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8 17:49 (목)
<시민기자>여름과 가을, 그 갈림길에 서다
<시민기자>여름과 가을, 그 갈림길에 서다
  • 홍성규 시민기자
  • 승인 2005.08.28 11:0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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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큰비가 내린 뒤 여름이 저만치 비켜서고 있습니다.

뙤약볕 아래 달콤한 휴식의 그늘을 드리웠던 나무에 매달려 그토록 목놓아 부르던 매미들의 열창은 어느새 무성해진 풀숲 벌레들의 울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한여름 뜨겁게 달궜던 해변의 모래밭에도, 올해에는 한두 차례 있게 마련인 태풍 대신 해파리 떼가 한 계절 장사해서 먹고 사는 이들의 속을 태웠지만, 그럼에도 정념으로 들끓던 북적거림의 기억 뒤란으로 서서히 평온함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이를 지난 26일 서귀포 중문 해수욕장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여름의 끝자락 정취는 정겨움과 한적함 그 자체였습니다.

정겨움은 서귀포시 하원동 천사어린이집 원생들에게서 보았습니다.
“준비, 땅!” 선생님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힘차게 내달립니다. 그러나 모래 위로 달리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마다 지지 않으려 이를 물고 달리는데, 결국 한 남자 아이가 넘어지고 맙니다.

바다는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서로 손을 잡고 바다를 향해 올망졸망 서서 물에 발을 담급니다. 그러다 저편에서 파도가 흰 거품을 물고 달려들면 이내 꽁무니를 빼고 줄행랑을 칩니다. 그렇게 하기를 몇 차례. 이날 하루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바다 구경이 쉽지 않은 서울의 아이들에게도 바다와 모래는 추억입니다. 마침 그곳에서 엄마 아빠와 온 어린 자매는 모래성 쌓기에 한창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한없이 해맑습니다.

미국에서 온 외국인들은 카메라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스스로 “USA”를 외치더니 연신 환호와 웃음을 쏟아냅니다.

한쪽에선 두 여인이 해변에 누워 못 다한 여름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냅니다.

‘2005 제주 국제아이언맨대회’ 수영 경기를 앞둔 이곳에서 막바지 적응훈련을 위해 몸을 풀고 있는 일본인 선수들도 만났습니다. 완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바다를 가르며 하얀 물결을 일으키는 보트는 여전히 시원스럽기만 합니다. 바로 뒤를 잇는 바나나보트 위 사람들은 여름을 좀더 붙잡아 두려는 듯 스릴과 함성으로 아쉬움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중문 해수욕장의 여름 해는 수많은 사연을 뒤로한 채 그렇게 짧아지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이제 짧은 삶의 기로에 서 있는 벌레들에게 그렇듯, 여름의 끝과 가을의 문턱, 그 갈림길이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잠자리의 비상을 쫓다 들어선 천년의 고찰 법화사. 이곳의 구품연지에서 서로 연결된 채 알을 낳고 있는 왕잠자리 한 쌍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치곤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그곳이 비단 사찰의 연못이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산란 중인 암컷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그 종족 번식의 의무를 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수컷의 사랑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습니다.

3억 년 동안 생명을 지켜온 그 곤충에게서 느낄 수 있는 신비함. 그 깊이를 헤아리기란 저로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알들은 이곳 연못 밑에서 부화돼 자라다 내년 이맘때 청명한 하늘을 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갖고 싶지만 쉽게 가질 수 없었던, 꿈같은 유년의 추억을 안기는 주인공이 돼 있을 것입니다.

가을이 그리움의 계절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인가 봅니다.
이럴 때,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의 여울목에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파란 하늘과 푸른 들녘 보기를 권합니다.

이제 성큼 다가올 가을에는 모두가 지금보다 좀더 행복했으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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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하루 2005-08-28 15:20:16
홍성규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인 2005-08-28 13:38:03
미됴제주 사진은 홍성규님이 아도했군요.
신문에 대한 열정 여전하신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