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8:27 (화)
아버지 재판을 바라보며
아버지 재판을 바라보며
  • 신용인
  • 승인 2008.03.03 0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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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용인 前 부산지방법원 판사

저는 판사로 재직 중 법원 내부통신망에 아버지 재판의 부당성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판사로서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아버지 사건은 2008년 2월 28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이 선고됨으로써 유죄로 확정되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죄인으로 낙인찍힌 채 옥살이를 해야 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시금 아버지 사건을 거론하고자 하는 이유는 법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가 생활하다 보니 법대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과 법대 아래서 경험하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저는 아버지 사건에 대한 재판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잘못된 재판을 받고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슴 아프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버지처럼 억울한 사람이 적지 않게 생겨나는 현실을 바꾸는데 보탬이 되고자 아버지 재판의 문제점을 다시 지적해 봅니다.

아버지는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축협중앙회의 회장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100대 개혁과제 중의 하나인 농ㆍ축협통합을 반대하는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버지를 배임ㆍ명예훼손ㆍ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고, 검찰은 아버지에게 부패정치인이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써 정치보복이라는 여론에 물타기를 하고자 뇌물수수 부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검찰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아버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기각 당하자 미국에 거주하는 H를 몰래 귀국시켜 아버지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낸 다음 아버지를 기소하였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뇌물을 주었다는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런데 H는 아버지가 재판을 받는 내내 미국에 거주하면서 법정에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특별히’ 믿을만한 상태에서 작성되었다고 인정될 때에 한하여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믿을만한 상태란 허위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따라서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가 허위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라면 예외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있지만, 허위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원칙으로 돌아가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가 없고, 만일 유죄의 증거로 삼으면 위법한 판결이 됩니다.
 
아버지의 변호인은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는 100억 원 조세포탈 및 횡령을 무혐의로 처리해 주는 대가로 허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항소심인 고등법원은 그 주장을 배척하면서 유죄판결을 하였습니다. 상고심인 대법원 역시 그 주장을 배척하고 유죄 인정의 취지로 판시하면서 사건 전부를 고등법원으로 보내 다시 재판하게 하였습니다.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다시 시작되자 H는 뇌물을 주었다는 이전의 검사진술조서는 허위라는 내용의 본인 진술서를 작성하여 미국 영사의 인증을 받은 후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또한 검찰에 의해 뇌물 전달자로 지목된 H의 비서실장은 증인으로 나와 H가 뇌물로 준 바 없다고 증언을 하였습니다. 나아가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 내용 중에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와도 모순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 외에도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가 허위라는 점을 밝혀줄 여러 증거들이 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법원 재판부는 그 검사진술조서를 유죄의 증거로 삼아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① 100억 원 조세포탈 및 횡령을 무혐의로 처리하는 대가로 한 허위의 진술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② 말한 자 본인 스스로가 허위라고 인정하며, ③ 증인도 거짓이라 증언하고 ④ 공신력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와도 모순되는 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허위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도대체 허위일 가능성이 있는 경우란 어떤 경우인가요?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H에 대한 검사진술조서는 허위이거나 최소한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등법원 재판부는 허위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여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재판을 누가 납득하겠습니까?

아버지는 처음에는 더 이상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상고를 포기하려고 하였으나 판사인 아들의 입장을 생각하여 상고를 하였습니다. 상고이유서는 제가 직접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결할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ㆍ무죄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한 채 이미 대법원에서 한번 유죄로 판단한 이상 이를 번복할 수는 없는 일이고 설사 그 후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의미가 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판시하면서 상고기각판결을 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을 접하면서 형식논리로 재판을 하였다는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유ㆍ무죄 여부를 가렸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같이 하지 않은 이유는 무죄판결을 선고했을 때 생겨날 사회적 파장을 염려하여 아예 유ㆍ무죄 판단을 회피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버지는 억울하지만 별 수 없이 차가운 감옥에서 2년 넘게 지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아버지처럼 억울한 사람이 나오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는 재판이라 오판을 피할 수가 없다면 적어도 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경우처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하면 검찰이 더 이상 항소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형사법의 법언이기 때문입니다.

<신용인 前 부산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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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장군 2008-03-04 11:46:53
사법부를 못믿어서야 되겠어요 당신도 판사직를 했었잔아요
당신도 판사직을 했던 사람이 사법부를 믿지 못하면 사법부 전체가 다 썩었다는 것입니까
당신은 판사 재직 시절 공정한 판단을 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구속자체는 마음 아프지만 재판부는 정단한 판결을 했다고 봅니다.
더 이상 여기저기 언론프레이 그만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