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10-08 17:31 (화)
4.3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 “보전‧관리 방안 마련돼야”
4.3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 “보전‧관리 방안 마련돼야”
  • 홍석준 기자
  • 승인 2024.09.30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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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 2024 시민과 함께하는 4·3길 걷기 행사 개최
금속탐지기로 매장 유물을 찾고 있는 배기철 ‘4·3 통일의 길, 마중물’ 조사단장. /사진=제주4.3연구소
금속탐지기로 매장 유물을 찾고 있는 배기철 ‘4·3 통일의 길, 마중물’ 조사단장. /사진=제주4.3연구소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4.3연구소가 지난 28일 ‘시민과 함게 하는 4.3길 걷기 –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 행사를 진행했다.

4.3뎐구소 회원들과 시민 30여 명이 참여한 이날 4.3길 걷기는 오전 9시30분 한라대 승마장을 출발, 노로오름 ‘장태코’까지 왕복 12㎞ 코스를 답사한 뒤 오후 5시께 마무리됐다.

제주4·3연구소(이사장 김영범, 소장 김창후)는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2024 제주4·3연구소 ‘시민과 함께 하는 4·3길걷기 -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를 진행했다. 연구소 회원과 시민 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4·3길걷기는 한라대 승마장을 출발해 노로오름 ’장태코‘까지 왕복하는 왕복 12km 코스로 이날 오후 5시에 마무리됐다.

노로오름 일대는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구축한 진지 시설이 다수 분포해 있는 곳이다. 4·3 당시에는 무장대가 토벌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이른바 ‘산물내 전투(1949.3.)’가 벌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노로오름의 큰 분화구인 ‘장태코’ 경사면을 따라 일본군 진지 동굴 흔적이 잇따라 발견됐고, 4·3 시기 피신했던 주민들이 머물렀던 흔적과 토벌대가 주둔했던 흔적도 남아있다. 특히 ‘장태코’ 주변에는 지금도 탄환 같은 군사유물이 발굴돼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태코 주변에서 발굴된 탄환과 놋숫가락 등 4‧3유물들. 장태코 안팎 여기저기를 세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제주4.3연구소
장태코 주변에서 발굴된 탄환과 놋숫가락 등 4‧3유물들. 장태코 안팎 여기저기를 세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제주4.3연구소

4·3길걷기 안내를 맡은 배기철 ‘4·3 통일의 길, 마중물’ 조사단장은 해설 말미에 “보초터, 집터, 전투 흔적 등 다양하고 체계를 이룬 4·3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집중적인 조사와 그에 따른 보전과 관리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 소장도 “이곳 노로오름 일대는 당시 제주도 북서부지역인 애월면‧ 한림면과 한라산을 잇는 중간 거점이었다. 주변에 어승생악도 있어 해발 1000m에 이르는 고지대임에도 많은 피난민들이 살았고, 무장대와 토벌대도 일정 기간 주둔하면서 쌍방간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었다”면서 “탄환 무더기가 출토되기도 했는데 다른 4‧3유적지에서는 이렇게 많은 무기류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4‧3평화재단의 담당 직원도 돌아가시면 유물 수습방안을 마련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제주4.3연구소의 ‘시민과 함게 하는 4.3길 걷기 –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 행사에 참여한 연구소 회원과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4.3연구소
지난 28일 제주4.3연구소의 ‘시민과 함게 하는 4.3길 걷기 – 항쟁의 길, 노로오름을 걷다’ 행사에 참여한 연구소 회원과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주4.3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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