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칼럼>국경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
<미디어칼럼>국경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
  • 미디어제주
  • 승인 2005.07.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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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자 어느 중앙일간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6.25가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적은 기사를 접했다.

요즘 학생들이 공휴일의 개념을 잘 알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3.1절, 현충일 제헌절 등 무슨 날 인지 물어보면 현충일과 개천절 등 서로 헷갈리면서 별 관심이 없어한다.

단지 휴일이란 즐거움이 클 뿐이다. 곧 광복절이 다가온다. 광복절은 4대국경일의 하나이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올해 60년이 되었다. 1910년 일제의 강점은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35년간의 생활은 너무도 굴욕적이고 비참하였다.

우리의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강제노동과 강제징병, 징용에 시달리며 우리의 역사, 언어, 문자사용까지도 탄압을 당하였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강제로 창씨계명을 하였고, 전쟁물자와 식량의 공급을 위한 각종 약탈을 감행하여 괴롭혔다. 그 후 민족의 자존과 번영을 찾으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3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후 60년간 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 되어 온 것이다. 제주도 역시 일제 강점으로부터 수난은 예외가 아니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천혜의 요새가 되어야만 했던 제주, 제주 사람들의 눈물과 피로 쓰인 이 땅의 한이 얼마나 많았을까.

단적인 예로 남제주군 상모리 일대의 알뜨르 비행장과 송악산의 진지동굴(일오동굴)을 들을 수 있다. 일본은 중?일 전쟁 때 중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1926년부터 제주도 대정읍 상모리 일대 80만평에 이르는 비행장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제주남쪽 지역을 진지로 20만의 관동군을 주둔시켜 중국 본토를 폭격하려고 했다. 또한 “決7호작전(연합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제주도에서의 작전이 “決 7 號 작전”으로, 이는 연합군의 예상 진격로를 7곳으로 설정하고 그 진격로를 막는 작전)을 위해 1940년 이후의 병참기지 계획을 이루기 시작했으며, 1943년에는 이곳에 대공포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 비행장의 이름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일제는 최후 항전의 장소로서 제주도를 사용하려 했으나 2차 대전은 종결되었다. 제주도엔 아직도 진지동굴 700 여 곳과 알뜨르 비행장 등 아직까지 수많은 전쟁유적지가 보존되고 있다.

1942년 6월 전쟁의 분수령이 되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하고, 이후 일본은 재해권을 상실하게 된다. 태평양 전선은 차츰 밀리기 시작하고 임팔작전이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면서 일본은 패색이 짙어진다.

일본은 패전을 기정사실화 하고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그 첫째 조건은 천황제 유지, 둘째는 연합군의 본토상륙 저지. 여기에서 이른바 결호작전이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에서의 결7호 작전 역시 민간인을 포함한 전원 옥쇄를 염두에 둔 작전이었다. 만약 일본이 1개월만 늦게 패전하지 않았더라면 제주와 제주민은 대재앙을 맞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8월 15일을 국경일로 삼고 여러 행사를 가진다. 과거 3.1운동은  일본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에서 일어난 거족적인 민족독립운동으로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쳐진 힘이며, 민족의 생명이요 교훈이었다.

이런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쁨을 가져온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인 어린이, 학생들은 이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국경일을 단순한 휴일이라는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공휴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고 단 하루만이라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가지고 한국인임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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