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세요”

[미디어 窓] 제주역사관 추진을 바라보면서 민속은 떨어지고 ‘역사’ 덧붙이는 작업 추진중 제주의 종합박물관으로서 새로운 이름 요구돼

2023-05-23     김형훈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다. 아니, 뱃속에서도 우리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우리는 왜 이름을 지을까. 이름을 짓고, 부르는 이유는 기대치가 이뤄지리라는 욕망이다. 그러려면 이름은 제대로 지어야 한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우리말로 풀어쓰면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곧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곧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이다. 이때 ‘명(名)’이라는 한자는 ‘명분’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이름’으로 이해해보자. 그렇다면 앞선 문장은 “이름이 바를 때라야, 일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논어>를 좀 더 훑어본다. 앞선 문장은 <논어>의 ‘자로편’에 나온다. 그 문장에 앞서서 자로가 공자와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을 모시고 정치를 한다면 뭘 먼저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공자는 자로의 물음에 ‘정명(正名)’으로 답한다. 공자의 정명은 ‘다움’이다. 다움은 닮는다는 말인데 이름에서 행위가 나오며, 행위는 이름과 맞아야 한다는 뜻일 테다. 정명은 군자다움, 신하다움, 부모다움, 자식다움 등 질서를 부여하는 말이어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겐 다소 어색하지만 ‘다움’은 곧 이름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

내년

이름으로 말이 길어졌지만, 이름을 꺼낸 이유는 있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 때문이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은 ‘민속’과 ‘자연사’라는 제주의 독특한 콘텐츠를 담은 종합박물관이다. 문제는 이름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민속은 수년간 돌문화공원의 강탈(?)로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자연사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젠 ‘(가칭)제주역사관’을 덧붙이면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어떤 곳인지를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특별자치도’라는 명칭이 붙은 도립박물관이다. 제주 도내 박물관의 가장 중추적인 위치에 있다. 도내 박물관을 총괄해야 하는 임무까지 부여받았다. 이름은 ‘민속자연사박물관’이라고 부여받았는데, 민속을 떼어내고 역사를 덧붙인다면 ‘민속자연사’라는 이름에 어울리기나 할까? 그래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이 필요하다. 이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다른 콘텐츠가 난립한다면 혼란만 줄 뿐이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의 박찬식 관장도 23일 제주 도내 문화부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제주 정체성이 보이는 명칭을 세워주는 게 어떨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고 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제주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살았던 기억이 박물관에 있고, 근현대의 기억도 가득하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도 이 박물관에만 있다. 제주의 온갖 게 담긴 이곳에 오영훈 도정은 공약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가칭)제주역사관’을 가져다 놓을 계획이다. 제주의 온갖 것에 ‘역사’라는 아주 중요한 콘텐츠가 더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름 변화는 필수일 수밖에 없다.

40년이라는 오랜 기간 제주의 종합박물관 지위를 지켜온 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에 오는 이들은 무조건 이곳을 거친다. 제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제주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 제격인 곳이 되려면,
거기에 제주역사관을 덧붙이려 한다면,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오영훈 지사의 공약인 제주역사관을 진행하기 위해 추진단을 가동하고 있다. 관련 용역도 곧 추진한다. 용역진에게 부탁한다. 제주역사관을 덧붙이기에 앞서, 제대로 된 이름을 먼저 붙여주자. 아니면 용역에 박물관 이름 변경도 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