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들의 후손이니 박태환과 같은 토박이 선수 나올 것”
“해녀들의 후손이니 박태환과 같은 토박이 선수 나올 것”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2.07.1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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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주인] 제주시 실내종합경기장 관리 주무관 ‘제주물개’ 김천대씨

수영으로 인연을 맺어 제주사람이 된 김천대씨. 그는 제주시 실내수영장의 파수꾼이다.
대구 금호강에서 놀던 소년이 있었다. ‘아시아의 물개를 꿈꾸던 그 소년은 어느덧 제주사람이 다 돼 버렸다. 제주시 실내수영장 관리 주무관인 김천대씨(46). 그가 제주와 첫 만남을 가진 건 지난 1991년이다. 대학 졸업여행 때 반한 그는 2년 뒤 제주에 눌러 앉는다.

제게 제의가 들어왔어요. 제주시청 직장운동경기부가 만들어지는데 감독을 해달라는 거였죠. 이렇게 제주에 정착까지 할 걸로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살면 살수록 제주의 매력이 더해지고, 어린 선수들을 키우면서 저의 영원한 터전이 됐지 뭐예요.”

그는 수영선수가 된 배경을 금호강에서 놀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눈에 띄었다. 비록 태극마크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1990년 한국체대 시절 남자부 50m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기량은 남달랐다.

그는 제주시청 직장운동경기부 감독을 하면서 제주수영부를 전국 2위까지 올리기도 했다. 전국체전에서 제주 다이빙의 금맥이던 신우찬을 길러내기도 했다.

그는 마냥 제주가 좋단다. 사람도 좋고,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한없이 늘어놓는다. 그런 그에게 제주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건 바로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이다. 그는 금호강의 물을 통해 선수가 됐으며, 그런 인연이 그를 제주로 불러들였다. 또한 그는 제주에서 수영과 관련된 새로운 일을 꾸미며 제주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주도장애인수영연맹에서 활동할 당시 바다와 실내수영장을 오가며 대회를 여는 이색적인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2007평화배 전국장애인수영대회를 탄생시켰다.

그 전부터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영교실을 진행해왔어요. 아쿠아로빅 교실 등을 열면서 장애인의 재활을 도왔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장애인들이 한정된 실내수영장에만 있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바다로 나가자고 생각했죠.”

이런 고민으로 탄생한 대회가 평화배 전국장애인수영대회. 이 대회는 하루는 바다, 하루는 실내수영장에서 대회를 한다. 장애인들이 바다를 오가며 하는 대회로는 이 대회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토박이가 아닌 소위 외지인으로 살아온 그에겐 숱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을 꺼내들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죠. 저를 비롯해 수영을 하는 16명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16강을 기원하자며 제주시 탑동을 거쳐 서귀포시 법환 포구에 이르는 160를 바다수영 한 때가 제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네요. 23일동안 16명이 릴레이식으로 수영을 했고, 결국은 대표팀이 16강을 넘어 4강에 이르렀잖아요.”

'제주물개' 김천대 주무관은 언젠가는 박태환과 같은 선수를 길러내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투엔 아직도 경상도 억양이 배어 있다. 경상도 억양은 웬만한 노력을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특유의 성질이 있다. 경상도 억양이 , 튀어나오지만 그는 자신을 제주도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는 제주에서 하고 싶은 자신의 꿈을 꺼내들었다.

박태환과 같은 제주도 토박이 선수를 만들고 싶어요. 제주도는 4면이 바다이고, 해녀의 고장이잖아요. 신체조건과 폐활량이 타고난 선수를 발굴한다면 충분하다고 봐요. 여기에다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져주면 충분합니다.”

그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어린이꿈나무수영교실을 구상중이다. 아니, 박태환과 같은 어린이가 그의 앞에 언젠가는 나타날지도 모른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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