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07:39 (금)
'상식 밖의 행동', 결국 제 덫에 걸렸나
'상식 밖의 행동', 결국 제 덫에 걸렸나
  • 윤철수 기자
  • 승인 2010.09.07 17: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논단] '적반하장'격 경고처분이 빚어낸 교육계 '역풍'

제 무덤을 스스로 팠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제 덫에 제가 걸렸다고 해야 할까?

제주시교육지원청의 상식 밖의 처분이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판 격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학교장의 성희롱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여교사에 대해 제주시교육청이 경고처분을 내린 일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위원회의 특별조사 결과가 7일 발표됐다.

조사결과는 한마디로 해당교사에 대한 경고처분은 '위법', 경고처분을 내린 당시 제주시교육장은 '문제'라는 결론이다.

결국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경고처분을 받았던 여교사는 그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반면 경고처분을 한 제주시교육장은 불명예를 안게 됐다.

감사위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제주시교육장을 경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교육청의 관련 공무원 2명에게도 경고 또는 주의 조치하도록 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당초 이 사건은 제주도내 모 중학교 여교사인 A씨가 학생들을 상담하던 중 해당 학교장이 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을 알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 결과 국가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해당 학교장의 일련의 행동을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이에따라 해당 학교장은 정년 한달을 남겨둔 상황에서 '해임'이란 중징계를 받았다.

파문이 여기서 마무리되는가 했더니 지난달 12일 제주시교육장이 느닷없이 '무리수'를 꺼내들었다. 이 사건을 진정한 제주시교육장은 해당 학교장에 대한 징계에 이어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A교사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내린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에서 정하고 있는 '복종의 의무'와 '비밀엄수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기서 다시 논란은 시작됐다. 종전 해당 학교장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되는가 안되는가의 논란이 제1라운드 공방이었다면, 진정한 교사에게 경고처분을 내린 교육청의 행정행위는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2라운드 공방으로 이어졌다.

도의회 여성의원들을 비롯해 제주도내 여성단체에서도 일제히 들고 일어서 제주시교육장의 처분이 과도한 재량권 일탈임을 항변했다.

결론은 제주시교육장의 '완패'.

▲왜 제주시교육장에 책임을 물어야 했나?

그렇다면, 감사위는 왜 제주시교육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을까?

감사위는 기본적으로 이번 성희롱 진정 교사에게 신분상 '경고처분'을 한 것은 위법부당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부 고발자인 진정교사가 국가인권위에 성희롱 등 학교운영 비리를 진정한 내용 중 학교운영에 관해 일부 사실과 다른 사항은 있으나, 대부분이 사실이므로 설령 위법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와 같이 그 위법성은 조각된다는 해석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국민권인위원회 설치 법률에서도 진정인은 신분상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사위는 내부 고발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호는 커녕 오히려 신분상 경고 조치를 한 당시 제주시교육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시교육청이 해당 여교사가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복종의 의무, 비밀엄수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위반을 물어 행정상 경고처분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감사위는 일축했다.

복종의 의무위반에 대해서는 학교장의 성희롱 등 학교운영 비리가 국민적 관심사항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안은 해당교사가 엄수해야 할 복종의 의무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학생과 상담한 내용을 동의없이 제3자에게 제공해 학생정보 보호원칙 및 비밀엄수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제주시교육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 설치 법률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볼 때 비밀엄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감사위의 특별조사 결과에 따른 처분요구로 교육청 당국은 적지않게 체면을 구기게 된 것은 물론 데미지를 입게 됐다.

더욱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막바지까지도 '성희롱은 아닌 것으로 본다'며 해당 학교장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옹호했다가 국가인권위 성희롱 결정으로 체면을 구긴 제주시교육장이 이번에는 무리수를 뒀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적반하장 식 대응의 '부끄러움'

감사위의 이번 특별조사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판단이다. 교육계 내부에서부터 '성희롱' 문제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각을 표출해 오던 차에, 감사위가 이에대해 철퇴를 가한 것에 다름없다.

교육청 당국은 이제 더 이상 옹졸하게 변명하거나, 어물쩍 이 사안을 넘기려 해서는 안된다.

이번 참에 교육계 내부에서부터 성희롱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뿌리를 뽑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학교 내 성희롱 문제를 쉬쉬 덮어두려 한다면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할 곳은 없게 된다.

제주시교육장에 대한 징계처분에 앞서 교육수장인 양성언 교육감이 이에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교육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해 진정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한 여교사의 용기있는 행동을 보호하고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적반하장 식으로 대응했던 것에 대한 자성이 선행돼야 한다.

앞으로의 후속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미디어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