며 중간 중간에 많은 생각을 했단다. 건진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 2012년을 마무리하며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

1. 너의 버팀목은 누구니?

며칠 전 직장 동료가 회식 자리에서 아빠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기확씨에게 와이프는 어떤 존재인가요?”
아빠는 숨도 고르지 않고 얘기했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은 아내입니다.”

사실 이 멋있는 말을 아빠가 처음 한 건 아니란다. 아빠가 중국의 역사책인 『사기』에 나오는 관중의 다음 말을 조금 변형한거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兒也.)”

우리가 흔히 아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는 사기에서 그려진 이 둘의 우정을 묘사하는 말이란다. 그럼 관중과 포숙은 어떤 친구였을까? 관중과 포숙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중국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에서 함께 살았다.

한편 제나라 국왕의 폭정으로 왕의 두 아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는데, 관중은 첫째 아들을, 포숙은 둘째 아들을 각각 모시는 신하가 되었어. 폭군이 죽자 두 아들은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명명에서 돌아와 서로 전쟁을 벌이는데, 관중은 포숙이 모시던 공자를 활로 쏴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공자는 혁대에 화살을 맞아 기적적으로 살게 된다. 결국 관중이 모시던 공자는 동생에게 패배하여 자결하게 되지.

포숙과 포숙이 모시던 공자, 즉 지금은 왕이 된 사람 앞에 관중은 사형 집행을 위해 끌려오게 된다. 자신을 죽이려 한 관중. 죽음밖에는 그 죄를 씻기 어려웠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포숙은 왕에게 간언한다. 얘기를 들어보자꾸나.

“대왕께서는 천하를 갖고자 원하십니까?”
“그렇다. 어찌 천하를 꿈꾸지 않고 이 자리를 바라겠는가?”
“그러시다면 사사로운 원한을 접으시고 관중을 살리셔야 합니다. 관중의 마음속에는 천하가 꿈틀거리고 있고, 관중의 기상에는 경세제민의 포부가 있사오니, 관중을 얻지 않으시고 어찌 천하를 얻겠나이까? 관중이 비록 대역죄를 지었으나, 모시는 주군이 달랐습니다.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으오리까? 대왕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천하를 위해 관중을 재상으로 중용하소서. 관중은 신보다 그 능력이 백 배 천 배 뛰어나니, 관중이 재상이 된다면 신도 그 밑에서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나이다.”

이 때 왕이 된 자, 제나라 환공(桓公)은 패배한 적대세력의 참모이자 자신에게 화살을 쐈던 관중을 살려주는 것도 모자라 재상의 자리를 맡긴다. 관중과 제환공은 협력하여 나라를 잘 이끌었다. 후대 사람들은 제환공을 춘추시대를 풍미했던 가장 뛰어난 군주 다섯 명을 의미하는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명으로 부르고 있단다.

제나라 환공도 참 대단한 배포를 지녔다. 하지만 아빠는 제환공이 제위에 오르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포숙이 그 자리를 포기했다는 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이후 관중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구나.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은 아내입니다.’라는 말에 담긴 뜻을 설명하려고 조금 먼 길을 돌아왔는데, 아무튼 기본적인 의미는 ‘관포지교’에서 따온 거다. 이 글을 읽고 이해할 때쯤 너도 아빠만큼, 아니 어쩌면 아빠보다 더 키가 자랐고, 너의 미래를 생각할만한 나이가 됐을 거다.

지금, 너의 버팀목은 누구니?

2. 아빠의 버팀목은 누구일까?

여기까지 얘기가 나왔으면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난 날을 꺼내지 않을 수 없구나. 운명이란 걸 믿지는 않는다. 왠지 이걸 믿는다는 건 누군가에게 지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비록 지금 당장은 운명을 대체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 운명이 아닌 ‘뭔가 질긴 녀석’ 정도는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빠가 대학을 들어가서 처음으로 MT라는 걸 가게 됐다. 턱걸이로 2차 추가합격을 한 지라 MT 며칠 전에 합격 통지를 받고 무작정 버스에 올라앉았다. 버스의 자리는 아빠가 가장 선호하는 왼쪽줄 2번째의 창가 자리. 남녀공학을 다녀보지 못한 아빠는 엄청난 기대감에 내 오른쪽에 어떤 여인네가 앉을까 하며 기대했었다. 어여쁜 친구들이 속속들이 뒷자리를 채워가던 중 듬직한, 노골적으로 말하면 심히 뚱뚱한 여학우가 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 때까지 네 할머니와 누나를 제외하곤 다른 여자와 얘기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아빠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몰랐다. 게다가 아빠의 누나는 결혼하고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하루에 열 마디도 안 하는 목석이었단다. 있는 둥 없는 둥 했지.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고 버스는 결국 출발했다. 아빠는 딱히 할 얘기가 없어 그냥 한 마디 툭하고 내뱉었다.

“세상 사람들은 무지개를 표현할 때 일곱색깔 무지개라고 해서 '빨주노초파남보'만 생각해. 인간이 무지개에서 구별할 수 있는 색의 개수는 보통 150개이고 가장 좋은 조건에서는 십만개나 찾아낼 수 있는 데 말이야.”

그런데 옆의 여학생. 해맑게 웃으며 내 얘기를 들어주며 맞장구를 쳐줬다. 어라? 진지하게 들어주네? 아빠의 이야기 상자가 열렸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 이 친구는 나를 이해해줬던 것이다. 우리 둘은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얘기했다. 목적지에 내릴 때쯤 선배들이 원래부터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끊임없이 하냐고. 아니라고 했다. 1998년 2월. 네 엄마를 처음 만났다.

엄마는 이 때 아빠에게 첫 눈에 반했고, 아빠는 이 때 '다른 여자를 사귀더라도 결혼은 꼭 이 여자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하지만 '뭔가 질긴 녀석'이 달라붙었는지 처음 만났던 때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2005년 1월,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엄마와 아빠는 부부가 되었단다.


3. 버팀목을 얻고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가 엄마를 만난 건 1998년이었지만, 결혼한 것은 7년이 지난 뒤였단다. 엄마도 알다시피 엄마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빠가 많이 좋아했던 건 아니란다.

하지만 아빠가 늘 앉았던 느티나무 의자에서 같이 책을 읽어주던 엄마, 내 엉뚱한 얘기들을 항상 웃으며 들어주던 엄마. 대학 시험기간에도 무사태평 벤치에서 잠을 자던 아빠를 깨워 시험장으로 끌고 가던 엄마. 교수님한테 백지 시험지를 내고 왔다고 자랑해도 잘했다고 격려해주던 엄마. 기분이 좋지 않다고 수업에 빠지고 춘천에 놀러간다고 했을 때 멋지다고 칭찬해주던 엄마.

남들이 아빠보고 다 특이하다고 했을 때 특별하다고 말해주었던 엄마.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400여 통의 편지를 보내며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감동들로 채워주었던 엄마. 아빠가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엄마. 아빠는 엄마가 점점 좋아졌다. 지금도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아빠가 첫 번째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사랑은 노력이다. 부모자식의 사랑이든 이성과의 사랑이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에 의해 사랑은 커지고 자라난다.”

너도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거다. 그 때는 처음의 뜨거운 감정만을 믿고 사랑하려는, 사랑을 유지하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땔감은 언제든 바닥나게 되어 있다. 따뜻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찾아내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부족한 건 채워 넣어야 한다. 열 효율이 떨어지면 힘들더라도 묵은 찌꺼기를 청소하는 등의 궂은 일도 필요하다.

영원한, 한결같은 사랑은 없단다. 다만 꾸준한 사랑은 있을 수 있지. 앞서 엄마의 노력만 말했지만, 아빠도 적잖이 엄마에게 노력했고 다 나아지기 위해 수많은 훈련을 했다고 말하고 싶구나. 누군가의 노래 제목이 지금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제보다 오늘 더 그댈 사랑합니다.”

4. 과연 자식에게 버팀목은 꼭 부모여야만 할까?

아동심리학에서 ‘애착’이란 말은 흔한 말이다. 부모와 아이의 끈끈한 정을 달리 표현한 말로 아동 발달 측면에서 강조하면, 많이 안아주라는 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애착’이라는 개념은 할로(Halo)라는 미국학자가 한 원숭이 실험에서 기원한다. 아빠가 이 실험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소개하마. 상당한 반전이 있단다.

할로는 원숭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는 조그만 철장에 가두었는데, 이 감옥의 한 편에는 우유가 나오는 철제 원숭이 인형을 놓고, 다른 한 편에는 우유가 나오지 않는 털로 뒤덮인 봉제인형 원숭이를 놓아두었다. 할로는 당연히 젖을 주는 철제 원숭이를 엄마라 여길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아기 원숭이는 배고플 때만 철제원숭이의 젖을 빨아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포근한 봉제인형 원숭이의 품에 안겨 있었다.

할로는 일단 엄마의 모유는 사랑을 일으키는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철제원숭이를 플라스틱, 비닐 원숭이로도 바꾸어 보았는데 역시나 봉제인형 원숭이에게만 가 있었다. 결국 포근함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다음 부분은 첫 번째 반전이란다. 이번에 할로는 봉제인형 원숭이에게 바늘을 무수히 꼽아놓았다! 아기원숭이는 찔려서 피가 남에도 불구하고 엄마라고 여기는 봉제인형 원숭이에게 안겨보려고 안간힘을 썼단다. 진정 포근함, 애착이 아기에게 중요한걸까? 한편 이 실험 때부터 동물학대 반대론자들은 이 실험의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이 있었다는 할로는 실험을 계속했다.

다음 부분은 격한 두 번째 반전이다. 실험 초기의 아기 원숭이들도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었다. 짝짓기를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암컷 원숭이들은 도무지 짝짓기를 하려고 하지 않고 수컷들을 피해 다녔다. 아빠 생각에는 혼자 자라서 그런지 남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던 건 아닐까 싶다. 할로는 그래서 강제로 짝짓기를 시도한다. 암컷 원숭이들 수 십 마리를 ‘강간침대’라는 곳에 묶어놓고 수컷원숭이들을 풀어 놓아 강간, 더 절절히 말하면 윤간(輪姦)을 하게 한 것이다.

동물학대 반대론자들은 할로를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살해의 위협에도 할로는 굽히지 않았다. 몇 개월이 흘러 암컷 원숭이들의 아기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엄마 원숭이들은 좀체 아기들을 돌보지 않았다. 엄마 원숭이들 대부분은 자폐증을 겪고 있었고 아기를 학대했으며, 심지어 아기들을 죽이기도 하였단다.

이 실험에 대한 아빠의 조심스런 결론은 이렇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혹은 본능적인 모성애는 없다.”

5. 버팀목은 어떤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연구를 보자꾸나. 하와이에 '카와이'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범죄율이 매우 높아 마약, 알콜, 도박중독자나 살인자 비율이 높고 불량청소년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이들도 많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카와이섬에서 1955년에 태어난 어린이 800명 전부를 대상으로 1990년대까지 40여년간 종단연구를 했단다. 연구에는 가정이 필요한데, 이들의 기본 가정은 열악한 환경의 어떤 점이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드는가였단다.

에이미라는 교수는 한 발 앞서, 이 800명 중에서도 더욱 열악하고 우울한 환경을 지닌 201명을 추려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연구는 실패했고 결국에는 중단되었다. 왜냐하면 201명 중 72명인 60퍼센트의 어린이들은 아주 건강하고 학업 성적도 우수하였으며, 무엇보다 명랑하고 긍정적으로 자랐거든. 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 연구의 목적 자체를 바꾸었더니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지.

교수진은 역으로 왜 72명이 긍정적으로 자라났는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곤 알아냈다. 이 힘든 환경에서 자란 72명의 아이들이 잘 자란 공통된 이유는 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주변에 적어도 1명 이상의 어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어른 말이다.

부모든, 옆집 아저씨든, 선생님이든, 이모든 상관없었다. 그저 아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보듬어주면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거란다.

6. 너만의 버팀목들을 찾길!

이훤아, 혼란스러울거다. 과연 부모의 사랑이 아이를 키우는 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인지, 모성애라는 성스러운 사랑이 존재하는 지 말이야. 혼란을 막기 위해서 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의 결론 두 가지를 먼저 말하고 설명해 볼게.

“확실한 자연의 법칙중 하나는 부모 없는 자식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건 부모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여기에 더해 인생의 버팀목이 될 사람이 부모이외에 반려자가 되던 친구가 되던 상관없다.”

“사랑은 노력이다. 부모자식의 사랑이든 이성과의 사랑이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에 의해 사랑은 커지고 자라난다.”

자신의 부모가 버팀목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라면, 당당하게 부모를 마음속에서 버려도 된다. 사회는 자식에게 부모를 신격화해서, 부모님의 은혜니 뭐니 하며 가족관계나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한단다. 아빠는 너에게 이런 걸 강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나 엄마는 신이 아니고 인간이다.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상처도 받는 그저 인간일 따름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았다고 다 부모가 되는 건 아니다.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도 덜 된 어른아이도 있고, 아이가 여럿 있어도 부모 자격 없는 애미애비도 있다.

아빠는 운 좋게 좋은 부모를 만났지만, 너는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단다. 그 때는 아빠나 엄마를 동정하여 챙겨주는 척 하지 말고, 더 나은 사람들을 버팀목으로 삼길 바란다. 네가 섭섭하겠지만 아빠도 처음부터 네가 좋았던 건 아니다. 태어났을 때 그냥 무덤덤했다. 그냥 내 자식이다 싶었다. “아빠”라는 단어에도 어떤 감흥이 일지 않았었다.

너는 대체로 우리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둘만의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린 악당이었다. 네가 잠을 안자고 떼를 쓸 때, 네 목을 조르고 싶을 때가 정말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승부욕이 크고 상처를 쉽게 받는 네가 수십일 연속으로 짜증만 부릴 때는 때리고도 싶었다.

그러다 2010년 자서전에 쓴 그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아빠'가 되었고, 그쯤에서부터 네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너의 짜증에 아빠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에 있는 아빠가 쓴 분노의 역작 『화를 어떻게 다스릴까?』 장편 4부작을 읽어보렴. 네가 자식을 낳고 키우게 되었을 때, 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긴 말 안하마. 절대 자식을 때리지만 말거라. 아빠도 매 맞은 적은 없고, 너도 아마 앞으로 나에게 맞을 일은 없을 거다. 네가 네 자식을 때린다면 위대한 유산을 발로 차는 거다.

우리 부부의 노력(인내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긴 하다.)이 결실을 맺었는지 몰라도 너도 이제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짜증도 많이 줄었다. 요즘은 네가 아빠와 엄마를 먼저 안아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 너무나도 뿌듯하다. 게다가 문을 먼저 열고 갈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문을 잡고 서서는 뒤의 사람들이 지나갈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배려를 볼 때마다 많이 뻥쳐서 '이제 다 컸다'싶은 생각이 든다. 이제는 네가 엄청 좋다. 게다가 점점 좋아지고 있고.

이훤아, 살면서 버팀목을 만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이 사람이 버팀목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너의 몫이란다. 그리고 버팀목을 선정하면 사랑은 한 순간에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랑이라는 싹이 점점 커지고 열매를 맺게 된다.

너의 경우 아빠나 엄마가 각자의 부모님에게서 받았던 사랑이 대를 이어져 너에게 전해진 것. 그래서 건강한 사랑의 싹을 지니고 있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선은 살짝 행운이었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이 싹을 잘 기르기 위해 힘껏 사랑하렴.

하지만 버팀목은 꼭 부모일 필요는 없다. 책에 있는 위대한 인물일 수도 있고, 옆집 아저씨일수도 있고, 32촌쯤 되는 이모나 삼촌이 될 수도 있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높이 올라 눈을 크게 뜨고 활짝 핀 가슴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렴. 분명 수많은 버팀목들이 될 나무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7. 그래도 나는 네 아빠다

2012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2013년이 어느새 거의 다가왔다.
우리는 과연 탄생이라는 시작점에서 세월을 그저 살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아빠는 죽음이라는 종착점에 도착하기 전까지 네가 지을 웅장한 집을 지탱해 줄 버팀목 중 하나가 됐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빠 스스로가 더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 많단다.

너와 아빠는 비록 출발점은 다르지만 같은 트랙을 뛰고 있는 거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자야. 내가 너보다 앞서 나가 꼭 1등을 하고 말거야. 하지만 아쉬워 할 건 없단다. 말했잖니. “출발점은 다르다”고. 넌 아빠보다 훨씬 뒤의 출발점. 시간으로 친다면 28년이나 차이 나는 먼 곳에서 아빠와 같이 달리고 있는 거잖니?

대신 거친 트랙을 아빠가 먼저 뛰며 네가 넘어질 만큼 큰 돌이 있다면 몇 개쯤은 치워 놓으마. 그리고 뛰다가 포장된 트랙이 끝나고 갈림길이 나타나면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표지판 2개를 세워놓으마.
표지판 한 개는 “앞에 길 없음. 만들어가길 바람”
나머지 한 개는 “이 쪽으로 한 명 뛰어가긴 했음”

아빠가 너보다 먼저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통계적으로 아빠의 달리기가 먼저 끝날 거다. 하지만 혹여 네가 아빠보다 앞서 나갈 만큼 가까이 접근했다면 아빠는 죽어라 뛰어 너와의 거리를 벌릴 거야.
왜냐고? 표지판 세워놔야 하거든.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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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권인생 2012-12-24 17:55:24
누군가의 인생이 남의 평가에 의해 '평범'할 수는 있지만
자신과 가족에게는 어떠한 삶도 '특별'할 것입니다.

신달자의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란 수필집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외할머니 인생을 요약한다면 석 줄이면 끝날 것 같았습니다.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살다가 어디서 죽었다.'

이러면 끝날 것 같은데 저희 외할머니는 굉장히 절박하셨습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풀어쓰면 책 열 권은 나올 것이다.
아니 열 권이 뭐냐, 백권도 나오지...... 쯧쯧......'

평범한 삶을 비범함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버팀목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한 개인의 삶을 특별하게 바라보고, 관심갖고,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이러면서 어떤 개인이든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비범한 사람이 됩니다.
이 글에서도 내가 버팀목이 되고 싶다는 창피한 말을 하기 위해
엄청나게 먼길을 서성였습니다. A4지 8장을 서성였죠.
신달자씨의 외할머니의 인생이야기 100권처럼
평범한 석 줄의 내 인생을 특별한 100권의 인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적어도 내 가족들과 친지, 친구들에게는 말입니다.

버팀목은 사랑 2012-12-24 17:18:53
글을 읽으면서 '나의 버팀목은 누굴까?' 생각해 봅니다.
첫째, 지극히 평범했지만 무한한 사랑을 주신 나의 부모님,
나의 가족, 책을 통해 본 정신적 멘토들...
아기 원숭이에게는 '포근한 봉제인형 원숭이의 품'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바로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의 '사랑'의 힘이겠죠.
위대한 정신적 멘토가 아니더라도 '사랑'은 '존경'을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