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세상] <20>
MLB 오타니 쇼헤이, 美 역사 창조로 전역 열광
모든 인간들이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과정에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바로 저마다 특별한 싹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특성 등이 제각각이지만, 일대기를 그려가는 과정에 착실하게 물을 줘가면서 피어오르는 싹의 가치는 특별하다. 이러한 싹은 자신만의 영역 구축은 물론, 발전적인 방향 구현과 품위 형성 등에 있어서도 큰 플러스 알파를 생성하는 기폭제다. 그런 측면에서 오타니 쇼헤이(LA다저스)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특별하다. 이미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반열에 올라섰음에도 늘 가치 향상을 잃지 않는 프로페셔널함은 경지에 다다른 지 오래고, 겸손함과 배려심 등을 뽐내는 미덕도 가히 압권이다. 환경의 변화와 온갖 돌발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인미답의 대위업을 연신 써 내리는 만화같은 질주가 그래서 센세이션하다. 사회적 지위와 업적, 신분에 심취돼 발전을 등한시하고 초심을 저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현대 사회에서 오타니의 존재는 스포츠 스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하나의 교보재를 제시해준다.
1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들의 가치가 본격적으로 도드라진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다. 미국이나 중남미 국가 출신 선수들이 축을 이뤘던 시장 동향 속에 세계화를 위한 터전으로 아시아 무대를 삼으면서 아시아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 러시가 가속화됐고,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를 필두로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추신수 등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각 팀에서 맹위를 떨치면서 효력을 입증했다. 아시아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던 시대에 이들의 왕성한 활약상은 아시아 야구를 바라보는 빅리그 시선을 180도 돌려놨고, 빅리그 선수 수급의 주요 통로로서도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촉매제가 됐다. 동양인으로서 인종차별 문제, 언어와 문화 적응 등의 리스크가 뚜렷함에도 앞에서 거론된 이들 덕분에 소속 국가들에 중계권을 수출하고 비즈니스 가치도 높아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리그를 더 크게 만들었다.
빅리그 무대에서 아시아 선수들의 활약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도류(투수와 타자를 겸업한다는 용어)’를 겸하는 동양인 청년의 등장은 미국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로 가득하게 만들고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타니 쇼헤이다. 오타니는 2013년 일본 퍼시픽리그 니혼햄 파이터스 입단과 함께 2015년 퍼시픽리그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2016년 퍼시픽리그 MVP 및 재팬시리즈 챔피언 등으로 일본 무대를 평정했다. 그는 2017년 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LA에인절스에 입단하면서 꿈에 그리던 빅리그 진출을 실현했다. 이후 ‘이도류’로서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생산해내며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강렬하게 알렸다. 항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하위권을 맴돌던 저조한 팀 성적이 옥에 티로 남았으나 오타니 개인의 스탯은 그야말로 어메이징 그 자체였다. 2021년과 지난 시즌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를 이루면서 빅리그 역사상 최초로 만장일치 MVP 2회를 이룬 선수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시즌에는 동양인 최초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타이틀(44개)과 함께 10승-40홈런을 모두 달성하는 경이로움을 뽐냈다.
빅리그 역사를 갈아치우면서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는 오타니에게도 이루지 못한 숙제는 분명했다. 다름 아닌 월드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이다. 지난 시즌 직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면서 많은 팀들의 러브콜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졌고, 지난해 12월 전 세계 프로스포츠 최대 규모인 10년간 7억 달러(약 9219억원)에 LA다저스와 계약을 맺으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뉴욕 양키스와 함께 빅리그 대표 ‘빅마켓’ 구단으로 불리는 LA다저스의 구색은 오타니의 숙원을 실현하기에 최적이었다. 마침 코로나19 여파로 단축 시즌을 운영한 2020년 이후 3년간 최상의 전력과 성적에도 줄곧 챔피언 문턱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다저스의 아쉬움 해갈이라는 코드와도 일치됐다. 빅리그 최고의 천재성과 스타성을 두루 겸비한 마이크 트라웃과 함께 ‘원-투 펀치’로 고군분투하던 LA에인절스와 달리 LA다저스는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등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들이 지원군으로 버티고 있어 시너지 효과 창출도 용이하다.
지난 시즌 종료 이후 팔꿈치 수술 여파로 올 시즌 지명타자로서 타격에만 전념하게 되면서 ‘이도류’의 위엄은 잠시 쉼표를 찍었지만, 오히려 더 큰 역사 창조를 위한 ‘신의 한 수’로 자리했다. 폭발적인 장타력과 정교한 컨택 능력은 내셔널리그 무대에서도 상대에 강력한 쓰나미를 양산했다. 클러치 상황에서 압도적인 생산성과 함께 현란한 주루플레이와 센스로 상대 배터리를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등 팀 플랜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타자로서 ‘5툴 플레이어’의 진면목을 뽐내는 오타니의 ‘신(神)’ 계 퍼포먼스에 내셔널리그 대표 5툴 플레이어인 로널드 아쿠나 주니어(애틀랜타), 프란시스코 린도어(뉴욕 메츠)의 퍼포먼스 조차 오타니 앞에서는 가려질 만큼 빅리그 역사에 기념비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어느덧 시즌 막판에 다다른 시점에 오타니의 화력은 멈출 줄 몰랐다. 지난 20일(한국시간) 마이애미 원정에서 홈런 3개와 도루 2개를 뽑아내며 빅리그 역사상 최초로 50(홈런)-50(도루) 클럽의 신기원을 이룩했고, 지난 28일(한국시간) 콜로라도 원정에서는 도루 1개 추가로 시즌 57호 도루에 성공하면서 2001년 이치로가 가지고 있던 동양인 단일 시즌 최다도루 기록인 56개를 넘어서며 빅리그 동양인 출신은 물론, 빅리그 전체에 있어 화려한 업적 발자취를 또 늘렸다. 각종 빅리그 역사에 당당히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오타니가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챔피언과 함께 빅리그 첫 포스트시즌 출전으로 고대하던 월드시리즈 챔피언까지 쟁취할 수 있을지에 남은 시선이 고정된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다. 단단하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개인이나 집단 모두 저마다 계획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오타니는 그렇지 않다. 오타니의 휘황찬란한 업적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노력, 야구에 대한 열정 등이 빚어냈다. 고교시절 작성한 ‘만다라트 계획표’에 맞게 탈랜트와 인성 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성공이라는 일념을 토대로 계획하고 구상한 바를 현실로 옮겼다. 오타니는 탑레벨로 올라선 이후에도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 양국 언론들과 야구팬들의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빅리그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를 지녔음에도 슈퍼스타의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에 박수갈채를 더 쏟아진다. 온갖 빅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갈아치우는 과정에 우쭐대지 않고 팀 동료들에 공헌을 돌리는 배려는 ‘팀 퍼스트’의 표본으로서 신뢰감과 일체감 형성을 원활하게 도모하는 매개체로 손색없고, 늘상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 품격을 더 높인다. 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들도 이러한 오타니의 언행에 경의를 표할 정도다. 이러한 오타니의 존재는 단순히 팀 메이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만다라트 계획표’ 안에 수립한 쓰레기 줍기와 잡초 뽑기, 화장실 청소 등을 착실하게 진행했던 그는, 이처럼 몸에 밴 행동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드러난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젠틀함 그 자체고, 슈퍼스타의 가치가 인성에 있다는 진리도 몸소 보여준다. 지난 3월 메이저리그 진출 때부터 통역으로 합을 이룬 미즈하라 잇페이의 불법 도박과 횡령을 필두로 빅리그 생활 동안 ‘흙길’도 존재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영역을 개척하는 개척자로서 면모를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등 ‘GOAT'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탈랜트와 인성을 모두 겸비하면서 슈퍼스타의 진면목을 녹여내는 모습에서 시사점이 분명하다. 품위가 갖춰지지 않고는 절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이는 스포츠 스타와 일반인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 중심의 기형적인 사회 풍토 속에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품위는 뒷전이다. 그 핵심은 매너리즘이다. 한 인간으로 세상에 나와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교육의 의무를 거치고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매너리즘이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개인 커리어나 학력, 지위, 주변 환경 등에 지나치게 심취된 나머지 발전은 고사하고 극심한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들이 허다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직업 신분에서 품위 실종을 절로 부채질한다. 주변의 따가운 눈총 사례를 받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다. 인성적인 부분을 등한시한채 입시에만 옭아매는 악습이 해를 거듭할수록 현대인들의 품위 저해를 불러오고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라는 말이 있다.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더욱 겸손해지라는 표현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필히 유념해야 될 속담이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먹고 자라는 스포츠 스타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특히 강조되는 부분이다. 제아무리 화려한 업적을 쌓았다고 한들 겸손함과 품위, 그리고 ‘초심(初心)’을 잃어버리면 가치가 폭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실제로 개인이나 집단이 초심을 잊어버린 채 품위를 잃는 부분도 매너리즘이 한 지분을 차지할 만큼 더욱 강조된다. 개인이나 집단 모두 개인 탈랜트나 커리어가 아무리 화려하고 빛난다고 한들 이전에 품위를 갖춰야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품위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기에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