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섬김과 나눔 그 아름다운 선율
섬김과 나눔 그 아름다운 선율
  • 문익순
  • 승인 2009.03.02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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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익순 제주의료원 협력관

도심지 외곽 한적한 산야에 나누고 섬기는 병원 제주의료원이 있다. 오직 의술과 간호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병들고 삶에 지친 우리 이웃들의 안식처이다. 이 곳에도 화사한 봄날은 온다. 혼돈의 세파에도 아랑곳없이 봄의 전령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고즈넉한 병실, 병마와 싸우며 초점 잃은 눈으로 창밖세상을 응시하는 팔순을 넘긴 노인네들. 건강의 염원, 자식걱정, 내면에 녹아있는 그들의 또 다른 희망과 바람은 무엇일까. 병마에 찌든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자주 의료원을 찾는다.

사랑과 나눔, 섬기는 마음과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자원봉사는 연중 이어지며 목욕, 이.미용, 생일잔치, 원예치료, 서예지도, 음악공연 선물증정 등 실로 그 봉사활동의 범위는 넓고도 다양하다.

흥겨운 민요가락으로 병자들의 흥을 북돋우는 음악공연이 자주 열린다. 북, 장구장단에 맞춰 뿜어내는 여인들의 열창은 언제 들어도 흥겹고, 그 감미로운 선율은 나눔과 섬김의 미학이다.

오늘의 공연은 자주 듣던 민요가락이 아니다. 공간을 헤집으며 널리 울려 퍼지는 관악기의 큰 선율이다. 많이 들어봤던 옛 노래 “삼다도 소식”과 이어지는 관악기 화음이 귓전을 찌른다. 선율의 진원지는 1층 로비이다. 무대도 없이 앞에 현수막 한 장 달랑 달아놓은 초라한 콘서트장이다.

텅 빈 로비에 긴 의자가 놓여지고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간병인들이 관객이다. 제주빅밴드, 가요, 색소폰 동아리 자원봉사단의 사랑 나눔 콘서트였다. 장년남여 20여명의 혼성 앙상블이다. 트럼펫과 색소폰을 연주하고 반주에 맞춰 가요동아리 아마추어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흘러간 옛 노래가 주류지만 가창력이 대단하다.

그들은 애절한 곡, 신나는 곡을 번갈아가며 노래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장구장단에 맞춰 민요와 타령을 메들리로 엮어낸다. 옛 관성에 매인 노인 환자들에겐 단연 압권이다. 쇠잔해진 육신이지만 그래도 흥에 겨워 손뼉을 친다.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에도 짧은 미소가 번진다. 박수소리와 함께 관중의 참여로 이어진다. 입원한 환우가 색소폰 반주에 맞춰 신나게 열창한다. 노래를 썩 잘 부른다. 평소에 술만 마시고 노래만 불렀나 보다. 그 환우는 알코올 중독증으로 치료받고 있단다. 6개월여 금주 중이며 퇴원해서도 금주하겠단다. 젊은 아가씨도 요즘 유행하는 빠른 곡을 신나게 불러댄다. 그 아가씨는 쾌차되어 3~4일내로 퇴원할 예정이란다. 관중의 박수가 쏟아진다.

숱한 희열과 질곡의 역사의 뒤안길에서 박수를 칠 기력조차 없이 멍하게 허공을 주시하는 병자가 되어버린 노인. 이들은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낸 장한 어버이가 아니었던가. 이제 쇠잔해진 그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1시간 남짓한 공연시간에도 간호사와 간병사의 환자 돌봄은 멈추지 않는다.

조촐한 콘서트였지만 그 자리는 뜻 깊은 사랑과 나눔의 시간이었다.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자원봉사자들에게 깊은 찬사를 보낸다. <미디어제주>
  
<문익순 제주의료원 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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