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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갈등' 불 지피고, "그건 남의 집안 문제?"
'내부 갈등' 불 지피고, "그건 남의 집안 문제?"
  • 윤철수 기자
  • 승인 2010.08.16 11:30
  • 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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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유치원 종일반 문제 '탄원서'의 본질, 그리고 책임회피

1.

유치원 종일반 운영 문제와 관련해 유치원 교사들의 마음이 좋지 않다. 유치원 교사들의 주장들을 종합해 보면,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서귀포시 관내 유치원 37개 중 종일반을 운영하는 유치원은 36개.

올해 여름방학 중 종일반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교사들을 자극시킨 이런저런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교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은 소위 '교육감 지시사항'이라는 타이틀의 제주도교육감 명의의 공문.

지난 7월 이 공문이 유치원에 시달되자, 교사들의 '화'는 극에 달했다. 원생들의 점심식사 문제를 교사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사항까지 적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영양사와 조리사를 통한 정상적인 학교 급식이 이뤄지지만 방학 중에는 학교 급식이 이뤄지지 않아 선생님들보고 직접 급식을 하라는 시달이었다.

별 대수롭지 않은,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교사들에게 이런 시달을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일거리 하나 더 늘어난 차원이 아니라, 유치원 시스템에 대한 교육청 당국의 이해, 그리고 유치원 교사를 바라보는 교육청 당국의 시각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사안과 달리, 급식문제를 교사들 보고 해결하라는 것은 '발상'에 있어서의 문제였다. 급식을, 아이들의 건강권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끼니' 하나 해결해주는 것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가 전국에서는 최초로 친환경급식을 시작했고, 친환경급식의 모범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는 좋은 상황에서, "예산절감 차원에서 교사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시달 공문은 해프닝으로 보기에는 '상식 밖'의 일이었다.

교사들이 짬 내어 급식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면, 학기중에는 왜 교사들에게 시키지 않고 전문 영양사와 조리사까지 배치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학교급식을 바라보는 교육청 시각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두번째는 '유치원 교사'들에 대한 권익적 측면의 문제다. 교사들로 하여금 직접 급식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교사들의 업무 시스템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급식을 하려면 점심식사를 짜는 일에서부터 식재료를 구입하고, 음식을 만들어 배식하고, 그리고 뒷마무리까지 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일을 교사들 보고 하라는 것은 주먹구구식 업무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교육감님 시달사항'은 공문이 시달된지 며칠 되지 않아 취소됐다. 해당 유치원 교사들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례를 통해 교육청이 유치원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교사들이 억눌려왔던 교육청에 '하고 싶은 말'이 표출된 것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2.

유치원 교사들은 종일반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은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토로한다.

그 중에서도 어린이들의 통학문제에 대한 애로가 컸다. 무더운 여름철 어린이들을 뙤약볕에 걸어서 통원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어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차량으로 어린이들을 통원시켜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교사들이 자가용으로 통원시켜줘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교사들은 전직 교사가 그래왔기 때문에, 혹은 아이들이 무더운 날씨에 혼자 걸어서 집에가는 것이 안쓰러워 자가용을 이용해 어린이들을 통원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방학 중 시간적 여유가 많은 일반 교사와 달리, 종일반 유치원 교사들의 애로는 컸다.

자가용 통원 문제 역시 언제까지나 그대로 둘 문제가 아니였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내용이라면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만에 하나 교사들이 어린이들을 통원시켜주다 사고라도 났을 경우 그 책임은 당연히 교사들의 몫으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교육청 당국이 직접 나서서 이에대한 행정지도를 하던지, 아니면 통원버스를 운행시켜주던지 하는 대체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여기에 종일반 유치원에 임시직 보조강사만 배치하는 등 지원이 극히 부족해 교사들의 업무는 매우 과중한 실정이다. 여기에 10명 미만 소규모 학교는 보조 강사 마저 배치되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문제 등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도 교육청 당국은 말이 없었다. 제주도교육청은 당장은 예산 반영이 어려워 도심권과 읍면지역 교사들을 순환 배치하거나 종일반 운영을 자율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만 밝혔다.

유치원 교사들이 급기야, 집단적으로 '하소연'을 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서귀포시 지역 유치원 교사 42명이 지난달 26일과 27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와 제주도교육청, 그리고 서귀포시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탄원서에는 유치원 교사 거의 대부분이 서명했다.

유치원 종일반 문제와 관련한 근무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유치원 교사의 '권리'적 측면에서도 응당히 제기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탄원서 제출 또한 쉽지 않았다. 3개 기관에 제출을 하는데 있어, '원본 서명'이 있어야 한다면 '깐깐하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탄원서가 제출된 후 교육청 당국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강렬한 요구도 아니고, 노사협상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위 '하소연' 성격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인데 정상적인 민원처리를 밟기 보다는  소위 '설득'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청 모 관계자는 탄원서가 제출되자 뭐라 말했다, 어느 사람은 뭐라 말했다 등.

탄원서가 제출된 후 얼마없어 유치원 교사들은 '탄원서 철회' 문제를 놓고 모임을 가졌다. 철회할 것인가 여부를 두고 표결까지 거쳤다고 한다. 철회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은 철회됐다. 유치원 교사 모임의 대표격인 교사들이 나서서 철회를 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로 인해서 유치원 교사들 내부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탄원서 철회가 교사들의 의견을 모은 정상적인 철회였는지, 아니면 외압에 의한 철회였는지가 그것이다.

교사 모임의 대표격 교사들은 처음에 종일반 운영과 관련한 애로사항이 많아 탄원서를 냈으나, 이후 서귀포교육장과 교육감 등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교사들의 의견이 반영됨에 따라 자진해서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외압'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했다.

반면, 다른 일부 교사들은 상반된 주장을 폈다. 탄원서를 철회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모임까지 가졌고 이 과정에서 찬반표결이 이뤄졌는데 철회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4.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첫 보도를 한 후 많은 고민이 생겼다. 보도가 나간 후 보도내용에 대해 항변하는 교사들의 주장은 제각각 달랐다.

이 과정에서 사안의 본질이 변질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다가왔다.

탄원서 철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교사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교사나 모두 유치원 교사의 권익옹호라는 측면에서 한마음으로 나섰었는데, 이의 뒷마무리는 '내부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의 흐름이 뭔가 잘못되고 있는 듯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탄원서가 접수되면 제출한 이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검토하고 회신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자발적 철회'이든, '외압에 의한 철회'이든, 그 일련의 과정에서 교육청 당국의 태도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다.

말 그대로 '하소연' 성격의 탄원서를 갖고 왜 교육청 당국은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일까? 탄원서 철회를 위해 설득작업에 나섰던 것이 사실이라면, 왜 정상적 절차로 민원사무를 처리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번 사안의 본질은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유치원 교사들의 권익문제와 더불어, 종일반 운영에 대한 교육청 당국이 적절한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본질의 중심에 있는 교육청 당국은 탄원서가 철회된 이후, 마치 다른 집안의 싸움을 구경하는 위치로 슬그머니 빠져있다. 최초 '한 마음'이었던 교사들은 내홍에 휩싸여 있다.

결국 교육청 당국은 '내부 갈등' 유발을 통해 사안의 본질을 은근히 흐려놓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 종일반 문제와 관련한 일련의 파문, 그 책임은 응당 교육청 당국에 있다.

지금에 와서, 내부 갈등문제로 치부하며 계속해서 본질을 흐리려 한다면 '책임 회피'에 다름없다. <미디어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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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이 2010-08-26 17:59:06
요즘 각 미디어들이 다투어 유치원 문제를 보도하는데 똑같은 기사인데 미디어제주는 정말 알기쉽게...그리고 정확하게 보도하는것 같습니다~기자님 고맙습니다~우리 화이팅!!

유치원 2010-08-23 17:08:49
진심어린 취재 감사드리며, 유치원 교사는 올바르게 교육할 권리,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음을 잊지 않았음 좋겠습니다.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볼필요가.. 2010-08-23 14:04:20
행정업무, 그리고 이제는 급식(?)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게 되지 않을까요?ㅠㅠ 교육청이란곳...우리아이들의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곳이 아닌가요? 같은 유치원교사로서 많이 속상하네요...

좋은 신문 2010-08-19 13:26:24
역시 최고, 미디어제주가 너무너무 돋보입니다. 똑같은 기사인데 미디어제주는 정말 다르네요. 화이팅

,, 2010-08-19 07:43:10
맞습니다 만일 거짓말을 시키거나 조장하고 있다면 검찰에서 적극적으로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유아교육이 바르게 될수 있도록 교육청에서는 도시 시골 차별없이 지원을 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