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살게 해주는 제주의 자연

[제주 Happy Song] 제2화

2021-09-29     정경임

제주의 들판은 여러 작물을 키워낸다. 따뜻한 날씨 덕분에 한 밭에 감자도 심고, 당근도 심는 2기작 또는 3기작이 가능하다고 하니, 들판의 풍경이 늘 변화무쌍하다. 서귀포 대정 지역 들판은 넓디넓어 그곳에 어떤 작물이 자라는지 궁금했다. 어느 계절에는 고구마 줄기가 들판을 가득 채웠나 싶으면 다음에는 빈 들판이 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아주머니들이 들판 고랑에 줄을 지어 앉아 마늘 종자를 심고 있고, 마늘의 파릇파릇한 풀잎은 다음해 5월쯤 푸른 물결처럼 일렁인다. 또한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을 지닌 서귀포 성산 지역 들판에는 유채나 메밀, 당근 등이 쑥쑥 자란다. 제주 브로콜리는 전국 생산량의 80%, 제주 당근은 전국 생산량의 70%에 이른다고 하니, 제주의 들판은 열일 또 열일한다.

 

# 자연이 주는 선물

그래서인지 제주에 살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이들을 본 적이 없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귤밭을 오가고, 봄철이 되면 꼬부랑 어르신들이 고사리를 꺾느라 들판에서 들꽃처럼 피어난다. 봄이 끝나갈 무렵부터는 바다 물때를 살펴 간조(썰물) 시간에 맞춰 문어며 보말, 성게를 잡는 이들이 바닷가에 즐비하다. 가을철이 되면 정말 많은 제주 사람들이 감귤 선과장이나 감귤밭 등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 귤을 따고 고르며 겨울을 난다. 모두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활동일지라도 제주의 자연은 굼벵이 팔자로 태어난 이들까지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필자도 한라봉 하우스에서 선별을 해보았고 귤밭에서 귤을 따보았다. 행동이 민첩하지 못한 편이라 눈치가 좀 보이기는 했지만 귤밭 체험이 정말정말 재밌다.

 

# 자연의 선물을 베푸는 재미

이처럼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에 동화되었는지 필자도 직장 다니랴, 대학원 다니랴, 그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봄에는 달래며 고사리, 더덕을 채취하러 다니고(올 4월에 가느다란 더덕 뿌리와 더덕 새순을 동갑내기 직장 동료에게 갖다줬더니, 그 동료는 더덕 뿌리가 아닌 더덕 새순에 홀딱 반해버렸다. 더덕 새순을 넣은 비빔밥은 처음 먹어본다고 한다. 아니, 더덕 새순이 내뿜는 향기를 이제야 맡아보다니.), 여름과 가을에는 보말을 주우러 다닌다. 겨울에는 엄마가 보내준 도토리가루로 묵을 쑤어 들기름과 소금, 깨만 넣고 버무린 묵을 즐겨 먹으며 피하지방을 늘린다. 사실 겨울은 책 읽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책을 읽는 행위는 다음해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움직일 육체를 위한 ‘위로’이기 때문이다.

# 기꺼이 감사해하며…

더군다나 제주에는 힐링할 수 있는 자연이 풍부하다. 자연과 가깝게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감사할 뿐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제주에서는 숲 대신 바다로 간다. 드넓게 펼쳐진 강정 바다 앞에 서면 ‘임금님 귀’까지만 외쳐도 속이 후련해진다. 강정 바다가 좋은 이유는 저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서이고, 누구나 바다에 첨벙 들어가 보말을 주울 수 있게 해주어서이며, 바다 부근에 상점이 없어서이다. (작년부터인가 높다란 카페 2곳이 들어섰으나, 바다 경관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육지에서 손님이 올 때면 꼭 강정 바다에 데려간다. 산책 코스로도 좋고, 바다 물빛을 감상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해질녘 바다 위로, 하늘 위로 번지는 노을빛이 아름답다 못해 우리의 상념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이렇듯 제주의 자연은 잠재해 있는 감성을 높이 끌어 올려주고, 기꺼이 감사하며 살게 해준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해주는, 신나는 일이다.

제주의

 

정경임...

- 한겨레신문 출판부, 삼성출판사, 나무발전소 등 다수의 출판사에서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
- 무릉중학교, 서귀포중학교 등 다수의 초중등학교에서 독서 및 논술 강사로 활동
-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제주대학교 산업대학원 원예학과 재학 중
- 한라여성새로일하기센터 직업상담사로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