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지켜낸 ‘화북다움’에 박수갈채를

[미디어 窓] ‘뉴 삼무형 주거환경관리사업’을 보며 제주시, 화북 금산지구 도로 계획 추진하지 않기로 주민들 옛 기억 가득한 도로 지키려 온몸으로 맞서 도시재생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민들이 더 잘 알아

2019-01-23     김형훈 기자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개발은 두 얼굴을 지녔다. 예쁜 얼굴을 지녔지만 그 뒤엔 파괴가 따라다닌다. 다시 말하면 개발은 기존의 것을 없애고 새로운 얼굴로 단장을 한다. 개발의 두 얼굴이 이렇다. 어찌 보면 개발은 양립하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예쁘게 만들고 싶은데, 그렇게 될 경우 사라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개발에 대한 고민은 늘 이렇다. 그렇다고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들의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제는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개발은 땅에 따라 달라진다. 허허벌판인 곳과 사람이 밀집한 곳의 개발은 달라진다. 사람이 밀집한 곳이어도 아주 오래된 기억을 지닌 곳과 콘크리트 더미가 가득한 공간의 개발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서두가 길었으나 제주시 화북동에 추진하려던 ‘제주 뉴 삼무형 주거환경관리사업(금산지구)’은 접게 됐다. 제주시는 지난해말 이 사업을 하지 않기로 하고, 올해 초에 마을에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보냈다.

제주시가

개발이 예정됐던 곳은 화북동 중마을과 서마을이 겹치는 곳이다. 골목이 아기자기한 곳이다. 10년전에 제주시 동마을과 서마을 일대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변화를 맞았으나, 여기만 남겨두고 있던 터였다.

이미 개발된 곳은 이른바 ‘그리드’라고 불리는 격자형으로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예전의 골목은 사라지고, 올망졸망 모여 앉았던 건물들도 사라지게 됐다. 더 문제는 격자형으로 만든 도로는 사람이 점령한 게 아니라, 주차장으로 변했다. 행정은 마지막으로 남은 곳 역시 격자형으로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10년 전에 했던 사업이어서, 서마을과 동마을에 했던 방식으로 진행했으나 벽에 막혔다.

그 벽은 ‘기억을 지키려는 의지’였다. 주민들이 반발을 하며 나섰다. 제주시는 2017년 두차례에 걸쳐 주민설명회를 가졌으나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그해 9월엔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사업을 하면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들의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격자형 도로를 만들 경우 ‘화북다움’이 사라지고 도로는 주차장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주민들은 반대 서명을 하며 부당성을 알렸고, 언론을 통한 홍보전에 나섰다. 반면 제주시는 반대 주민들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다시 도로를 그려 넣고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 다행이랄까. 제주시의 강행은 힘을 잃었다. 행정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삶의 질을 생각해보자. 내 곁의 땅이 격자형으로 만들어지고, 길어 넓혀지면 좋은가. 아니면 구불구불하지만 옛 기억을 지닌 그런 도로가 좋은가. 어떤 게 삶의 질이 나을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기억의 가치는 환산할 수 없다. 요즘은 도시재생도 바뀌고 있다. 마구 없애는 도시재생은 없다. 어떻게 하면 예전의 가치를 살릴까에 관심을 두는 게 요즘의 도시재생이다.

이번 화북 사례는 종전에 없었다. 주민들이 나서서 개발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 자체가 없었다. 만일 개발이 됐더라면 화북은 그들의 가치를 잃고, 어디를 가나 똑같은 마을이 될 뻔했다. 주민이 지켜낸 화북다움에 박수를 보낸다.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민들이 더 잘 이해한다는 점도 이번 사례를 통해 배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