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17:37 (목)
나도 그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나도 그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 고영철
  • 승인 2008.03.26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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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영철 제주대 교수
‘메이드 인 제주(Made in Jeju) 86번가’

당신은 제주시 중심가에 있는 ‘86번가(?)’를 걸어본 적이 있는가? ‘86번가’는 제주도에서만 생산되는 ‘메이드 인 제주’(Made in Jeju)라고 딱지불은 86개 명품만 파는 거리의 이름이다. 동서쪽 양편 입구에 세워져 있는 상가 안내판에 따르면 도로의 폭은 약16m이고, 길이는 1.5마일 정도가 된다.

차량은 일방통행이다. 이곳에는 오직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와 택시만 들고 날수 있다. 전농로 KT앞처럼 인도까지 올라와 불법 주차하는 차량들 때문에 짜증 낼 필요가 없다.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해서는 이유막론하고 30만원짜리 티켓이 날아간다. 모든 상가의 주인이 교통감시자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는 보행자의 천국이다. 걷는 사람이 많아야 상권이 산다.

도로의 폭이 짧은 관계로 반대쪽 상가에는 무엇을 팔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그래서 눈길 가는 데로 양쪽으로 왔다갔다하며 ‘86번가’를 걷다보면 3-4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가 버린다. 특히 5개 가스램프가 달린 수십 개 가로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 거리도 취하고 나그네도 취하고 ‘86번가’도 취하고 만다. 술 안마시고도 취하는 거리 그게 ‘86번가’이다. 쿵푸반점 맞은편 7080음악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조미료 같은 이국의 노래들은 우리를 낯설게 만들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든다.

이곳에는 특별 제주도가 지난 10년간 850억여원을 투자해 만든 재래시장에서는 보고 만지고 맛 불 수 없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이곳에는 재래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두 가지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백화점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박물관 얼굴이다. 백화점은 재미를 팔고 박물관은 감동을 판다.

그래서 ‘86번가’에는 산의 것, 바다의 것, 땅의 것 없는 게 없다. 신(神)마져 외면한 제주의 1만8천개 귀신 상에서부터 제주산 삼나무로 만든 각종 목재 기념품을 파는 목공예점, 선인장과 각종 해초류 가공품만 파는 귀덕 동카룸 가게, 꿩 엿과 유자 꿀 전문점, 현무암 기념품점, 보리 짚이나 정동 줄로 엮어 만든 수제품 전문 판매점, 물 허벅과 초가집만 파는 명물사, 감귤 랜드, 고사리와 버섯만 파는 한라물산, 녹고물 다원, 구쟁기와 전복 껍질로 만든 액세서리들만 파는 사랑의 간이역, 고소리ㆍ오메기 술 등 제주산 주류만 파는 명월주점, 고구마 제품만 파는 짱구왕국, 향수와 화장품만 파는 가꾸라 쇼핑센터, 조천 보리 빵집, 오가피와 오미자 등 건강보조품만 파는 리타이어(Retire)센터, 제주 청자백자 전시장, 제주화백들의 그림만 파는 요배 화방, 무공해 콩 제품만 파는 아침사랑, 제주사계 칠보화랑, 용암석 액세서리 전시장, 엉알 바당물 군 소금 집 등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관광 기념품 가게들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는 흑 돼지 바비큐 타운, 일식 레스토랑-사꾸라, 1만원 칵테일 바, 토속음식만 파는 갱스타 동굴, 토종 미숫가루만 파는 닥그네 할망집, 젓갈류 파는 5분대기 고려수산, 골막 국수, 갈옷 등 갈천 제품만 파는 갈패션, 제주101옆서(이 명칭은 등록된 상표임) 등에 이르기까지 86개의 제주산 명품들이 여기에 모여서 산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골목길에 한국의 문화가 모여 살듯이 우리 제주에도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1.5마일의 ‘제주 86번가’가 있다. 시애틀의 파이크 마켓, 샌프란시스코의 피어(pier) 39, LA의 베니스 해변, 샌디에이고의 가스램프 스트리트,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오키나와의 기적의 거리, 캐나다 퀘백의 페티 챔플린(Petit-Champlain), 밴쿠버의 가스 램프 타운 같은 명소가 있듯이 제주에도 ‘86번가’가 있다.

당신들도 한번 걸어보라, 한편의 잘 짜인 영화 세트장 같은 86번가를. 김지사께서는 내국인 관광객 카지노, 쇼핑아울렛 어쩌고저쩌고 운운하기 전에 ‘제주86번가’부터 한번 멋지게 만들어 보시라. 이게 진짜 제주경제와 관광을 동시에 살리는 길이다. 한국의 명소 ‘제주86번가’의 탄생여부는 도지사의 능력과 결단에 달려있다. 자연말고 “볼거리 살거리 없다”는 제주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제주문화의 전시장- 관광전문상가- 조성이 시급하다.

 명소하나 없는 도시는 훌륭한 관광도시가 아니다. 공공공간 프로젝트의 프레드 켄트 회장의 말을 빌리면 훌륭한 도시에는 적어도 10개의 명소가 있어야 한다. <미디어제주>

<고영철 언론개혁제주포럼 공동대표(제주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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