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억울하게 잡혀가 8년동안 죽은사람 됐어요"
"억울하게 잡혀가 8년동안 죽은사람 됐어요"
  • 김두영 기자
  • 승인 2009.02.19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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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광주형무소 수형인 희생의 진상' 도민토론회
광주형무소 생존자 양규석 할아버지 '증언'

"광주형무소에서 살면서 재판을 받았다.
내가 한 일이 아니란 증거가 있으니
다시 조사해 달라고 했지만 그대로 언도가 내려졌다.
너무 억울해서 항소를 하였다."

4.3당시 혹독한 시련은 유독 제주만이 아니었다. 광주에서도 그 끔찍한 광풍의 회오리는 비켜가지 않았다.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공동대표 양동윤)가 19일 4.3당시 광주형무소 수형인들의 생활 진상을 밝히는 의미있는 토론회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4.3도민연대는 이날 오후 2시 제주시 소재 파라다이스회관에서 '4.3 당시 광주형무소 수형인 희생의 진상'이라는 주제로 도민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우선 4.3 당시 광주형무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던 양규석 씨(88)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어 김은희 4.3연구소 상임연구원의 4.3도민연대 광주형무소 희생조사팀의 자체 조사결과에 대한 발표, 그리고 이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억울하게 잡혀가 8년동안 죽은사람 됐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던 생존자인 양규석씨는 그 당시 실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증언했다.

양 씨는 1948년 당시 28살의 3남 1녀를 둔 가장으로, 아버지와 함께 지붕잇기를 하다 찾아온 순경 2명에 의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말한다.

양 씨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계속 사촌동생을 어디에 숨겼냐며 말하라면서 전기로 고문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당시 거의 반 죽었을 정도로 모진 취조를 받았어요. 거의 일주일정도요. (취조 후) 그들은 별 소득이 없자 서귀포 경찰서로 이동시켰는데, 이동 하니까 다시 취조를 시작했어요. 바른말 하라고. 취조를 하는데 뭐에 대해 말하라는 것인지 말해야 알텐데 그것도 없고 그냥 말해라고 했어요."

그는 서귀포경찰서에서 모진 취조를 받은 후 광주형무소로 이송됐다. 그는 결국 1심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광주형무소 이동할 때 배를 타고 갔는데, 갈 때에는 40∼50명 정도 있었어요. 광주에서 1심 심판을 받을때에는 같이 받은 사람 15명이 있었는데, 강철림이라는 사람은 무기징역을 받고, 나는 10년, 나머지 사람들은 15년, 7년 등등 받았어요."

"10년을 선고 받고 억울해서 항소를 해 당시 대구에 있던 고등법원으로 이동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6.25가 발발했어요. 광무형무소 소장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항소를 계속하면 군사재판에 회부돼 즉결심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자 어쩔 수 없이 항소를 포기한 거에요."

양 씨는 이후 8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36세가 돼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소상과 대상, 제사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는 "제주 4.3이 혹독했다고 할지라도 어느정도는 사람으로 대해 줄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소나 돼지를 잡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때리는 것은 너무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광주형무소로 이감된 제주 4.3사건 피고인의 수 131명

이날  발표된 4.3도민연대 광주형무소 희생조사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된 4.3관련 재소자들은 주로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광주지방에서 치러진 4.3관련 재판을 통해 징역형을 언도받은 수형인들로 군법회의 수형인들이 수감됐던 다른 지역의 형무소와는 달리 광주형무소에는 일반재판 수형인들이 수감됐다.

1984년 하반기 제주도로 부터 이관된 제주 4.3사건 관련 피고인은 총 131명이며, 이들에 대한 공판은 1948년 10월 1일부터 1948년 12월 29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광주지방법원에서 속행됐다.

이들 131명에 대한 판결 내용은 사형 1명, 무기징역 5명, 징역 8개월에서 15년까지가 82명, 집행유예 8명, 무죄 19명 등이었다.

김은희 연구원은 "그동안 광주형무소 실상은 철저히 감추어져 왔다"면서 "극심한 피해의식 때문에 이들 유가족들은 아버지와 형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 해 왔다. 사망일도 몰라서 생일날에 제사를 지내며 숨죽이며 살아왔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살아 돌아온 수형인들은 자신들이 왜 죄인으로 선고되었는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면서 "형무소 행불자에게는 '범죄인=빨갱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고, 아예 재판이 열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형량도 형무소에 가서야 들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 조사를 계기로 해 앞으로 전국 형무소 재소자들이 집단 총살된 사례에 대해 더욱 충실한 행형자료의 확보와 정리 분석작업이 역사학적으로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사결과 발표 후 한석지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김종혁 4.3도민연대 운영위원 △현우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의원 △이창수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운영위원장 △온명숙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등이 참여해 광주형무소 진상 규명과 관련해 토론을 벌였다.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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