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장애인주간활동센터가 제주 도내 중증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제주를 지켜낼 결심, 제주를 사랑할 결심’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특히 올해는 장애인들이 보다 더 제주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제주를 알아가볼지도’라는 주제를 내걸고 진행했다. 참여한 장애인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산담도 둘러보고, 해녀를 직접 마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주를 사랑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그들은 프로그램 참여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미디어제주> 지면에 싣는다. [편집자주]
글 : 임혜성씨
제주도 바다에는 천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해녀들이 있다. 친척 할머니도 해녀로서 해마다 소라, 성게 등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해 주셨다. 할머니가 주신 해산물로 만든 저녁상은 항상 짙은 바다의 향기로 가득했다. 해녀들은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직업인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의 경제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제주 해녀의 기원은 아주 오래 전이다. 초기에는 남성들도 해양 활동에 참여했으나, 조선 후기부터는 여성 해녀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여성 해녀들은 가난과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고, 아이를 낳고 3일 만에 다시 바다로 돌아가야 했던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정을 돌보는 일과 생계를 병행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다.
해녀들의 작업 환경은 그들의 잠수 능력에 따라 계급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해녀들은 평균 1분 정도 잠수할 수 있는 반면, ‘상군 해녀’는 2분 이상 잠수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물옷’을 입고 물질에 나섰다. 물옷은 ‘물소중이’라 불리는 하의와 ‘물적삼’이라 부르는 옷으로 구성된다. 1970년대부터는 해녀들의 옷이 달라진다.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물질의 형태도 변화가 찾아왔다. 고무로 만든 잠수복은 해녀들이 추운 바닷속에서도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해양 환경에서의 안전과 효율성을 높여 준다.
일제 강점기(1910~1945년) 동안 제주 해녀들은 생계를 위해 일본과 중국, 연해주 등지로 원정을 떠났다. 이 시기 해녀들은 '원정 해녀'로 불렸고, 다른 나라 연안에서 해산물을 채취했다. 당시 일본은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수출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었고, 해녀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을 견뎌야 했다. 해녀들은 그들의 수탈에 당당히 맞서기도 했다. 해녀들은 일본 식민지 지배에 맞서 다양한 저항 운동을 벌였으며, 특히 1932년 해녀 항일 운동은 그들의 저항 의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해방 이후에도 해녀들은 제주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으나, 1980년대 이후 산업화와 관광업의 발달로 해녀 수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해녀의 수는 약 2,500명으로,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해녀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를 넘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하며, 젊은 세대의 참여 부족으로 인해 그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6년에는 제주 해녀의 독특한 전통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는 해녀 문화의 가치와 보존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제주도와 우리나라 정부는 해녀 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으며, 해녀들은 여전히 바다에서 활동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해녀들은 단순히 해산물을 채취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바다의 환경 보존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들은 지속 가능한 해산물 채취를 위해 자발적으로 규칙을 마련하고 해양 자원을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해녀들의 바다와의 유대는 물론, 제주도의 자연과의 공존을 상징한다.
제주 해녀의 역사는 단순한 생업을 넘어서, 제주 여성들의 강인함과 지혜를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해녀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바다의 전통을 넘어서, 그들의 삶과 노력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제주 해녀들의 삶과 전통은 제주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보석으로 남아 있다.