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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 거대한 족적...파란만장 영욕의 '인동초'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파란만장 영욕의 '인동초'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9.08.18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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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일운동과 민주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으로 상징되는가 하면,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을 두고는 '인동초(人冬草)'로 표현되기도 했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다.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19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그러나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최고의 정보화사회를 구현했으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반체제 인사로 분류돼 잇따라 투옥, 수감되고 해외 망명생활을 하는 등 숱한 고초를 겪었다.

민주화의 봄인 1980년에는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으나 국제사회의 압력 덕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19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0년대부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사람이 현실정치의 중심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이른바 '3김시대'는 이번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역사의 한 장으로 기록되면서 막을 내리게 됐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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