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서 '허위작성 의혹', 진실은?

[기획특집: 이면을 보다] 세계자연유산의 위기2.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 땐 '위협요인' 반드시 알려야 등재 신청서 확인 결과, "위협 요인 '하수처리장' 누락"

2022-04-14     김은애 기자

기획특집 <이면을 보다>는 제주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모든 사람에겐 이면이 있듯, 사건에도 이면이 있습니다. 여러 이면을 통해 본질을 보게 되는 여정, 어쩌면 조금 더딜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건의 본질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을 겁니다.

이면을 바라볼 첫 사건은 제주시 화북 지역, 화북천 위에 지어진 '간이공공하수처리시설 설치사업'과 관련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번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훼손 위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편집자주]

 

[미디어제주 김은애 기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을 위해 작성된 '신청서'에 커다란 하자가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세계자연유산 훼손이 우려되는 중대한 위협요인이 있음에도, 신청서에 이를 기재하지 않은 것이다.

2006년 2월 대한민국 정부·문화재청·제주도(이하 ‘정부’)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Jeju Volcanic Island and Lava Tubes)’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측에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2007년 6월 27일, 등재에 성공한다.

당시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본부에 제출한 ‘신청서’에 따르면,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 지역)’을 위협하는 대규모 공사 및 하수처리장은 제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농경지로부터 유출되는 빗물'이 오염원의 대부분인 수준이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자.

“No anthropogenic pollutants, such as polluted ground water, that could potentially affect the lava tubes or cave formations in the lava tubes, are known to pose any threat to the area surrounding the Geomunoreum System, but we need to monitor the effect of runoff from the agricultural field on the lava tubes.”

"오염된 지하수처럼 용암동굴이나 용암동굴 형성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위적인 오염원은 거문오름계 용암동굴 주변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농경지로부터 유출되는 빗물 등이 용암동굴에 미치는 영향은 모니터링해야 한다."

하지만 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신청서가 작성될 당시, '거문오름계 용암동굴'인 월정리 당처물동굴, 용천동굴 옆에는 동부하수처리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중계펌프장 수준이 아닌, 하루 최대처리 하수량 1만2000㎥ 규모의 하수종말처리장이다. (다만, 기계설비는 6000㎥ 규모만 들였고, 2014년 추가 6000㎥ 기계설비를 들여 총규모 1만2000㎥ 처리 가능한 현재 용량이 되었음)

하수처리장은 '오염된 지하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인위적인 오염원'이다. 또한, 터파기 등 시설공사가 대규모로 이뤄지므로 '용암동굴 형성물(종유석, 석순 등)'의 상당부분 훼손이 예상되는 '위협' 요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은 신청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림에서

하수처리장 이야기는 신청서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용암동굴 훼손이 우려되는 그외 사항은 나와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만장굴에 “외부 조명, 관광객의 몸에 붙어 온 오염물질 등에 의해 일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In the section of Manjang that is open to public, some problems arise from allowing public access such as green pollution (the so called 'lampenflora' or 'maladie verte') due to artificial lighting inside the lava tube and black pollution caused by particles imported by outside air and human bodies.”

“공개된 만장굴 구간에서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면서 일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용암동굴 내부 인공조명으로 인한 녹색 오염(일명 ‘lampenflora’ 혹은 'maladie verte'), 외부 공기와 인체에 붙어 온 오염물질 등입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위 만장굴의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아래 내용이다.

“Minimizing impacts by keeping vehicle and foot traffic below the maximum capacity or providing detour routes.”

“차량 및 도보 교통량을 최대 통행량 이하로 유지하거나 우회 경로를 제공해 (동굴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정부가 이처럼 세세한 요인을 신청서에 상세히 기재한 이유가 뭘까. 바로 신청서 작성 양식에 따라 꼭 기재해야 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신청서 양식'에 따르면, 세계자연유산 등재 희망 지역의 ‘위협 요소’는 모두 파악되어야 하고, 그 내용이 신청서에 담겨야 한다.

하지만 △농경지 △빗물 △관광객 △도로 등으로 인한 세세한 오염인자는 신청서에 기재된 반면, 앞서 언급했듯 명백한 오염원으로 보이는 월정리 지역, ‘제주 동부하수처리장’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1997년,

정부가 ‘신청서’를 작성할 당시는 동부하수처리장 준설사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던 때다. 착공이 이뤄지고 있던 시점이기에, 제주도가 이를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왜 신청서에는 이 사실이 누락되어 있는 걸까.

심지어 정부는 신청서를 통해 "농경으로 인한 동굴 훼손이 우려되기에, 동굴 위 토지를 정부가 매입하고 있다"라는 해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거문오름계의 용암동굴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개발 압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면서 “동굴 위 지역 대부분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005년 발견된 용천동굴 위 토지 일부가 농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부에 의해 이 땅들을 매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라고 알린 것이다. 여기서 ‘용천동굴’은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에 바로 인접한 거문오름계 용암동굴, 세계자연유산에 속한다.

이밖에 용천동굴과 이어지는 “당처물동굴 위 토지는 한때 농경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땅을 매입한 뒤, 일부 훼손된 사구를 복구하고 관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도 신청서에 담겼다. 당처물동굴 또한 세계자연유산에 포함되며,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에 인접해 있다.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정리해보자. 당시 정부는 동굴 훼손에 대한 오염원으로 ‘농경’을 제시하면서도, 인근에서 착공 중인 ‘하수처리장’의 존재는 유네스코 측에 철저히 숨겼다.

만약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본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무탈하게 등재될 수 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이 문제는 월정리 지역 주민들이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 정식 제소할 예정이다. 그동안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측에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모양새라 본부에 직접 문제를 알릴 계획이다.

용암이

한편, 제주도는 현재 동부하수처리장을 기존(1만2000m³/일)보다 2배 키우는 증설사업(2만4000m³/일)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인근에 하수처리장이 존재하고, 이 사실을 세계자연유산 등재신청 당시 숨긴 정부. 그리고 현재는 하수처리장을 두 배 키우는 사업을 진행 중인 제주도. 이 모든 것을 허가한 문화재청.

이를 유네스코 파리 본부에서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