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남 도움 싫다. 그래도 어쩌냐, 형편이 이런걸..."
"남 도움 싫다. 그래도 어쩌냐, 형편이 이런걸..."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5.07.19 17:01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는이야기]북제주자활후견기관의 고두오씨 집 '러브하우스' 단장

"남에게 도움받기 싫다. 그래도 어쩌냐, 형편이 이런걸..."

"몇년전에도 정부에서 지원을 받았었다. 한번 봐봐라. 문짝이 다 떨어질 것처럼 버티고 있지 않느냐"

푸념섞인 고두오(59)씨의 한마디에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묻어난다.

19일 오전부터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고두오씨의 집에는 북제주자활후견기관(기관장 오근수)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아침 10시부터 사람들이 북적북적 음료수를 따르고 수박을 자르느라 분주했다.

이날은 자활후견기관에서 고두오씨의 집을 보수해주는 날이다. 처음에 공사를 해주겠다고 했을 때 고두오씨는 미심쩍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예전처럼 보여주기식으로 집을 망쳐놓을까봐.

그래서 고두오씨는 사람들이 분주한 틈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자신의 부족한 살림살이를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니 가슴이 아릴 수밖에.

이날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는 그야말로 가만 서 있어도 땀으로 샤워가 되는 장난 아니게 더운 날이었다.

그래도 그의 집앞은 제주도에서 보기 힘든 배나무와 사과나무가 가득했다. 9월이나 돼야 따먹을 수 있다니 아쉬웠지만 탱탱하게 익어가고 있는 과일들을 보고만 있어도 시원할만큼 풍성했다.

이날 공사는 고두오씨 집 '욕실만들기'가 진행됐다. 그동안 고두오씨의 가족들은 밖에서 몸을 씻어야 했다. 옆집에서 가끔씩 돌담사이로 목욕장면을 쳐다본다니 얼마나 불편하게 몸을 씻었는지 실감이 갔다. 

이날 직접 보수공사를 하는 사람들도 자활후견기관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고두오씨처럼 혜택을 받은 사람이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의 사람들이다.

일반 기술자들보다 서툴게 공사를 해내지만 스스로 자립하기 전까지 이 기관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사람은 알콜중독으로 고생을 했던 분이다. 하지만 갈수록 웃음을 되찾아가는 듯 건강해 보였다.

자활후견기관사람들은 집을 보수해 주는 것보다 이러한 또 다른 기쁨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이 기관은 3여년동안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많은 후원을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들은 땡볕밑에서 땀범벅이 된채 공사를 진행했다. 다른사람의 집을 보수하며 자신의 맘까지 깨끗하게 바꿔나간다고나 할까.

자활후견기관 사람들은 이날 고두오씨 집를 시작으로 올 한해 100가구의 집을 보수해 나가기로 했다. 작년에 생긴 이 기관은 지금까지 40가구를 보수해줬다.

작년엔 추자도까지 직접 건축자재를 가져가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말끔히 집을 보수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올해에는 우도로 갈 계획이라며 "제발 태풍만 불지 않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자활후견기관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고두오씨를 챙겼다. 음료와 김밥을 건내고 시원한 수박도 가져다 줬다.

이날 진행된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고두오씨 집은 자활후견기관 덕분에 남의 눈치 안보며 몸을 씼을수 있는 욕실이 생기게 됐다.

물론 욕실이 생겨도 고두오씨 집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보일러가 없어 겨울내내 전기난로를 이용해야 하고 몇 해전 정부차원에서 공사해 준 문짝도 파란 테이프로 붙여 진 상태다.
 

오근수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장은 "정부에서 1억원을 집 보수공사로 지원받는다"며 "공사는 1인 가구당 150만원이내로 진행되며 그중 자재비가 80%이상을 차지하고 그 외는 민간지원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고 말한다.

그는 오는 9월, 고두오씨 집에 다른해보다 더욱 풍성한 과실이 영글길 기대했다. 그래서 고두오씨가 몸이 아픈 아내에게 맛있는 사과를 따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피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2005-07-20 11:08:37
제발 보여주기식이 아니었으면..

한라봉 2005-07-20 08:35:37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에 깊은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요즘 온통 짜증나고 김새는 기사가 판치는 방송과 신문기사들 속에 얼음물같이 시원한 기사를 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이래서 제주도, 제주사람 아닙니까..

'미디어제주' 기자님
이런 흐뭇한 기사 좀 많이 찾아서 올려 주세요.

나도 지원필요 2005-07-19 18:43:19
집수리해주는 기준은 무엇이고,
완전히 단장 새로 해주나.
아는 사람있으면 답변 좀...

^0^~~~ 2005-07-19 18:42:01
이런것보고 사는이야기다 하는거지요.
맞지요??

음~~음 2005-07-19 18:41:15
소재는 별것 아닌데, 글을 참 감미롭게 풀어서 썼군요.
수필인지, 기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동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