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를 어렵게 대하지 마세요. 그는 ‘공구형’이랍니다”

[인터뷰] <논어와 음악> 펴낸 국제신문 정상도 실장 “공자 이야기는 불평등 해소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2021-12-28     김형훈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사상가들이 많다. 아쉽게도 우리나라가 아니라, 이웃한 중국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수많은 사상가들, 이른바 ‘제자백가’로 불리는 이들이 향연을 펼치는 장이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상가를 들라면 ‘공자’가 아닐까. 그의 본명은 ‘공구(孔丘)’인데, 만일 그를 만나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가수 나훈아가 소크라테스를 ‘테스형’이라고 불렀다면, 공자를 ‘공구형’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얼마 전 <논어와 음악>(나무발전소 펴냄)이라는 책을 내놓은 국제신문 정상도 논설실장이다. 정상도 실장에겐 제자와 대화를 기록한 <논어>가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유교경전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을 그는 책으로 들려준다.

마침 정상도 실장이 눈 내린 날 제주를 들렀다. 부산에서 온지라 눈 내린 제주는 낯설면서도 이국적이지만, 하늘에서 내린 눈이라는 존재는 정상도 실장 일행을 제주에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꽁지머리를 하고서 <논어와 음악>을 들려줬다.

“공자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인 것처럼 끌어올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는 매개가 음악이 되리라 봤어요. 왜냐하면 공자 스스로가 음악을 가까이하며 즐겼죠. 우리는 서로 취향은 다르지만 음악을 즐기잖아요.”

지금을 사는 우리나, 예전을 살았던 사람들 곁엔 늘 음악이 함께했다. 그걸 책 제목에 녹여냈고, <논어와 음악>을 읽으면서 책 중간중간에 들어간 QR코드를 스캔하면 음악도 듣는 여유도 가지게 된다.

책은 ‘무거움’이라는 단어로 받아들이면 힘들어진다. 편안한 친구와 같은 존재이면서 음악을 곁에 두고 즐기는 책을 <논어와 음악>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논어>를 너무 어렵게 대한다. <논어>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틀이었다.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공자를 만난 기분으로 당대를 표현해달라고 했더니, 정상도 실장은 다음처럼 말한다.

“청동기로 농사를 짓다가 철기로 바뀌는 시기였어요. 생산량은 엄청나게 증대를 하고, 그걸 나누기 위한 싸움, 결국은 질서를 잡는 과정이 생긴 겁니다. 누군가는 무력을 우선하고, 누군가는 법을 우선하고, 그 와중에 사랑이 최고였어요. 그게 인(仁)이었던 겁니다. 공자는 그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을 보살펴주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기제로서 가져올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귀중한 유산입니다.”

정상도 실장은 공자가 우리에게 준 유산은 지금도 통용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에게 닥친 기후 문제, 경제불평등의 문제는 <논어>를 통해 배울 수 있으며, <논어와 음악>은 그걸 쉽게 풀어놓았다.

“공자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플라토닉한 사랑일 수도 있고, 내 주변을 좋아하고 내 가족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제 점점 그리움이 되는데, 그리움을 안고 있는 이유는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면 편안하죠. 공자는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라고 했는데,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그런 세상을 만든 공자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죠.”

남에게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로 표현했다. 나이 든 어르신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고, 친구로부터 믿음을 느끼고, 젊은이로부터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런 인간은 ‘나’라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 정상도 실장은 그런 뜻을 품고 책을 썼으나, 더 편안하게 책을 대해달라고 한다.

그는 신문기자로 30년을 넘게 활동하면서 <논어> 공부를 해오고 있다. 10년간 <논어> 원전을 읽으며 그만의 방식으로 공자와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현학적인 문답도 아니고, 고리타분함도 아니다. 그냥 형과 다름없는 공자와 대화를 하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인(仁)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행동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꽁지머리를 기른다. 기부를 위해서다.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500년 전 ‘공구형’이 현실을 제대로 읽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기를 원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