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조건 없는 사과
조건 없는 사과
  • 김수미
  • 승인 2010.04.1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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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서귀포시 송산동주민센터 김수미

나는 오늘도 실수연발. 일종의 습관 마냥 입에 달고 사는 사과의 말과 함께 오늘을 시작한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살다보면 기분 언짢은 경우가 하루 또는 이틀이상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날이 많다. 매번 언짢은 경우를 겪다보면 사과해야 할 때도, 사과 받았으면 하는 때도 있기 마련인데, 이 사과라는 것이 그저 별것 아닌 것 같은 행동의 표현으로 쉽게들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머리를 조아리며 상대에게 사과를 하게 되거나, 혹은 사과를 받아야 함에 서 있다면 그다지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민원인들과 대화를 한다. 그 수십 명의 민원인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감과 감정실은 이 입이 따라주지 않아 땅을 치며 후회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라는 내 습관적인 말에는 '∼그랬다면 죄송하다'는 조건을 단 사과를 은연중에 담고 있다. 있는 그대로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2% 부족한' 사과라는 것이다.

물론 나의 잘못을 스스로가 인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 잘못이 확실하다 하더라도 내가 인정하고, 나를 낮추며 사과를 하는 순간 나는 마치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것 같은 심각한(?) 좌절을 겪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낮춘다는 것이 단지 나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마음만은 편안해지는 일이 아닐까. 나의 잘못으로 인해 남에게 해가, 또는 기분 나쁨이 전달되었다면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나를 낮추는 순간 이세상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 몹쓸 자존심은 마음을 담은 사과대신 '아니면 말고'식의 조건부 사과를 즐겨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퉁명스런 사과는 또 한번의 모독'이라는 어느 책의 구절과 같이 사과를 하려면 먼저 자기의 진심이 얼마나 담겼는지부터 헤아려야 할 것이며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정직함과 진실함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실수는 다시 할 수 있지만 사과는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시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내려놓고 분명하고 성실하게 사과를 해야 한다. 적당한 사과, 형식적인 사과, 일시적인 사과는 하지 않음만 못하다.

사과는 내 마음에서 출발하여 상대에게 도착하는 과정이다. 온갖 형용사로 잘못을 포장하는 조건부 사과보다 진실한 사과와 용서야말로 나와 상대방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내일부터는 실수와 사과대신 미소 한가득을 얼굴에 담고 민원인들을 대해야겠다.

<서귀포시 송산동주민센터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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