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도 않은 누명으로…집이 북촌이라는 이유로”

90대 할아버지들 70여년 전 재판 재심 청구 “최소한의 재판 받을 권리도 무시된 채 옥고” 4.3 수형 피해자 3차…도민연대 “진실 규명”

2020-04-02     이정민 기자

[미디어제주 이정민 기자] 70여년 전 미군정하에서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옥고를 치른 90대 할아버지들이 재심 청구에 나섰다.

4.3 수형 피해자의 재심 청구 세 번째 사례다.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도민연대(대표 양동규, 이하 도민연대)는 2일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제3차 4.3수형 (생존) 피해자 재심 청구'(일반 재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재심을 청구한 사람은 1947년 6월과 8월 끌려간 고태삼(91) 할아버지와 이재훈(90) 할아버지다.

2일

도민연대에 따르면 고태삼 할아버지는 1947년 6월 동네 청년 모임에 나갔다가 집회 장소를 덮친 세화지서 경찰관 3명과 마을 청년들 간 충돌 과정에서 경찰을 때렸다는 누명을 쓰고 법원에서 장기 2년 단기 1년형을 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했다.

6월 6일 집을 떠났다 열흘 만에 돌아오자마자 경찰에 다시 잡혀 세화지서에서 폭행당하고 다음 날 제주경찰서에 유치됐지만 어떤 조사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도 이름만 불렸다고 설명했다.

이재훈 할아버지는 1947년 8월 13일 경찰관이 쏜 총에 북촌마을 주민 3명이 총상을 입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함덕으로 몰려갈 때 따라갔고 함덕지서 순경의 "어디 사느냐"는 말에 "북촌"이라고 답하자 구금됐다.

학교 선생님에 의해 풀려났으나 다음날 다시 체포돼 구타당하고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다.

2일

도민연대는 "고 할아버지와 이 할아버지에 대해 미군정하에서 일반재판에 넘겨졌지만 최소한의 재판을 받을 권리도 무시된 채 옥고를 치렀다"고 밝혔다.

특히 "영장없이 체포되고 경찰의 취조와 고문을 받은 뒤 이름만 호명하는 재판에 의해 형무소로 이송됐다"며 "판결문 어디에더 이들의 범죄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민연대는 "이들이 구순 나이가 돼서야 평생의 한을 풀기 위해, 70년 넘도록 전과자 신세로 살아온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청구한다"며 "사법부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명예롭게 정리할 수 있도록 조속히 진실을 규명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견에 참석한 이 할아버지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잘못도 없이 무지막지한 고문에 말도 못할 고생을 했다"며 "밤 12시가 넘어 불려가 물고문을 당하는 등 억울함이 오늘까지 왔는데 이제 재심 청구의 기회를 얻게돼 도와준 사람들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고 할아버지는 심경을 묻는 말에 "몸이 힘들어 이야기할 수 없다"고 노쇠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태순(91)

한편 4.3 수형 피해자의 재심 청구는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을 받은 군사재판 수형생존인 18명(1차)과 2차 8명(군사재판 7, 일반재판 1)에 이어 이번이 3차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