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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현장 돌아보니, 마음이 무겁네요"
"비극의 현장 돌아보니, 마음이 무겁네요"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9.04.05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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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4.3역사기행

제주4.3 61주년을 맞아 그 아픔의 현장을 찾는 4.3순례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도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1박2일의 일정으로  '4.3역사기행' 길에 나섰다.

비도 오고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돈 4일 오전8시. 전국의 공무원 300여명으로 구성된 기행단은 아침일찍 61년전 4.3의 현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오른 기행단의 발걸음은 왠지 무거워보였고, 표정도 진지했다.

버스에 오른 기행단은 전날인 3일 제주4.3평화공원 방문 소감에 대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첫번째 순례지인 '다랑쉬 오름'에 대한 영상자료를 시청한 후, 궁금한 사항에 대해 함께 동행한 4.3해설가에게 질문을 하는 등 첫번째 순례지로 이동하는 시간에도 4.3의 의미를 되새겼다.

홍성호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민공노의 '4.3역사기행'은 공무원도 4.3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취지아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실시하는 것"이라며 "자료와 말로만 들었던 4.3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느끼고, 4.3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것"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4.3역사기행은 좀 더 많은 공무원들에게 4.3을 알리기 위함"이라며 "이번 기행은 지난해에 참석하지 않은 공무원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행단의 순례지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 오름', 조천읍 선흘리 '반못굴(도틀굴)', 화북1동 '곤을동 마을' 등 3곳이다. 기행의 안내는 제주지역 사회단체가 함께 동행하면서 4.3해설가로 활동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겨진 슬픔 다랑쉬 마을'

어느덧, 기행단의 첫 번째 순례지인 다랑쉬 오름에 도착했다. 기행단은 우선 다랑쉬 오름 남쪽에 위치한 다랑쉬 마을로 향했다. 다랑쉬 마을에는 큰 팽나무 아래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단어에 기행단을 관심을 보이며 글을 천천히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다랑쉬마을은 1948년 늦가을 소개령에 따라 태워져 없어진 후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은 '잃어버린 마을'이다. 지금도 팽나무를 중심으로 뭇터가 여러군데 남아있고, 집터 주변에는 대나무들이 무더기져 자라 당시 인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소개돼 폐촌될 무렵 이곳에는 10여 가호 40여명의 주민이 살았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랑쉬 마을이 4.3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없는 이유는 바로 마을 곁에 있는 '다랑쉬 동굴' 때문이다.

1992년 4월 '잃어버린 마을'표석이 세워진 팽나무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m지점에 위치한 다랑쉬굴에서 11구의 시신이 발굴되면서 도민들에게 4.3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새겨주었다.

당시 발견된 시신 중에는 아이 1명과 여성 3명도 포함돼 있었고 솥, 항아리, 사발 등 생활용품들이 굴 속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61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흘러간 비극의 현장은 말없이 정적만 감돌뿐이다. 다랑쉬 마을터와 다랑쉬 굴은 그날의 고통의 흔적들이 소멸되지 않은 채 여전히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대나무와 초록빛 들판인 다랑쉬 마을터의 풍경은 눈을 쉬게 하면서도 마음 한 자락에는 슬픔이 고이게 했다.

다랑쉬 마을터를 바라보던 김영섭(45.강원도 선거관리위원회)씨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김씨는 "이 곳에서 무고하게 제주도민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라며 "제주에 처음왔고, 4.3사건이 어떤 것인줄도 몰랐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돼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요"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중에 가족들과 다시 제주에 와서 4.3역사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라며 "이러한 진실규명에 이젠 공무원들도 함께 나서서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선흘주민들의 집단 학살지 반못굴(도틀굴)'

기행단은 이어 다랑쉬 오름과 맞은편에 위치한 아끈 다랑쉬 오름을 등반한뒤, 다음 순례지인 조천읍 선흘리 '반못굴(도틀굴)'로 이동했다.

4.3당시 토벌대를 피해 숨었다가 선흘주민 10여명이 희생된 선흘곶자왈 지대의 반못굴(도틀굴). 이와더불어 선흘 일대 목시물굴, 밴뱅디 굴 등에서 정확한 희생자 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20여명의 선흘마을 사람들이 집단 학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반못굴 동굴 입구에는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보호책이 설치돼 있었고 물이 가득차 있었다.

기행단은 작은 구멍의 굴을 보며 '이게 정말 굴이야', '작은 구멍인데 어떻게 안으로 들어갈수 있냐'며 신기해 하다가, 4.3해설가의 굴에 대한 설명에 놀라워했다. 4.3해설가들은 반못굴의 설명과 더불어 이 일대를 곶자왈 지대라고 소개해 기행단들의 관심을 끌었다.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마을을 찾아서...'

다음은 마지막 순례지인 제주시 화북1동 '곤을동 마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랑쉬 마을에 이어 4.3의 아픔를 간직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 마을'. 곤을동 마을에도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었고, 이 표석이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다.

곤을동은 제주시 화북1동 서쪽의 바닷가 마을을 지칭한다. 별도봉 동쪽으로 화북천이 흐른다. 화북천은 곤을동 초입에서 두개의 지류로 나눠진다. 지류의 가운데를 가운뎃곤을로, 서쪽 지류의 서편을 안곤을로, 동편지류의 동쪽을 밖곤을로 구분할수 있다.

당시 곤을동 마을은 별도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안곤마을' 22가구 '가운뎃곤마을' 17가구 '밧곤을' 28가구 등 67가구가 생활하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난 1949년 1월 4일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주민들이 학살을 당하고 집들이 모두 불에 타는 등 곤을동의 자취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잃어버린 마을'표석에 적힌 내용을 읽던 김형순(여.43.공정거래위원회)씨의 눈가가 점점 촉촉해졌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에 왔는데, 4.3현장을 돌아보니, 마음이 무겁네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조헌식(41.서울 강서구청)씨도 "충북에 있는 제 고향도 40여가구 밖에 안돼요. 비슷한 가구수의 마을이 통째로 없어졌다고 하니, 쓸씁한 마음이 드네요"라고 말했다.

차곡차곡 쌓인 돌담 너머로 보이는 빈터를 보고 있자니, 곤을동 마을의 아픔이 되새겨졌다. 그 아픔이 묻혀진채 넘실거리는  황토빛 풀의 물결과 은빛 바다, 그리고 절벽의 웅장함 등 아름다운 풍경을 내품는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시려온다.

이렇게 기행단은 1박 2일간의 짧은 만남, 긴 여운을 남긴채 '4.3역사기행'을 마무리했다.

한편, 기행단은 4.3역사기행을 마무리한 뒤, 이날 오후4시 제주시청 정문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주지부 주최로 열린 '제주4.3항쟁 정신계승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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