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고도 갈등에서 탈출하는 첫걸음은 차이를 이해하고 이에 근거한 통합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역사회 공동체 의식을 최대한 고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총력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7일 오후 열린 2024 제주갈등포럼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김학린 단국대 경영대학원 교수(전 한국갈등학회 회장)이 ‘제주도 입지 갈등과 상생’을 주제로 한 이날 포럼 참가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김학린 교수는 우선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장기간 지속되면 고도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고도 갈등은 공동체 구성원들간 특정 쟁점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구도가 뚜렷이 형성돼 ‘우리’와 ‘그들’간의(심지어는 선과 악의) 대결로 치닫게 되는 갈등을 말한다”면서 고도 갈등 상황에서는 갈등 쟁점의 복잡한 서사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쟁점에 대한 실질적인 견해 차이는 뒷전으로 밀리고 싸우기 위해 싸우는 갈등 그 자체가 새로운 현실이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국 정작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사안의 복잡성은 갈등 해결의 장에서 사라져버리고, ‘우리’와 ‘그들’이라는 진영 대결만 남게 돼 궁극적으로 힘과 의지에 기반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이같은 고도 갈등의 상황에서 승패를 가리는 방식의 갈등 해소는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거듭 고도 갈등을 관리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도 갈등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시도 사례로 가장 먼저 1984년 총기 사건 이후 5년 6개월 동안 진행된 비공개 토론 과정이 소개된 보스톤의 ‘적과의 대화’ 사례를 들었다.
각각 낙태 찬성과 반대를 대표해 3명씩 참석한 여성 리더들은 ‘약한 여자들과 함께 앉은 죄’에 대한 용서와 보호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토론을 진행했는데, 토론 진행 과정을 소개한 기고문 ‘적과의 대화’에 따르면 “장기간 토론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낙태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양극화되었다”, “도적덕,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관계는 훨씬 가까워졌다”, “낙태에 관한 각 진영의 입장에 내재된 복잡성, 상충 관계, 모순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등의 놀라운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기고문이 보스톤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지역사회의 요청으로 공개적인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 보스톤의 사례에 대해 “기자회견 후에도 미국 사회에서는 낙태 관련 논쟁이 계속되긴 했으나, 보스톤 지역사회에서 논쟁의 폭력성과 독설은 많이 진정됐다”면서 “해묵은 갈등의 가장 위험한 국면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그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 대해서도 “양자택일적 선택을 조건부 찬성과 반대로 선택지를 4개로 확대함으로써 친핵 진영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라는 직접적인 관심사를 충족시키고, 반핵 진영의 관심사인 ‘원자력 발전 축소’를 장기적 관점에서 충족시키는 결과를 도출한 것”이라면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해관계자의 수용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사례를 들어 그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에서는 갈등 당사자들이 찬성과 반대라는 획일적 입장에 가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적과의 대화’ 사례에서는 찬성과 반대라는 입장의 차이를 완화시켜 양자간 차이점 뿐만 아니라 공통점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그는 “고도 갈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표준화된 방법은 없다”는 한 논문의 명제를 들어 “상황과 갈등의 특성에 따른 창의적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