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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이겨야 '장땡'?...'섯다'와 정치
무조건 이겨야 '장땡'?...'섯다'와 정치
  • 송창권
  • 승인 2008.08.05 15: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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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송창권 사단법인 자치분권연구소 상임이사

어렸을 적에, 화투놀이 중 하나인 소위 '섯다'를 해 봤던 기억이 있다. 섯다를 즐기는 사람들은 곧잘 "잘만 하면, 무대뽀로 뭉 쓰다보면, 그리하여 어쩌다 보면, 약자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는 '패자 부활전'과 '반전의 묘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소위 '놀음'이라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놀이'로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전혀 동의 할 수가 없었다. 배포가 작고 가진 빽이 없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뭔가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기기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섯다는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매우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는 놀음이다.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마주한 얼굴에게는 짐짓 알듯 모를 듯 이상야릇한 얼굴을 해야 한다. 천의 얼굴을 가져야 하거나 아예 철면피가 되어야 한다. 타고난 성우들인 양, 목소리로도 위장 전술을 써야 한다. 이러한 고난도의 심리전(?)을 펼쳐야하는 놀이가 대부분이라 할지라도, '섯다'만큼 속 다르고 겉 다른 '놀이 또는 놀음'은 없다.
 
바야흐로 나름의 책을 좀 읽고 머리가 커지면서 국가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곤 원칙과 상식이 흔들리는 데에 있어서 ‘섯다’보다도 덜 하다면 서러운 곳이 또하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른바 '정치판'이다. 언필칭 정치라 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모두가 동의한 '터와 기준'을 가지고, 개개인이라면 못하는 것들을 좀 더 민주적이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 보고자 ‘편’을 만들고, 또 그것을 실제 펼쳐보고자 노력하는 과정으로 이야기 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치가 요즘에는 어찌 된 일인지, 최고로 높은 장땡을 잡아도 그 판을 이기지 못하는 섯다판과 판박이가 되었다. 최고로 좋은 패인 장땡을 잡으면 이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복마전 같은 머리에서 온갖 작전을 세워서 결국 ‘이기는 것이 장땡’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섯다에서는 이긴 사람이 판에 널려진 돈을 모두 쓸어 간다. 음흉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점점 무너지는 구렁텅이로 빠져들어 가길 유도했던 자신의 속임수에 흡족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널려진 전리품을 자신만만하게 끌어안아 간다. 말이 필요 없다. 아쉽다거나 허탈해 할 여유조차도 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승자독식이다.
 
현재 국정과 제주도정의 모습이 이와 다를 게 없다. 정치는 없고 행정만 있다. 토론과 타협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상징인 의회도 없고, 지방정당도 보이질 않는다. 집행기관인 도청만 보이고, 김태환 지사만 보인다. 혹 정치가 있다손 친다면, 꼭 ‘섯다판’ 같은 정치만 있다.

지금 지난 10년 집권을 경험한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제주도의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주류들은 “해도 너무한다. 정치가 제대로 안 되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리라 본다. 승자가 모든 것을 주무르듯 하는 국정과 도정의 모습에서 ‘섯다 한 판’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많은 현안들, 특히 해군기지 철회문제, 영리법인병원 문제, 영리법인교육기관 문제, 내국인카지노 문제, 한라산 케이블카 문제 등은 제주도의 기반을 흔드는 정치적 철학과 인생의 가치관이 담겨 있는 문제들이다. 철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고, ‘명실상부한 정치’가 필요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몰아붙이기, 막무가내, 안하무인, 독선과 독단, 뒤집어 엎기, 승자독식, 앞뒤와 겉속이 다름, 행정제일주의, 경쟁과 효율 등만이 편만해 있다. 그래서는 결국 ‘섯다판’만 떠오르게 될 뿐이다.

'이기는 놈이 장땡'인 한국과 제주정치문화는 넘어서야만 할 산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섯다’를 멀리하는 것처럼, ‘정치’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되고, 단지 그것을 피해야만 할 대상으로 삼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나라와 제주도는 ‘섯다’를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만 남아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송창권 사단법인 자치분권연구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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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성 2008-08-05 17:41:03
멋진 김태환도지사의 도정을 기대했었는데, 요즘은 정말 너무 너무 실망입니다.
경험할 수록 더욱 세련되고 철학이 있는 도정운영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