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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면에 죄송한데요.." 무관심속 '엇나가는' 청소년들
"초면에 죄송한데요.." 무관심속 '엇나가는' 청소년들
  • 박성우 기자
  • 승인 2010.08.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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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취재파일]제주지역 탈선 청소년...한걸음 다가서는 노력 수반돼야

산지천 분수거리 취재중 이제 갓 고등학생쯤 돼보이는 한 여학생이 5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들고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초면에 죄송한데요...부탁 드릴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품행이 단정해 보이지는 않아 '술이나 담배를 사달라는 부탁이겠거니' 대충 눈치를 채고 안된다고 잘라 말했더니 "한번만 부탁할께요"라며 달라 붙는다.

여러번 겪어 오던 일인지 일련의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다.

학생이 그러면 안된다고 짧게 한소리 했더니 대뜸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냐"며 역정을 낸다. 수줍어하던 여고생은 온데간데 없이 돌변한 태도에 순간 멍해졌다.

지난 석달여간의 취재현장에서 이런 청소년들을 만난 것이 벌써 3번째다. 제주웰컴센터 뒷길에서 한번, 연동 차 없는 거리를 취재하던중 한번, 이번까지 3번째.

그들 중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린아이도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듯 최근 제주도내 청소년들의 엇나가려는 행동들이 자주 눈에 띄어 아쉬움을 남긴다.

몰래 담배를 피우다 들통나면 별로 미안할 것도 없는 사람에게 "죄송합니다"라며 도망가는 학생은 이제 순수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요즘에는 어두운 골목에서 떳떳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청소년 무리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담배를 피우는 것만으로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당당한 이들의 모습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늦은 밤 동네 공원은 이들의 안식처다.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모를 술병들과 몸을 가누지 못하는 학생들이 어우러져 이색풍경을 연출한다.

물론 어느 세대나 살짝 어긋나는 듯한 학생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세대가 흘러갈수록 이들에 대한 관심조차 끊기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염색한 학생들만 봐도 "어디 학생이 그러느냐"며 호통을 치던 고지식한 동네 어르신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됐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 무리를 보면 지레 겁을먹고 피해 다니기 바쁘다.

제주도와 행정시, 각 읍면동과 청소년 단체들이 다각도로 펼치는 시책들도 그들의 노력에 비해 뚜렷한 실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청소년들의 놀거리 문화를 만들어 주거나 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전문 상담원들을 배치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와서 도움을 청해라'에 그친 듯한 모습이다. '우리가 가서 도와줄께' 태도의 부재가 아쉽다.

특히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펼쳐지는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음지로 숨어든 이들의 귀를 파고들기란 쉽지 않다.

제 발로 걸어와주길 바라는 것은 큰 오산이다. 먼저 한걸음 다가서야 한다.

얼마전  갈 곳없는 청소년들이 많이 모여든다는 탑동 문화광장에서 한 청소년 기관이 거리상담소를 운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새에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꽤나 고무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번화가 뒷골목을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문제는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 뿐.

행정기관, 공공기관, 시민단체들의 책임만을 물을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진정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게 되길 기대해본다. 

이를 통해 '거리의 청소년'들이 각자 가정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5천원 짜리 지폐를 들고 다가오는 4번째 학생은 마주하지 않을 것 같다. <미디어제주>

<박성우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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