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소식이 알려진 17일, 당시 미국 순방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박수를 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부분에 대해 청와대 측은 "쇠고기 협상이 타결돼 박수를 친 것이 아니라 한미FTA 타결 가능성이 한층 높아져 박수를 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일본 방문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대해서도 피력했다. 뭔가 '묵직한 변명'이라도, 대통령으로서 어쩔 수 없었다며 함께 마음 아파하는 발언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발언요지는 그러한 예상을 가차없이 깼다. 우리 국민도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얘기는 미국 쇠고기 개방의 1차적 목적이 우리 국민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 말로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국 순방 중 행한 미국 쇠고기 개방과 관련한 일련의 행보가 왜 우리 정서와는 거리감이 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타결소식에 '박수를 쳤다'는 부분이나, '국민들에게 값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라는 말은 축산농가의 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축산농가가 지난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이것만은 안된다며 울부짖으며 막아왔던 것을 한순간에 탁 내어놓고, 내줄 것 다 내어준 다음 마치 대단한 '협상 결과'를 자랑스레 하는 '실용정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소식에 이 대통령은 '박수'와 질 좋은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쁘게 반응했지만, 국민적 분위기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영세한 제주지역의 경우 축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제주에서 1000여 농가에서 사육하는 한우와 비육우는 2만5000여 마리로 한 해 총수입은 832억 원 규모다.
한우 고급육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방에 비해 높은 생산비와 물류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사료값이 30% 이상 치솟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은 제주 축산업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크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제주도내 소 사육 농가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의 말씀처럼 한우의 1/4, 호주산의 1/2 가격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온 국민이 기뻐할까. 제주에서만 보더라도 비슷한 가격대인 돼지 삼겹살 소비가 줄어 양돈산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온 국민의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 소비여건 마련을 위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으면서 정작 축산농가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수입쇠고기의 국산둔갑 단속을 강화하고, 한우 마리당 10-20만원의 품질장려금 지원 등이 고작이다.
제주자치도라고 해서 뾰족한 대책도 없다. 말로는 제주한우산업의 경쟁력 확보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흑우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과 농어촌진흥기금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불을 보듯 뻔한 위기의 상황에서, 정작 협상의 주역들은 웃음을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비자들은 '식탁의 안전성'을 두려워 하는데, 정부는 '값싸고 질좋은'이라는 해괴한 소비만족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 대통령이 내세운 쇠고기 개방 정당성은 국민들을 설득시키기에 아무래도 역부족인듯 하다. 앞으로 '값싸고 질좋은 미국 쇠고기가' 들어온 가운데, 국민들이 이의 불매운동이라도 펼쳐지기라도 한다면 이번엔 '반미주의자'로 몰아설 작정인가.
국민들이 언제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가 먹고 싶다고 울부짖었나. <미디어제주>
<윤철수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