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논단>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주는 교훈
<데스크논단>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주는 교훈
  • 윤철수 기자
  • 승인 2004.12.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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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한국사회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선정

다사다난 했던 갑신년(甲申年)의 장정도 세밑 끝으로 다다르고 있다.

교수신문이 우리나라 대학교수 16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많은 19.8%가 올해 한국 사회를 정리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꼽았다고 한다.

대통령 탄핵,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 파행 등 어느 해보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심했던 한해를 의미있게 함축한 이 당동벌이는 후한(後漢)의 역사를 다룬 ‘후한서’의 ‘당고열전(黨錮列傳)’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뜻이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

그 의미가 주는 느낌은 그다지 좋지 않다. 부정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된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사자성어는 옳고 그름의 여하 간에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을 무조건 배격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말의 유래는 대충 이렇다.
후한 때에는 화제(和帝) 이후 역대 황제가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다. 그래서 황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황태후의 친인척인 외척들이 실권을 잡게 되는게 다반사였다.

그러나 후일 장성한 황제는 섭정당시 그들이 보인 전횡을 탐탁치 않게 여겨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우고 그들을 제거해 나가는데, 그 중심이 된 세력이 바로 환관이었다.

환관들은 집단의 결속력이 유달리 강하고, 사회적 책임이나 정치적 경륜보다는 자신들의 이해에 민감했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을 쥐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었다.
이에 유교적 교양을 쌓은 예비 관료 집단인 선비들이 환관의 농단으로 국정이 문란하고 풍속이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만 하고 있을 리 없었다.

이들도 명망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모여 전국적으로 방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비 집단과 외척, 환관 세력이 서로 한치 양보없는 세력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하는 일은 불보듯 뻔하였다.

후한 말에 이르러 환관들은 외척과 선비 집단을 철저히 탄압하고, 그 결과로 지식인 관료 집단인 선비 집단이 황실을 버림으로써 후한이 자멸하게 됐다.
당동벌이는 바로 이 환관과 선비집단 간의 싸움을 빚댄 성어이다.

이 당동벌이가 갑신년인 올해 우리 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뽑힌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아마도 연초부터 세밑까지 정치권이 정파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것은 선정의 가장 큰 배경이 된 듯 하다.

사실 3월에 불거진 대통령 탄핵문제,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안.언론관계법.사립학교법 개정안.과거사규명법 등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서 ‘당동벌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즉, 당리당략만을 추구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나 합리적인 대화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2004년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대변된다.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는 또 연내 계속된 정쟁과 함께 한 없이 추락하는 경제, 이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을 빗댄 ‘지리멸렬(支離滅裂)’을 두 번째 사자성어로 꼽았다.

2004 한국사회를 결산하는 단어가 ‘당동벌이’라면 제주사회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연초 제11대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불법선거 적발, 4월 있었던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의 선거법위반에 따른 지사직 중도하차, 제주지역 경제의 지속적인 침체 등이 갑신년 제주사회의 주요사안이었다.

특히 올해 여러 가지 선거가 치러지면서 ‘당동벌이’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갑신년을 지나보내는 세밑에서 다사다난한 일들은 모두 날려보내고, 을유년(乙酉年)인 2005년에는 더 이상 ‘당동벌이’라는 사자성어가 우리사회를 표현하는 대표적 단어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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