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오리 다리가 짧다고 이어 줄 수는 없다'
'오리 다리가 짧다고 이어 줄 수는 없다'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9.02.16 09:1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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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논단] 공무원 상여금 삭감 검토와 '학경불가단(鶴脛不可斷)'

장자(莊子)의 우화 중에는 '학경불가단(鶴脛不可斷)'란 얘기가 나온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는 뜻으로, 자연의 이치나 도리에 어긋난 일을 억지로 행하지 말라는 말이다.

"천하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태어날 때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하나 더 붙어있다고 해서 그를 변무(騈拇)라고 여기지 않고,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있다고 해서 그를 지지(枝指)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여기지 않으며, 짧다고 해서 모자라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그것을 이어 길게하면 괴로워한다. 학의 다리는 비록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버리면 슬퍼한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긴 것은 잘라서는 안되며 본래부터 짧은 것은 이어길게 해서는 안된다.

사물에는 각자 자연히 갖추어진 개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순리대로 행해지고 있는 메커니즘을 억지로 바꾸어 놓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도 포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요즘 경제한파에 고용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김태환 제주지사가 잡세어링(Jab sharing), 즉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공무원들의 상여금 삭감을 제안해 공직사회 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지사의 이번 제안은 지난 13일 열린 '비상경제 윌례보고회'에서 이뤄졌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각 부서별 비상대책 추진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김 지사는 공무원들의 상여금을 줄여서 일자리를 더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물론 '검토하라'는 의미지, 곧바로 시행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1년에 한번 지급되는 공무원에 대한 성과상여금의 일정 금액을 일자리 창출 비용으로 쓰는 방안을 자율적으로 논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제언' 성격으로 이 얘기는 전해졌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이 회의결과 내용이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후, 한숨을 내쉰다. 올해 공무원 임금이 동결되다시피 한데다 사실상 임금 감축으로 이어지는 성과상여금 반납까지 이뤄진다면 이를 반가히 여길 공무원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검토' 혹은 '제언'이란 명목으로 이 얘기는 시달됐다. 그러나 공직사회에서 윗사람의 이러한 '검토시달'은 "꼭 해봐라"는 명령에 다름없다. 물론 제주도 관계자는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 자율적으로 검토해 보라는 지시였다"고 해명했다.

이날 도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졌다. "가뜩이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성과급까지 떼어내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냐"며 "차라리 도지사의 업무추진비부터 먼저 줄이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의회의 이런 시각은 김 지사의 제안을 "검토해봐라"는 성격이 아니라, '명령'에 다름없음을 직감하기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학경불가단'을 얘기하면서 이 사례를 끄집어낸 것은, '일자리 나누기'가 순리를 거스르는 억지라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상여금 감축 검토 지시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설령 김 지사의 이러한 아이디어가 옳다고 하더라도,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라의 어려운 사정을, 지금의 경제난국을, 최대 고용위기를 맞고 있는 현 상황을 밑에 직원들이 먼저 몸소 깨닫고 행해지는 것과, '윗사람의 지시'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그 의미 자체가 크게 다른 것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회복지시설을 위문하는 일에서 부터, 어려운 농가를 돕기 위해 양배추를 사고, 때로는 감귤을 대신 팔아주고 하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 전제돼야 한다. 자발적이고, 자율적이지 못한다면 그 의미와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고용시장이 어렵다고 한다면,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우선 해야 할 일이다. 일시적 미봉책으로 공무원들로 하여금 억지로 상여금을 내놓으라고 한 후, 그것을 갖고 일자리 몇개를 더 만든다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상여금을 자발적으로 삭감하자는 의견이 모아진다면, 그 돈을 일자리 몇개를 더 만드는 일시적 고용창출에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필자는 반대한다. 보다 의미있는 곳에 쓰여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김 지사의 '상여금 삭감' 제안을 바라보면서, 왜 '학경불가단'이란 말이 불쑥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윤철수 대표기자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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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속에 내용있다 2009-02-17 09:13:44
점수따기 눈치보기 찬송가를 부르는 형식속에 도민에 대한 사랑이 있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자는 고뇌가 있고 의지가 있고 고통을 분담하는 긍휼이 있는 것이다 뭣이든 삐딱하게 보려면 한없이 삐딱하게만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삐딱한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이번 기회에 동참하기 바란다

아장 2009-02-17 09:03:25
DDD

뿐이고 2009-02-17 08:59:26
김지사는 그저 점수따기 그랬을 뿐이구
간부님들은 지사님 눈치보기에 하고 싶지 않아도 그대로 따랐을 뿐이고.
님들은 그저 찬송가를 부를 뿐이고.

쑈라도 해야한다 2009-02-16 21:53:08
고통분담에 대한 고뇌에 찬 결단입니다 오리다리 짧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합당한 말이 아닙니다 더 공부하셔야 할 듯~

차라리 쇼를 하시죠 2009-02-16 15:46:45
오리다리 짧다고 이어주면 오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이어주도록 다리를 잘라준 사람도 아프겠죠.
억지로 쇼를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