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마비 장애를 안고 있는 한 청년이 자전거 페달을 부러운 손길로 만지작 거리다 포기하고는 '난 못해'라는 표정으로 체념하고 이내 휠체어 바퀴를 돌린다.
모든 것에 부정적이던 청년은 자신의 미래였을지도 모르는 거지로 인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장애를 받아들여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이 같은 내용의 단편영화 '의미있는 선물'을 시작으로 2009년 장애인 문화예술제가 11일 오후 4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올해로 다섯번째를 맞이한 장애인 문화예술제의 포스터에는 '새로운 문화창조자'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생소한 말이었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날 공연장 입구에서 관객을 맞이한 안내자부터 진행을 맡은 사회자, 무대에 오른 공연단 모두 장애인이었기 때문.
휠체어를 탄 사람, 목발을 짚은 사람, 앞 못 보는 사람 등 장애인들이 전문적인 문화예술영역에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을 찾았다.
장애인들의 휠체어로 인해 소극장은 더 좁게 느껴졌지만, 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소극장을 채우고도 남는 듯 했다.
"즐기는 모든 것이 문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차별없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문화의 장을 만들고 싶어 이번 공연을 주최했다는 최희순 제주장애인인권포럼 공동대표의 말이다.
최희순 공동대표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장애인의 문화권이 한층 보장됐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의 문화생활은 관람에만 그치고 있다"며 "장애인들이 더 나아가 문화생활의 주체적 생산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교실 '나눔'의 연극공연에서는 휠체어를 탄 '늙은 어린왕자'가 무대에 올랐다.
늙어버린데다 장애를 가져 삶의 희망을 잃은 어린왕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늙은 어린왕자의 역할을 맡은 이민철 씨는 "장애를 가진 것은 보편적인 것"이라면서 "장애인도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써 사회를 구성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공연을 통해 함께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하나였다.대사를 잊은 주인공에게 박수로 힘을 북돋았고, 그들의 익살스런 연기에는 비장애인, 장애인 가릴 것 없이 박장대소했다.
밴드 '허당보난'의 공연, 노래교실 '머리카락'의 노래 공연, 풍물교실 '큰울림'의 풍물놀이 공연이 뒤를 이어 관객들에게 장애인들의 끼를 뽐냈다.
"지난해에 비해 공연 레퍼토리는 늘었지만 한데 모여 단체 공연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여전히 안타깝다"며 말문을 연 고은호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사무국장.
고은호 사무국장은 "장애인들도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다"며 "문화예술행위를 할 공간, 재정적 지원이 열악하고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제약돼 있어 이렇게 공연당 10분, 20분씩 짧은 공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하는 문화도 비장애인이 즐기는 문화 중 하나"라며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들이 문화예술의 벽을 넘기에는 그 벽이 너무 높다. 장애인 문화의 자립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지원과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년 여름 탑동해변공연장에서 장애인 문화 공연을 열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제안했지만 실패했던 이번 장애인 문화예술제의 문구 '문화예술아, 맞짱뜨자'처럼 내년 여름 탑동공연장에서 장애인과 문화예술과의 한판이 벌써부터 기대 된다. <미디어제주>
<조승원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