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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소리 들리기에, 독감시늉 냈을 뿐이고~'
'기침소리 들리기에, 독감시늉 냈을 뿐이고~'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9.02.23 17: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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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특별한 공직사회, "우린 명령 없인 안 움직여요!"

요즘 제주특별자치도 각 부서별 언론 브리핑 자료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김태환 제주지사의 '엄명'이 있은 다음부터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 공치사를 하는 경쟁이 그것이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1월이 되면, 각 부서에서는 올해에는 이런 일을 하겠소 하고 서로 올해 추진계획에 대해 거창하게 발표하고 한동안 소란을 떤다. 그 수많은 계획을, 한정된 인원으로 언제 다 할 수 있으려나 의구심도 가져보지만, 그래도 각 부서 공무원들은 해내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철저히 짜여진 일정 속에서, 계획대로 일하는 공무원들이기에 필자 또한 충분히 해내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정작 한발 다가가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들의 일하는 시스템은 그다지 짜임새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많다.

그것도 마치 상관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처럼 보인다.

물론 김 지사의 '지시'나 '엄명'이 가치가 떨어진다거나, 일리가 없는 얘기라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실행할 가치가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엄명'이 떨어져야 움직이거나, '검토 지시' 한마디에 죽는 시늉을 하는 공무원들의 가벼운 처신에 있다.

이는 소신있게 일하는 공직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눈치보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양배추 엄명' 떨어져서야 너도나도 '실적' 홍보하기

실례로 양배추 사주기 운동만 하더라도 그렇다. 지난 10일 김 지사는 간부회의 자리에서 각 부서별 양배추 사주기운동 실적을 보고하라고 했다. 그런데 모 과장은 1억원어치 사서 처리하겠다고 하자, 김 지사는 국장급 간부공무원들에게 "과장도 1억 하겠다는데, 국장들이 이래서야 되나"라며 호대게 질책했다.

여기에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인턴직원들에게는 하루는 양배추 밭에, 또다른 이틀은 감귤밭에 가서 일손돕기를 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그러자 그 날 이후, 이 부서 저 부서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부서에서는 양배추 얼마만큼 구입해서 처리했다는 실적을 알리는 언론 브리핑 자료를 쏟아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거의 대부분의 부서가 이 양배추 구입운동을 하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는 업무를 중단하고 이 일에만 매달렸다. 물론 양배추 농가의 어려운 상황을 볼 때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안이다. 범도민적으로 양배추 사주기 운동을 촉진시키는 분위기 조성 차원에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면에 지나친 '충성경쟁' 내지는 '실적 홍보'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민간단체로 하여금 양배추를 구입하도록 했다고 하더라도 그 실적을 공직 부서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것은 아니다. 민간차원의 자발적인 참여라고 포장하든지, 차라리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면 좋았을텐데...

#김 지사 '기침' 소리에 '독감시늉'격 상여금 반납

두번째, 최근 5급 이상 공무원 508명이 올해분 성과상여금 5억6000만원을 반납하겠다고 결의를 모은 일만 하더라도 그렇다. 어떤 선행에는 그 절차의 선후가 있는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선뜻 선행을 베풀었다면 칭찬받아 당연하다. 그러나 옆구리 질러서 절 받는 격으로 하는 선행은 그 가치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제주특별자치도 간부공무원들의 성과상여금 반납은 좋은 일을 하고도 그에 걸맞는 칭찬을 듣지 못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김 지사가 상여금 반납 검토지시를 내린 것은 지난 13일. 그로부터 정확히 3일만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진해서'라는 말을 강조하며 반납키로 결의했다는 공식 발표를 했다.
 
#'불호령'에 양배추 밭에서 "뒤로 돌아!", "감귤밭 앞으로!"

세번째, 감귤원 2분의 1 간벌도 마찬가지다. 올해산 감귤이 대풍이 예상됨에 따라 올해산 감귤의 감산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데에는 우선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실천이 지나치게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이다.

감귤부서 공무원들을 제외하고는 제주도 본청 다른 부서에서는 사실 2분의 1간벌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 16일 김 지사가 간벌작업 현장에 왜 공무원이 없느냐며 한바탕 호통을 치자, 그 날 이후 거의 대부분의 부서에서 이번에는 '감귤밭'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감귤밭에 다녀온 부서마다 또 그에 대한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우리도 감벌작업 도왔소 하고 홍보하는데에도 열을 올렸다. 만약, 김 지사가 이같은 불호령을 내리지 않았어도 과연 그랬을까.

지난해 1월 제주도당국은 '감귤산업의 대전환'이란 정책을 내놓으면서 앞으로는 생산자와 행정이 할 일을 정확히 구분해 하겠다며 간벌이나 열매솎기 등은 농.감협 등 생산자 단체가 주도가 되어 실시키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정책방향의 전환을 선언한지 1년만에 '역할분담'이란 말은 은근슬쩍 사라졌다.

감귤정책의 메카니즘을 당국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이에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무조건 감귤밭에 나가!"라는 식의 2분의 1간벌에 대한 불호령에 거의 전 부서는 좌불안석이다.

#뻔히 예견됐던 상황, '작전회의' 한번 없다가 왜 지금에서야...

이외에도 일자리 창출 보고 엄명에, 조기발주 재촉까지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연초 발표한 수많은 정책들, 한번은 '조기발주'에 열을 올리다 '양배추'밭에 갔다가, 다시 '감귤밭'으로 정신없이 오가는 공직사회. 공무원들이 하는 일은 실로 많기는 많다.

이러한 동분서주하는 '일거리'가 철저히 짜여진 계획과 틀 속에서 이뤄졌다면 박수를 받고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명'과 '지시'에 따라서만 철저히 움직이고, 또 '늑장 홍보경쟁'을 벌이면서 오히려 볼썽사납게 만들고 있다.

감귤 2분의 1간벌, 양배추 처리난,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예견됐던 상황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작전' 한번 세우지 않고 있다가, 닥쳐서야 부랴부랴 허둥대는 모습들은 즉흥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꼭 이래야 하나. 자발적이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공직사회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윤철수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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