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과 관련, 지난 9일 제주도가 전화투표에 쓴 행정전화비 내역을 공개한 이후 제주도가 예비비로 81억원을 전화비로 지출한 데 대한 적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제주도가 예비비 관련 법령을 제시하며 적법한 지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명백히 지방재정법 위반이라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 지사, “업무추진비나 보조금 아니니 예비비로 쓸 수 있다”
우선 현행 지방자치법 제129조에서는 ‘지방자치단체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나 예산 초과 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 세입·세출 예산에 예비비를 계상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날 우 지사가 얘기한대로 2항에서는 ‘예비비의 지출은 다음 연도 지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부분도 나와 있다.
마찬가지로 지방재정법에도 제43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 초과 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 예비비로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예산에 계상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다만 지방재정법 시행령 제48조에서는 ‘업무추진비·보조금(긴급재해대책을 위한 보조금을 제외한다)에 대하여는 법 제43조의 규정에 의한 예비비의 계상을 할 수 없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우 지사는 전화요금이 업무추진비나 보조금이 아니므로 예비비로 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행정전화 요금이 과연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여전히 남는다.
# 도내 7개 시민사회단체, “사실상 채무부담행위 … 지방재정법 위반 소지 있다”
이날 도내 7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같은 법률 안의 다른 조항에서 반박의 근거를 내놓았다.
지방재정법 제44조(채무부담행위)의 ‘지방자치단체에 채무부담의 원인이 될 계약의 체결이나 그 밖의 행위를 할 때는 미리 예산으로 지방의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사실상 채무부담행위로 볼 수 있는 7대 경관 투표 전화요금 81억원을 예비비로 지출한 것은 지방재정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또 행정안전부 훈령인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 및 기금운용계획 수립기준’을 제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예비비의 성격과 제도 설치의 취지상 △연도중의 계획이나 여건 변동에 의한 대규모 투자지출 보전 △예산편성이나 지방의회의 심의과정에서 삭감된 경비 △다음 연도의 이월을 전제로 한 경비에 소요되는 것이나 이용․전용 등으로 재원의 소요를 우선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비비를 지출해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지방재정법 위반이 확인된다면 막대한 세금 낭비의 책임에 대해 우근민 도지사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 행정안전부 관계자, “법적분쟁 소지 있다 … 관련 내용 조사 또는 감사해봐야”
논란의 핵심은 7대 자연경관 투표에 쓰인 행정전화 비용을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부분과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채무부담행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내용으로 좁혀진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 부분에 대한 유권해석을 듣기 위해 <미디어제주>는 행정안전부 관계자와 직접 통화를 시도했다.
행정안전부의 김연중 지방예산제도 담당 서기관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예비비는 예산 성격상 보조금이나 업무추진비가 아니라면 자치단체장의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예산의 지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법적 다툼의 소지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이 제기한 ‘채무부담행위’인지 여부에 대해 김연중 서기관은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지만 제주도로서도 이에 대한 입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관련 내용에 대한 조사나 감사가 이뤄지기 전에 뭐라고 답변하기는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결국 전화투표에 쓰인 행정전화 요금을 예비비로 지출한 데 대한 적법성 논란은 시민단체들이 공익감사청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통해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감사원이 이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에는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