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아열대농업연구소, 석주명 기념관으로 활용해야"
"아열대농업연구소, 석주명 기념관으로 활용해야"
  • 박소정 기자
  • 승인 2008.12.21 0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주명선생 탄생 100주념 기념세미나 열려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의 연구 활동의 거점이었던 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제주대학교 아열대 농업연구소'를 보존하고 이를 기념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석주명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 20일 오후 1시 30분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나비, 그리고 아름다운 비행-석주명선생과 제주와의 아름다운 만남'라는 주제로 석주명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는 현용준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의 석주명 선생에 대한 강연을 시작으로 이영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석주명과 에스페란토 정신’,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의 ‘석주명 선생 활동의 기반이었던 아열대농업연구소의 보존과 활용의 필요성’, 강영봉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석주명의 제주어와 몽골어’, 최낙진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교수의 ‘석주명의 제주도총서’의 출판학적 의미‘ 등 4가지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이어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강만생 한라일보 사장이 좌장을 맡고, 허남춘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윤치형 대전대학교 응용산업대학장, 조향숙 에스페란토어 제주지부장, 한림화 소설가, 정태근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정책과장 등 5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석주명 선생 활동의 기반이었던 아열대농업연구소의 보존과 활용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석주명 선생이 제주에서 활동했던 장소와 건축물 등은 분명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보존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아열대 농업연구소를 보존해 석주명 선생의 기념관으로서의 활용방안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같이 주장하면서 "아열대 농업연구소의 건축물은 일제시대의 건축된 구조물로, 비록 수년전에 건축물 전체를 개보수해 약간의 변형이 있어으리라 생각되지만, 당시 공공건축물에서 요구됐던 권위와 위엄 등이 정돈되 느낌이 강조됐던 양식"이라며 "특히, 건축물 뒤쪽에 계획된 온실은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는 것으로 판단돼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단기적으로는 아열대농업연구소의 건축물이 철거되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한 제주대학교와의 협의과정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국내외적으로 석주명 선생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해 학문적 평가를 받음과 아울러 활동무대였던 아열대 농업연구소의 건축물을 문화재로 지정하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낙진 교수 "석주명 선생의 연구방법 등에 대한 연구 이뤄져야"

최낙진 교수는 '석주명의 제주도총서의 출판학적 의미'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6권으로 구성된 석주명 선생의 제주도 총서를 출판학적 의미로 분석하면서 석주명 선생의 학문관과 연구방법 등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석주명 선생은 2년 1개월의 제주 체류기간 동안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 언어, 민속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해 6권으로 구성된 ‘제주도 총서’를 출판하게 됐다"며 "한 개인 연구자에 의해 자연과학,인문과학,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해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수집해 직접 분류 및 정리를 해 총서를 기획하고 출판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며 석주명 선생의 연구방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밖에도 그는 "제주도 총서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모든 학문을 종합한 통합학문으로서의 ‘제주도학’의 설계도이며, 나비분류학에서 통달한 연구방법론으로 제주도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당시 사회를 아우르고 이해하고 밝혀내는 등 통합학문적 접근을 확장해 놓았다"며 "또, 제주도학 연구를 위해 기본 원재료, 이용의 편의성을 크게 확장해 놓은 재료임은 물론 제주도학의 전제이기도 했으며 자극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석주명 선생은 1908년 11월 3일 평양출신으로 나비박사와 제주도 연구, 에스페란토어 보급자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그는 1943년 4월 경성제대(현 서울대) 부속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 책임자로 부임하면서부터 제주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부임후 그는 1945년 5월까지 제주도에 근무하는 동안 제주도 지역 나비연구와 더불어 제주도의 역사와 자연, 언어, 민속학 등 제주도 전 분야에 대해 자료를 수집해 분류했다.<미디어제주>

<박소정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