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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담그는 것일까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담그는 것일까
  • 부종일 객원기자
  • 승인 2009.10.05 01: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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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해군기지 정부지원 차별' 뉴스프레임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기업은 2류,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을 꼬집은 말이었다. 정치의 후진성으로 꼽히는 요인 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정치인들이 지역정서 자극하는 일일 것이다.

지역정서 자극은 영호남을 떠나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주요 선거전략의 하나로 활용되어 왔고, 정치인들에게 서울 이외에 제주는 물론 지방민심을 공략하는 주요 포인트로 인식되어 왔다.

의식있는 정치인들도 지역감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치개혁의 문제는 시민사회와 언론 등 정치권밖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왔다.

지역정서 자극의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지역주민에게 지역차별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적인 인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묘하게도 내년 도지사 선거 출마행보를 하고 있는 정치신인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이를 잘 활용한 듯 하다.

고 전 사장은 얼마전 출판기념회에서 "신형 YF소나타 개발비가 4년 동안 4500억,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2950억, 경주에 들어서는 방폐장의 대가는 4조5000억에서 많게는 8조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강정은 10년에 걸쳐 8900억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추석 하루전 기고문을 통해 "YF쏘나타의 개발비는 4년간 4500억이었다. 8700억원 중에 10년에 걸쳐 국비로 낼 보상규모가 4700억원이니 강정의 가치는 신차 한 대 개발비인 셈이다"라고 다시 한번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이 발언에 대해, 고 전 사장의 발언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보도한 언론이 있었는가 하면, 소극적으로 아예 신간소개만 하고 '발언' 내용은 보도하지 않은 언론, 또 이 둘을 하나로 합쳐서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먼저 적극적으로 보도했던 '제민일보'와 '제주의 소리'는 신간소개 기사로 <"제주는 이제 새로운 새대 준비해야">, <고희범이 가고픈 길, "미래가 불안하지 않은 제주"> , 출판기념회 기사로 <고희범씨, '길과 길' 출판기념회 성황>, <"함께 길 가겠다" 격려...'선거 출정식' 방불> 등 2회에 걸쳐 보도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론은 1회 보도에 그쳐 비교적 소극적인 보도에 그쳤다. 한라일보는 <고희범 전 한겨레신문사장 출판 기념회>, 제주일보는 <한 언론인의 치열했던 삶의 향기>, 제주투데이<고희범 전 한겨레 사장, 제주지사 출마하나>, 미디어제주<고희범 "제주는 이제 새로운 시대 준비해야>, 이슈제주<고희범의 길과 길>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언론보도의 '적극적' 내지 '소극적'으로 나뉘는 현상을 보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고 전 사장의 발언에 대한 경계 때문인지, 아니면 제주언론이 정치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인지 넘겨짚을 수는 없다. 하지만 홀대론과 같은 보도는 제주언론에서도 자주 썼던 저널리즘 행태였던 점을 감안하면,  홀대론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진입장벽'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선거판이 벌어지게 되면 정당을 중심으로 헤쳐모여가 이뤄질텐데 제주언론이 벌써부터 진입장벽을 높이 치는 것은 칠종칠금(七縱七擒 : 상대를 마음대로 다루다)의 '곤조'의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문턱은 낮추고 철저한 검증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원칙에도 맞지 않을까. 해당 정치인의 문제가 된 발언 등을 독자들에게 사실 그대로 전달해 판단의 몫을 독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감시자 역할에 보다 충실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나보다는 남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제3자효과가 뉴스제작자들에게 먼저 적용되고 있는 듯 하다.

어떻든 홀대론은 그동안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측면이 있는데, 고 전 사장이 이를 활용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위력을 발산했다. 그 발언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아 제주지방변호사회에서 지난 29일 해군기지와 평택 미군기지, 경주 핵방폐장의 사업비 등을 비교하며 "특별법을 제정해 지원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해군기지 건설 관련된 모든 행정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김태환 지사는 "평택 미군기지와 경주 방폐장의 사례는 제주 해군기지문제와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유로는 "만약 제주에서 특별법 제정 요청한다면 동해와 같은 지역에서도 특별법 제정을 해 달라 할 것이다"고 밝혔다.

고 전 사장의 '발언'을 중심으로 해 해군기지 문제가 '정부지원 규모'의 문제로 논란의 중심이 옮겨지는 양상을 보이자, 김태환 지사가 이를 맞받아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언론은 이에 대해 냉철한 비판과 지적을 하지 않고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담그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새롭게 등장하는 정치신인들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은 요원하기만 하다.

현실적으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한국정치의 한계로 입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언론이 정치개혁의 의지마저 접어버린다면 언론은 그 순간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경쟁적인 정치권력에 대해 공격저널리즘 내지 '경마식 보도 저널리즘'을  자제해야 한다.

대신, 정치지망생들에 대한 기회와 감시를 보다 확대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역언론이 선거보도에 있어 어떤 저널리즘을 펼칠 것인지, 그 준칙을 제시해야 할 때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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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오다 2009-10-05 13:14:41
고희범을 은근히 띠우네, 그래갖구 언론 비평한다니, 참 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