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22:34 (목)
'자가용 여덟 가족', 그 가난한 이들의 '사랑'
'자가용 여덟 가족', 그 가난한 이들의 '사랑'
  • 이성복 객원필진
  • 승인 2009.03.11 14: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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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18>내가 꿈꾸는 가족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자가용 여덟 가족’ 이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았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30대 후반의 젊은 부부였지만 자식이 여섯이나 있었다. 한때는 사업을 하면서 자기 집도 갖고 있고, 잘 나가던 젊은 사업가였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보증 잘못 섰다가 갖고 있던 집마저 모두 잃어버리고 지금은 하루하루 용역회사에 나가 일당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제일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고, 이제야 갓 낳은 듯 보이는 쌍둥이와 그 사이에 어린 애들이 여섯이나 되었다.

이 추운 겨울날 여덟 식구가 비좁은 승용차에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보다 못한 시청직원들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가장은 지신이 고아출신이라서 자신처럼 가족들과 떨어져 키우고 싶지 않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에 얼른 받아보니 여동생이었다. 외출준비를 하고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얼른 씻고 나가보니 동생이 벌써 와 있었다. 차 안에는 두 명의 조카들이 외삼촌인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 가려고?”

“응, 일요일이라 애들이랑 바람도 쐴 겸 놀이공원이나 갈까 하고.” 

매제는 동생이 운영하는 동물병원 리모델링 하느라 시간을 낼 수 없어 여동생과 조카들만 같이 동행했다.

차는 어느덧 제주시를 벗어나 외곽지로 달렸다. 날씨도 따뜻하고 간간히 햇살도 비췄다. 가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끝말잇기 게임을 했다. 조카들은 빨리빨리 이어 나가는데, 나는 빨리빨리 대답하지 못해서 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차는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우리가 간 곳은 교래리에 위치한 미니랜드 소인국 테마파크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릴 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신데렐라의 호박마차,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가가멜과 파파스머프 인형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건물과 탑들을 축소해 놓은 곳이었다.

조카들은 마냥 신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모처럼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기구도 타 보았다. 여동생은 나와 조카들 사진을 찍어주느라 분주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보행이 불편한 나를 큰 조카가 손을 잡고서 천천히 내 보폭에 맞춰 걷는 것이다.  어리지만 엄마를 닮아서인지 정도 많고, 이해심 많은 맏딸이다.

여기저기 사진 찍고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점심 때가 되어 매점에 들어가 간단히 요기했다. 조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동생과 나는 어묵을 먹고 있는데, 조카의 입 주위에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어 내 손수건으로 닦아줬더니 웃으면서 내 옆으로 와 다소곳이 안기는 모습을 보며 어묵을 주니까 입 속에서 오물거리면서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지금은 여동생과 조카들이지만 이 다음에 내가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들이랑 같이 외출도 하고, 단란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우리 부모님도 나와 동생에게 아주 자상하게 대해 주셨기에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가 지금의 동생이 이런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부부간의 이혼율이 높아지고 그로인해 자식들마저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보육시설이라든지 고아원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자가용 여덟가족’처럼 하루하루 날품 일을 하면서도 가족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 다음에 결혼한다면 내 부모가 그랬듯이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사랑을 듬뿍 안겨주는 그런 자상한 가장이고 싶다.

놀이공원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데, 이탈리아의 트래비 분수가 있어 조카들과 사진을 찍고 난 후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연못 안으로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다음에 올 때는 여동생과 조카들이 아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올 수 있게 해달라고 ...’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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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07:09:40
여러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는데
저도 기도드리겠습니다.
이성복 님의 꿈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